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모두가 가진 시간으로 서로 품앗이해요”

성북구 정릉3동, 민·학·관 손잡고 ‘마을시간은행’ 운영 첫걸음 떼

등록 : 2023-12-14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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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전 성북구 국민대 본부관에서 정릉3동 주민들과 학생, 교수들이 마을시간은행 성과공유회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학생들은 앱 개발, 규정과 조직, 홍보 등 세 분야에서 한 학기 동안 활동한 결과를 발표했고, 주민들은 청취한 뒤 의견을 나눴다.

주민자치회·주민센터, 국민대 협력

도움 주고받을 때 시간화폐를 쓰는

앱 개발하고 홍보해, 150여 명 가입

세대 간 교류, 공동체 활성화 기대

시스템 보완하고 사무국 운영 계획

시간을 화폐처럼 저축하고 쓸 수 있는 시간은행이 성북구 정릉3동에 생긴다. 1990년대 미국에서 도입한 ‘타임뱅크’는 현재 세계 40여 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비영리기관인 ‘타임뱅크코리아’ 등이 운영하고 있다. 생활권 동네 단위로 이뤄지는 정릉3동의 마을시간은행은 자신의 시간과 재능으로 이웃을 돕고 시간화폐를 저축하는 일종의 시간 품앗이 플랫폼이다. 예컨대 대학생이 동네 어르신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쳐주고 시간화폐를 적립하면, 나중에 자취방을 구하거나 전구 등을 교체할 때 시간화폐를 쓸 수 있다.

마을시간은행 사업은 지난해 서울시의 서울시간은행 사업으로 시범 진행됐으나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정릉3동 주민자치회, 동 주민센터, 국민대는 올해 뜻을 모아 다시 추진했다. 정찬경 정릉3동 주민센터 동장은 “처음엔 마을 단위에서 가능할지 의구심이 들었는데, 1년 정도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어느 정도 틀을 갖춰가고 있다”고 했다.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국민대 커뮤니티상생센터장인 하현상 행정학과 교수는 “대학, 학생, 주민 모두에게 도움되는 프로젝트로 세대 간 교류 등 응용의 영역이 넓다”며 “지역의 민·학·관이 함께 시작해 성공적으로 이어가는 데 의미가 있다”고 힘줘 말했다.


지난 7일 오전 ‘2023 정릉3동 주민들과 함께하는 마을시간은행 성과공유회’가 국민대 본부관에서 열렸다. 지난 6월에 진행한 1차 성과공유회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 2학기 학제 간 융합 전공 수업엔 행정학과 36명과 소프트웨어학부 21명이 참여했다. 지방행정론과 소프트웨어 융합 최신 기술로 각각 수업하고, 프로젝트 관련 소통은 같이했다. 앱 개발, 규정과 조직, 홍보 등 세 분야에 8개 팀으로 나눠 활동했다. 주민 30여 명이 참석해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활동한 결과를 듣고 의견을 나눴다.

첫 번째 발표로 앱 개발 분야 1팀이 ‘타임페이’를 시연했다. ‘시간을 거래하는 타임페이, 나의 시간을 가치 있게 써보아요’라는 슬로건이 웹앱 화면에 떴다. 도움요청, 같이하기, 바로 도움요청 등 세 가지 메뉴 아래에 글쓰기와 검색, 내 정보 버튼이 있다. 도움요청을 누르면 네 가지 카테고리(생활, 청소, 병원, 돌봄)가 뜨고, 한 가지를 선택하면 활동일, 활동할 시간, 활동이 끝날 시간, 장소를 입력한다. 다음 화면에서 도움요청 내용을 제목과 내용으로 간략히 적으면 작성이 끝난다.

디지털 기기 이용이 불편한 어르신을 위한 대리인 기능도 소개됐다. 발표자인 서영채씨는 “기존 시간은행이 거래가 이뤄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용 방법이 복잡한 점을 보완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허대영 소프트웨어학부 교수는 “학생들이 주민들을 만나 의견을 듣고 보완해나가는 활동이 쉽지는 않았다”며 “사용자들이 지적한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며 학생들은 시야를 넓혀왔다”고 했다.

‘소프트웨어 융합 최신 기술’ 수강 학생들이 업그레이드한 ‘타임페이’ 초기 화면.

홍보활동을 진행한 팀들은 150명의 가입을 끌어냈다. 정릉시장 상인 대상으로 마을시간은행을 알리고 앱 가입을 돕기도 했다. 학생들은 성북노인종합복지관의 점심 배식 돕기를 하면서 어르신들에게 마을시간은행을 어떻게 이용하는지도 알렸다. 홍보 4팀의 조용기 팀장은 “어르신들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며 “타임페이를 쓸 수 있는 방법이 구체화하고, 가입 절차가 간소화되며, 사용 방안 보완 등이 이뤄졌으면 한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직접 타임페이를 시범 이용한 사례도 있었다. 홍보3팀은 타임페이 앱에서 11월30일 오후 12~1시 동 주민센터 새마을문고 책 정리를 도와달라는 게시글에 ‘제가 도와드릴게요’라고 댓글을 달고 참여했다. 등록 책을 엑셀 파일로 정리하고, 오래된 책을 노끈으로 묶어 버리는 작업을 했다. 심옥경 홍보3팀장은 “시간을 내 도움을 주기 어려운 주민들도 있어, 인센티브를 다양하게 하는 방법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팀들이 내놓은 개선 의견에 대해서는 커뮤니티상생센터에서 검토해 보완해나갈 계획이다. 예를 들어 고령이나 건강, 생계 등의 문제로 도움을 받은 뒤 주기 어려운 주민들에게는 복지기관에서 타임페이를 지급하는 방식을 진행할 수 있다. 복지기관은 일반인이 기부하는 타임페이를 활용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타임페이로 시간 거래를 넘어 문화 공연 등 서비스를 이용하고 제품도 살 수 있게 넓혀가는 것도 고려한다.

하현상 교수는 “이제 첫걸음을 뗐다”며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커뮤니티상생센터가 중심이 되어 내년에는 규정과 조직, 사무국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라고 했다. 커뮤니티상생센터는 참여 학생들의 상시적인 활동을 위해 지난 9월부터 서포터스를 결성해 운영하고 있다. 동아리를 만들어 지역 사회 참여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지원할 계획도 세웠다.

2015년부터 학생들과 주민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하 교수는 대학이 지역사회에서 역할을 해야 대학과 지역이 상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년 전부터 주민자치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마을시간은행 운영에 공감하는 주민들이 뭉쳐 공동체를 형성해 활성화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이용 주민이 효능감을 체감할 수 있는 마을시간은행의 적정 규모도 확인하며 다른 지역에 보급하는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 그의 목표다. 하 교수는 “마을시간은행이 모두가 가진 시간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플랫폼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릉3동주민자치회는 총회에서 마을시간은행 사업을 내년에도 이어가기로 정했다. 이상언 주민자치회장은 “성북구 주민자치회 성과공유회에서 대상을 받아 지역에서 사업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졌다”고 했다. 그는 “국민대 학생과 교수들이 우리 마을의 큰 자산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며 “내년에는 시스템이 안정돼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글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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