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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중에도 봉사의 손을 놓지 않은 유현옥씨가 지난 14일 신정동 넘은들공원 산책길 입구에서 웃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2012년부터 이웃 봉사활동 시작
2022년 1월 대장암 4기 판정받아
봉사 5593시간으로 봉사왕 인증
“사랑 주는 게 받는 것보다 행복”
“집에 드러누워서 환자 노릇만 하면 좋겠어요? 밖에 나가 걸으면서 콧바람 쐬는 게 낫죠. 앞으로 계속 바리스타도 하고 봉사활동도 할 겁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기쁨이 크잖아요. 또 재밌고요.”
양천구 신정3동 한 카페에서 만난 유현옥(69)씨는 암을 앓았다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얼굴색과 표정이 밝았다. 유씨는 2012년부터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활동을 해오다 2022년 1월 초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2년 동안 수술과 항암 치료를 하면서도 바리스타로 시니어클럽 카페에서 일하고 이웃을 위한 봉사의 손길을 놓지 않았다. 유씨는 지난 14일 “주위 사람들도 얼굴만 보면 환자 같지 않다고 할 만큼 항상 얼굴색은 좋았다”며 웃었다.
1987년부터 양천구에서 사는 유씨는 남편과 함께 신월7동에서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한다. 유씨가 봉사활동을 처음 시작한 것은 2012년 12월이다. “가게 근처 슈퍼 새댁이 ‘아줌마도 봉사활동 좀 하라’기에 남편하고 가서 보니 재밌게 하더라고요.” 유씨는 그때부터 대한적십자사 서울시지사 서부봉사단에 가입해 홀몸노인, 장애인, 다문화가정 등 취약계층을 위해 자원봉사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2022년 1월 초 유씨에게 대장암 4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2021년 12월에 위와 대장 내시경을 했어요. 일주일 만에 결과를 확인하러 갔더니, 대장암이라며 조직검사를 해야 한대요. 그랬더니 5㎝ 크기 암 덩어리가 있다고 해요. 간과 폐에도 전이됐다고 했어요.” 유씨는 암이 발견되기 전까지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동생이 대장 내시경을 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나왔어요. 그래서 너랑 나랑 자매인데 나도 똑같겠지 생각했죠.” 유씨는 “약을 먹고 장을 비우는 과정을 보니 무서워서 하기 싫었다”고 했다. 그러다 2021년 초부터 소화가 잘 안되고 배도 아파 쓰러지는 일이 생겼다.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죠.” 유씨는 “병원에서 대장 내시경을 할 때는 이미 암 덩어리가 대장을 막고 있어 변이 거의 나오지 않을 때였다”고 했다. 유씨는 수술 날짜를 잡았지만, 1월 말 갑자기 장폐색증이 왔다. “안에서 터졌나봐요. 골든타임을 넘기면 죽는다더라고요. 밤에 가서 5시간 동안 수술받느라 난리 났죠.” 유씨는 “의사 선생님에게 죽는 거냐고 물었다”며 “이 병원에 2500명 넘는 암환자가 있는데 상위 10% 안에 드는 건강 체질이라 나을 수 있다는 말에 조금 안심이 됐다”고 했다. 유씨는 암에 걸리기 전에는 아주 건강했다. “하루에 6천~8천 보씩 걸었어요. 가게 갈 때나 어디 나갈 때 항상 걸어다녔죠.” 유씨는 “남들은 이 약 저 약 챙겨 먹는 나이인데, 나는 약도 전혀 먹지 않았다”며 “암에 걸리기 전에는 성인병도 없었다”고 했다. 유씨는 장천공으로 2022년 4월부터 12월까지 배변주머니를 차고 생활해야 하는 불편함도 겪었다. “이걸 차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했지만, 가족의 설득에 어쩔 수 없었다. 유씨는 배변주머니를 차고도 병원 가는 날이 아니면 봉사활동을 계속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인 2021년 10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해 시니어클럽 카페에서도 바리스타로 일했다. 유씨와 함께 온 딸 박효주씨는 “엄마 몸이 건강하지 않은데 봉사활동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말렸다”고 했다. “집에 오면 기절해요. 2~3시간 동안 주무시기만 하죠. 그래서 우리 가족은 무척 싫어했어요. 많이 싸웠죠.” 하지만 박씨는 이제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10일을 사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 많이 하면서 7일을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씨는 “엄마가 봉사활동 하는 게 삶의 활력소가 되고 힐링이 된다면 계속하는 게 낫겠다”고 했다. 딸의 말을 들은 유씨는 “내가 죽을 것 같은데 봉사활동을 하겠어? 살 만하니 하지”라며 넌지시 한마디 보탰다. 유씨는 화요일과 금요일 90가구에 반찬과 음식을 만들어 배달한다. “이제 동사무소 갈 때도 택시 타고 다녀요. 조금만 걸으면 쉬어야 해요. 그래도 요즘은 숨이 차는 게 좀 나아졌어요.” 유씨는 “봉사활동을 하면 만족감과 자존감이 생겨요. 가정에서는 100%, 200% 잘해도 칭찬도 않고 상장도 안 주는데”라며 웃었다. 유씨는 올해 1월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서 탈모 증상이 나타나 모자를 쓰고 다녔다. 하지만 이날 가발을 쓰고 나왔다. “지난 11일 송년 모임에 가발을 처음 쓰고 갔어요. 매일 모자 쓰고 다니다가 가발 쓰고 가니 사람들이 깜짝 놀라요. 다들 잘 어울린대요. 