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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꿈꾼 세상, 호혜 경제서 찾았죠”

10주년 맞은 ‘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의 박용수 이사장

등록 : 2023-12-0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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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광사넷)는 빈곤 문제를 당사자, 지역 사회적경제 기업과 시민단체 등이 함께 풀어가는 공동체 경제를 10년째 만들어가고 있다. 11월23일 박용수 이사장이 인터뷰에 앞서 광진구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광사넷이 받은 상장과 상패를 보여주며 그간의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전도사에서 조직가, 기업가로 살며

빈곤문제 함께 푸는 공동체 꿈꿔와

회원사 70곳이 상호거래·협동기금

공동 사업장·공동체 주택 등 추진하며

“20년 뒤 한국판 ‘몬드라곤’ 일굴 터”

경제가 아무리 성장해도 빈곤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가 넘어도 양극화가 깊어지며 빈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광진사회적경제네트워크’(광사넷)는 지역의 당사자, 사회적경제 기업, 시민단체 등이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빈곤 문제를 10년째 풀어가고 있다.

광사넷은 2014년 시민단체 ‘광진주민연대’를 중심으로 16곳이 모여 출범했다. 이듬해 사회적협동조합 인가를 받았다. 4년 뒤 2018년에 네트워크 조직으로는 처음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았다. 현재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자활기업, 마을기업, 시민단체 등 70여 곳이 함께하고 있고 지난해엔 서울시의 우수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됐다.


10주년을 앞두고 광사넷은 11월14일 학술 포럼과 부설연구소 ‘사람’ 개소식을 함께 열었다. 행사를 마치고 일주일여 지난 23일, 최근 광사넷에 가입한 사람아이앤지작은도서관에서 박용수(54)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우리가 호혜 경제를 만들어가는 것을 학술적으로 인정받아 회원기관들의 자긍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차분하면서도 단단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광진구 토박이인 박 이사장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가난이 관계의 빈곤으로 이어짐을 몸소 겪었다. 20대부터 가난한 사람들이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관계도 회복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고민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 활동에서 길을 찾았지만, 교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자신의 꿈이 맞지 않는다고 느껴 전도사를 그만뒀다. 일반 무역회사에 다녀보기도 하고 사회복지 공부도 해봤지만 마음 한편에 헛헛함이 있었다. 2000년대 초 광진구로 돌아와 자활사업에 참여하면서 그는 다시 꿈을 꾸게 됐다. 광진주민연대에서 활동하며 광사넷을 함께 만들었다.

박 이사장은 광사넷의 집행위원장으로 7년, 이사장으로 3년째 일하고 있다. 사회적경제 조직을 지원하는 광진구사회적경제지원센터도 9년째 위탁 운영해왔다. 그는 “도시에서 공동체 경제를 일구는 제 꿈의 70%를 이룬 것 같다”며 “사업가, 기업가, 활동가보다 조직가로 불릴 때가 더 뿌듯하다”고 했다.

실제 광사넷이 지향하는 호혜 경제 원리가 하나둘 작동하며 구체적인 모습을 보인다. 지난 한 해 광사넷 회원사들이 서로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상호거래가 1200여 건 이뤄졌다. 금액으로는 4억2천만원 정도다. 1억1천만원의 협동기금도 있어 필요하면 대출도 받을 수 있다. 회원사들은 매출의 2%를 협동기금에 낸다.

공동으로 자금을 모아 공동사업장도 만들었다. 회원기관인 광진주민연대가 중심이 되어 중곡동의 4층짜리 건물을 매입해 공유공간 ‘나눔’을 2017년에 마련했다. 자활기업, 생협, 주거복지센터 등 15곳이 입주해 사무실을 함께 쓰고 있다. 일종의 시민 자산화인 셈이다. 공동체 주택과 사회주택도 한 곳씩 만들어졌다. 그는 “초기 창업 기업들의 제품이나 서비스 구매도 이뤄진다”며 “호혜성이 작동하기에 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공동체 경제를 주창해온 이탈리아 경제학자 루이지노 브루니(1966~ )가 꼽는 세 가지 축인 ‘관계, 신뢰, 상호지원’이 광사넷의 운영 원칙이다. 매달 전체 회의를 열고, 함께하는 자리를 자주 만들며, 촘촘한 관계 맺기에 중점을 둔다. 박 이사장은 “참석률이 초기보다 떨어졌지만, 갈등을 신뢰로 풀어갈 수 있을 정도의 관계 형성이 이어지면서 호혜성과 연대성도 생기고 있다”고 했다. 실제 공유공간 ‘나눔’ 입주 기관들은 뜻을 모아 코로나19 시기 어려움을 겪어 월세를 내기 힘든 2곳에 6개월 임대료를 감면해줬다. 온라인 플랫폼, 분과 협업사업 등을 접어야 하는 시행착오도 함께 이겨나간다.

운영 원칙이 잘 작동할 수 있게 광사넷은 자체적인 체계 마련도 진행했다. 회원기관이 30곳 넘어서면서 가입 심사 절차를 마련했다. 운영위원회에서 가입 목적 등을 심사해 추인받는 방식으로 바꿨다. 윤리경영 준칙도 1년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만들었다. 회원기관들은 의무적으로 서약에 동의해야 한다. 윤리위원회는 갈등이나 제보가 있으면 심의하고 제재를 결정한다. 실제 제명 사례도 1건 있었다.

광사넷의 호혜 경제가 안정적으로 이어지기 위해 풀어야 할 우선 과제로 박 이사장은 금융을 꼽았다. 회원기관이 100곳 이상인데 상호거래가 늘어나야 지속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늘어나는 자금 수요에 금융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협동기금으로는 역부족이다. 광진구에는 신협이 한 곳도 없어 신협 설립을 위한 서류를 관련 부처에 제출했지만 검토도 이뤄지지 않는 아쉬운 상황이다.

20년 뒤 광사넷이 ‘한국판 몬드라곤’이 되어 있길 그는 꿈꾼다. 스페인의 몬드라곤협동조합에서 시작된 사회적경제가 주택이나 교육, 관광, 보험 등 주민들의 일상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지역 경제의 기틀이 됐다. 박 이사장은 “연대와 협력을 중시하는 경제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며 지역 발전을 이뤄나간 모습은 광사넷이 본받고 싶은 롤모델이다”라며 “광사넷이 규모는 작더라도 장기적으론 몬드라곤협동조합처럼 되어 있을 거라 기대한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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