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3월은 자녀를 품에서 놓아줘야 할 때

자녀 취학한 엄마 “직장 그만둬야 하는 건 아닌지…”

등록 : 2016-03-31 16:38 수정 : 2016-05-2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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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 30대 직장여성입니다. 초등학교에 취학한 딸이 있습니다. 제 아이는 예민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입니다. 요즘 아침마다 배가 아프다고 하고 ‘엄마, 회사 가지 마!’ 하며 울고불고 거의 매일 전쟁터 분위기입니다. 제가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 건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답니다. 제 커리어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위한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 제가 너무 냉혹한 엄마인지 회의마저 듭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한 해의 진정한 시작은 1월이 아니라 3월입니다. 제가 굳은 표정으로 초등학교 교정의 생경한 풍경과 처음 만났던 것 역시 3월초였으니까요. 매년 새로운 학급을 만난 것도 그때였고, 군 훈련소에 입소한 날도 3월초였으며,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것 역시 3월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3월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져 오랜 기자생활을 마치고 방송 콘텐츠 기업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던 것이나,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 역시 3월이었습니다.

한국에서 3월은 이처럼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는 때이죠. 새로운 항해는 그러나 약동하는 봄의 기운처럼 설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낯설고 두려운 얼굴과 함께 다가오기도 하는 법이니까요.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남모를 고통,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멀미’입니다. 바다 항해에 익숙지 못한 사람들이 멀미를 하는 것처럼 어린 자녀들이 부모의 품에서 떨어지면서 생기는 현상이죠. 낯선 사람들과 갑자기 바뀐 주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사회관계의 멀미’를 하소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기하고 재미있어야 할 친구와 선생님, 건물, 놀이터가 그 아이들에게는 고통스러움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거죠.

오래전 기억이 새롭습니다. 제가 베를린 특파원으로 부임했을 때의 일입니다. 제겐 두 아들이 있어 큰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에 전학시키고, 아직 만 네 살도 채 안 된 둘째 아들은 유치원에 넣게 되어 학교에 갔을 때였습니다.

 


“독일어는커녕 영어도 알지 못해 걱정입니다!”

 

이런 설명에 담당 유치원 교사는 빙그레 웃으며 아이의 손을 이끌더니 ‘알았어요. 이따 오세요!’라는 말과 함께 문을 면전에서 확 닫는 게 아닙니까. 잠시라도 아이와 함께 지낼 시간이라도 허락할 줄 알고 갔던 제게는 충격이었습니다. 문이 닫히자마자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막내의 익숙한 목소리였습니다. 계속되는 울음소리에 문이 곧 열릴 것만 같아 유치원 앞에서 얼마 동안 서성거렸지만 유치원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죠. 그날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둘째 날, 어린 제 아들은 계속 배 아프다며 화장실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더니 간신히 데려간 유치원 앞에서도 제 아내의 손과 다리를 붙잡고 애절하게 버티고 있었습니다.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런 돌발 상황에 대처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거죠. 그리고 며칠 뒤, 담당 교사와 대화를 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들려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첫날은 거의 하루 종일 울었어요. 아무리 달래도 안 되었어요. 그런데 둘째 날은 그 울음이 반으로 줄더니, 셋째 날에는 약 30분 울더니 그것으로 끝이었어요. 그다음부터는 다른 아이들과 잘 놀던데요? 하하하~! 이젠 잘 적응했으니 걱정 마세요!”

 

그때 비로소 저는 환상이 깨졌습니다. 어린 나이에 외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반드시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실 외국 생활에서 자녀교육 문제로 남모를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다행히 그 모든 과정을 이겨내고 대학을 졸업하여 지금은 군 생활을 하고 있는 큰아들이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말 말아요, 어휴~! 동생은 더 힘들었을 거예요.”

 

그때 제가 또 하나 느낀 것은 영어로 ‘레팅 고’(letting go)라고 하는 자녀교육 방식이었습니다. 부모 품에서 과감히 놓아주는 교육 방식입니다. 저는 원래부터 독일인들이나 서구인들은 차가운 자녀교육에 익숙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개학 첫날이나 등교 초기에 학교와 유치원 앞에서 보이는 풍경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죠. 코끝이 붉어지도록 어쩔 줄 몰라 하는 엄마와 아빠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하는 아이들을 품에서 과감히 낯선 공간으로 떠나보냈습니다. 바로 ‘레팅 고’의 실천입니다.

 

정신건강의학자와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아이들에 대한 과잉보호는 아동학대처럼 나쁘다고 합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아이를 소유물의 일종으로 보는 결과물이라는 겁니다. 자녀를 건강하게 성장하게 하려면 따뜻한 품에서 떠나도록 밀어내야 합니다. 잠시 비틀거리더라도 인내하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잔잔한 바다는 좋은 뱃사공을 만들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최소한의 파도와 너울에도 적응하지 못한다면 성장해 더 큰 파도와 너울을 만나면 그 결과와 광경은 뻔하죠. 저는 가끔 기업의 인사담당 임원들한테서 이런 고충을 듣습니다.

 

“이런저런 청탁이나 연줄을 통해 들어온 젊은 직원일수록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몸만 어른이지 심리적으로는 완전히 어린이예요. 부서 배치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부모가 대신 항의하기도 한다니까요.”

 

응급환자의 생과 사를 가르는 데 이른바 골든타임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때를 놓치면 소중한 생명을 잃는 아주 중요한 시기. 이 말은 어린아이에서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덩치는 커져도 영원한 아이로 머물 테니까요. ‘레팅 고’, 사랑할수록 품안에서 과감히 놔줘야 합니다.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전 iMBC대표이사·MBC 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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