진짜 같대요.” 유씨는 6월에 사촌이 선물해준 것이 생각나 이번에 찾아 썼다”고 했다. 양천구는 지난 5일 자원봉사자의 날을 맞아 양천문화회관에서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한 자원봉사자를 격려하는 기념행사를 열었다. 암 투병 중에도 봉사활동을 쉬지 않은 유씨는 자원봉사 활동 5593시간으로 ‘봉사왕’ 인증서를 받았다. 유씨는 올해 항암 치료는 모두 끝났고 폐렴과 함께 온 탈장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한다. 인터뷰 말미에 유씨에게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더니 미리 준비한 메모지 한 장을 내놨다. “어떻게 살아도 인생, 어떻게 사는가도 인생, 행복은 아름다운 관계에서 온다. 아들딸 있어 눈물 나도록 고맙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 행복하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하지만 2022년 1월 초 유씨에게 대장암 4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2021년 12월에 위와 대장 내시경을 했어요. 일주일 만에 결과를 확인하러 갔더니, 대장암이라며 조직검사를 해야 한대요. 그랬더니 5㎝ 크기 암 덩어리가 있다고 해요. 간과 폐에도 전이됐다고 했어요.” 유씨는 암이 발견되기 전까지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동생이 대장 내시경을 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나왔어요. 그래서 너랑 나랑 자매인데 나도 똑같겠지 생각했죠.” 유씨는 “약을 먹고 장을 비우는 과정을 보니 무서워서 하기 싫었다”고 했다. 그러다 2021년 초부터 소화가 잘 안되고 배도 아파 쓰러지는 일이 생겼다.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죠.” 유씨는 “병원에서 대장 내시경을 할 때는 이미 암 덩어리가 대장을 막고 있어 변이 거의 나오지 않을 때였다”고 했다. 유씨는 수술 날짜를 잡았지만, 1월 말 갑자기 장폐색증이 왔다. “안에서 터졌나봐요. 골든타임을 넘기면 죽는다더라고요. 밤에 가서 5시간 동안 수술받느라 난리 났죠.” 유씨는 “의사 선생님에게 죽는 거냐고 물었다”며 “이 병원에 2500명 넘는 암환자가 있는데 상위 10% 안에 드는 건강 체질이라 나을 수 있다는 말에 조금 안심이 됐다”고 했다. 유씨는 암에 걸리기 전에는 아주 건강했다. “하루에 6천~8천 보씩 걸었어요. 가게 갈 때나 어디 나갈 때 항상 걸어다녔죠.” 유씨는 “남들은 이 약 저 약 챙겨 먹는 나이인데, 나는 약도 전혀 먹지 않았다”며 “암에 걸리기 전에는 성인병도 없었다”고 했다. 유씨는 장천공으로 2022년 4월부터 12월까지 배변주머니를 차고 생활해야 하는 불편함도 겪었다. “이걸 차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했지만, 가족의 설득에 어쩔 수 없었다. 유씨는 배변주머니를 차고도 병원 가는 날이 아니면 봉사활동을 계속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인 2021년 10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해 시니어클럽 카페에서도 바리스타로 일했다. 유씨와 함께 온 딸 박효주씨는 “엄마 몸이 건강하지 않은데 봉사활동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말렸다”고 했다. “집에 오면 기절해요. 2~3시간 동안 주무시기만 하죠. 그래서 우리 가족은 무척 싫어했어요. 많이 싸웠죠.” 하지만 박씨는 이제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10일을 사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 많이 하면서 7일을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씨는 “엄마가 봉사활동 하는 게 삶의 활력소가 되고 힐링이 된다면 계속하는 게 낫겠다”고 했다. 딸의 말을 들은 유씨는 “내가 죽을 것 같은데 봉사활동을 하겠어? 살 만하니 하지”라며 넌지시 한마디 보탰다. 유씨는 화요일과 금요일 90가구에 반찬과 음식을 만들어 배달한다. “이제 동사무소 갈 때도 택시 타고 다녀요. 조금만 걸으면 쉬어야 해요. 그래도 요즘은 숨이 차는 게 좀 나아졌어요.” 유씨는 “봉사활동을 하면 만족감과 자존감이 생겨요. 가정에서는 100%, 200% 잘해도 칭찬도 않고 상장도 안 주는데”라며 웃었다. 유씨는 올해 1월 항암 치료를 시작하면서 탈모 증상이 나타나 모자를 쓰고 다녔다. 하지만 이날 가발을 쓰고 나왔다. “지난 11일 송년 모임에 가발을 처음 쓰고 갔어요. 매일 모자 쓰고 다니다가 가발 쓰고 가니 사람들이 깜짝 놀라요. 다들 잘 어울린대요. 진짜 같대요.” 유씨는 6월에 사촌이 선물해준 것이 생각나 이번에 찾아 썼다”고 했다. 양천구는 지난 5일 자원봉사자의 날을 맞아 양천문화회관에서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한 자원봉사자를 격려하는 기념행사를 열었다. 암 투병 중에도 봉사활동을 쉬지 않은 유씨는 자원봉사 활동 5593시간으로 ‘봉사왕’ 인증서를 받았다. 유씨는 올해 항암 치료는 모두 끝났고 폐렴과 함께 온 탈장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한다. 인터뷰 말미에 유씨에게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더니 미리 준비한 메모지 한 장을 내놨다. “어떻게 살아도 인생, 어떻게 사는가도 인생, 행복은 아름다운 관계에서 온다. 아들딸 있어 눈물 나도록 고맙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 행복하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