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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재단 축출 뒤 장애인 탈시설화 완료한 곳’서 새 도약 꿈꿔”
SVS·4·16재단·사회주택협회 손잡고
무담보 저리 대출로 자금 물꼬 터줘
설계자 ‘루연’ “유니버셜 기준 이상 설계”
지난 26일 대학로에 있는 ‘대항로’에서 김정하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이사장(오른쪽 둘째,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이 올 연말 완공 예정인 사회주택 ‘여기가(家)’의 모형을 앞에 두고 밝게 웃고 있다. 프리웰이 건설 중인 여기가는 우리나라 최초로 최중증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미·비혼 아동양육 가정과 소셜믹스를 이뤄 함께 생활할 수 있게 꾸릴 예정이다. 최중증장애인들의 주거 공간이 민간 복지법인에 의해 설계부터 추진된 것도, 미·비혼 아동양육 가정과 소셜믹스를 이루는 것도 여기가가 처음이다. 이날 여기가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힘을 모은 이들이 함께 모였다. 왼쪽부터 김준호 한국사회주택협회 팀장, 박정환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기금사업실 부장,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김 이사장, 임도균 건축사사무소 루연 대표.
“최중증장애인과 미·비혼 아동양육 가구가 함께 생활하는 ‘소셜믹스 사회주택’은 우리 사회의 도전이지만 도약이기도 합니다.”
지난 26일 대학로에 있는 ‘대항로’에서 만난 김정하(49)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이사장의 말이다. ‘대항로’는 ‘전국장애인차별연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장애인인권운동단체들이 모여 있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옆 건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장애인 탈시설 운동 엔지오인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이기도 한 김 이사장 앞에는 4층짜리 건물 3개 동의 모형이 놓여 있었다. 김 이사장이 “도전이지만 도약”이라고 얘기한 소셜믹스 사회주택 ‘여기가(家)’의 모형이다.
김 이사장과 함께 모형을 바라보던 박정환(48)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기금사업실 부장, 임도균(55) 건축사사무소 루연 대표, 이한솔(34)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김준호(44) 한국사회주택협회 팀장이 김 이사장의 말에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 ‘여기가’라는 도전에 힘을 함께 보태고 있는 ‘동지’들이다.
김 이사장과 함께 모형을 바라보던 박정환(48)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기금사업실 부장, 임도균(55) 건축사사무소 루연 대표, 이한솔(34)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김준호(44) 한국사회주택협회 팀장이 김 이사장의 말에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 ‘여기가’라는 도전에 힘을 함께 보태고 있는 ‘동지’들이다.
‘여기가(家)’ 조감도. 설계단계부터 최중증장애인과 미·비혼 아동양육 가구가 함께 생활하는 ‘소셜믹스 사회주택’에 맞게 기획됐다. 프리웰 제공
장애인 정책, 도전을 넘어 도약으로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양곡리에 건설 중인 ‘여기가’는 1466㎡의 대지에 들어설 주거공간으로 26.8~69.6㎡ 규모의 28세대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가’는 ‘도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우리나라 최초로 시도하는 것이 많다.
28세대 중 12세대는 침대에 누워서 활동하는 최중증장애인(와상 장애인)을 위해 설계된 주거공간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또 8세대는 미·비혼 아동양육 가구를 위한 공간이며, 나머지 8세대는 중장년 1인가구를 위한 원룸 공간이다. 이렇게 다양한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소셜믹스를 추진하는 것 역시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다.
이 모형의 공간은 올해 말이면 실물로 볼 수 있다. 프리웰이 여기가를 지을 시공사 선발 공고를 이미 지난 1월 말 국가종합전자조달 사이트인 ‘나라장터’에 올렸기 때문이다. 프리웰은 2~3월 중에 조건에 맞는 시공사와 공사계약을 체결한 뒤 올해 안에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하지만 대항로에 모인 다섯 사람은 “여기까지 오는 과정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도전 과정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 도전의 출발점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3월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사회복지법인 석암재단’(현 프리웰재단) 직원들의 제보를 받았다. 재단 설립자 이부일씨와 그의 일가 등이 장애수당 횡령, 식자재비 허위 청구 등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도에 진행된 옛 석암재단 시설비리 척결운동 모습. 설립자는 당시 법정구속돼 4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여기가 국토부 테마형 매입임대사업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8QniV6JpqqI&t=52s) 갈무리
“내 장애수당은 어디에” 거소 장애인의 호소
이에 앞서 2007년 초 석암재단 산하 김포 석암베데스다요양원(현 ‘여기가’)에 살던 장애인 한규선씨가 텔레비전을 보다 장애수당의 존재를 알고 문제를 제기했다. 한씨의 문제 제기는 감추어졌던 오래된 비리가 세상에 터져나오는 계기가 됐다.
이후 석암재단 직원들은 노조를 결성하고, 김 이사장은 석암재단 비대위와 공대위에 참여하면서 비리 재단 처벌에 앞장섰다. 1981년 서울 강서구에서 설립됐다가 김포로 이전한 석암재단에 대해 서울시는 여전히 감독권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시가 2007년 특별감사를 진행하자 횡령액이 수십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립자 이씨는 2008년 법정 구속된 뒤 4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비리를 저지른 설립자는 쫓아냈지만, 재단은 이미 빚만 20여억원이 남은 상태였다. 이후 임시이사회 체제로 유지되던 석암재단은 베데스다요양원의 이름을 ‘향유의 집’으로 바꾸었고, 2009년 정이사 체제가 되면서 재단 이름을 현재의 프리웰로 변경했다. 김 이사장은 2016년 이사로 참여한 뒤, 2018년에 이사장이 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무보수로 여기가 건축 문제 등 재단의 새로운 도전을 이끌어오고 있다.
비리 설립자 일가 축출 뒤 프리웰은 향유의 집에 살던 장애인 160여 명의 자립을 지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요양원 거주 장애인을 자립시킨 뒤 2021년 4월 향유의 집을 ‘폐지’했다. 감독기관 등 타의에 의해 문을 닫는 ‘폐쇄’와 달리 ‘폐지’는 법인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향유의 집은 우리나라 최초로 ‘폐지된 장애인 시설’이 됐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나라 장애인 운동에서 큰 성과로 남을 일이지만, 김 이사장은 한 걸음 더 도전의 발걸음을 내디뎠다. 폐지된 향유의 집 터에 최중증장애인도 거주할 수 있는 집을 짓는 일이었다. 향유의 집을 폐지하는 과정에서 “최중증장애인이 자립해 머물 곳이 없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비리재단 척결 뒤 탈시설 방침에 따라 지원주택으로 떠나는 장애인들. 프리웰은 향유의 집에 살고 있던 약 160여명의 장애인들의 자립을 지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요양원 거주 장애인을 자립시킨 뒤 2021년 4월 향유의 집을 ‘폐지’했다. ‘여기가 국토부 테마형 매입임대사업 영상’ 갈무리
탈시설 과정에서 느낀 최중증장애인 주택 문제
탈시설 장애인들이 거주 공간으로 배정받은 곳은 리모델링해야만 거주할 수 있는 곳이었고, 리모델링 뒤에도 휠체어 사용 장애인조차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최중증장애인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은 리모델링해도 나올 수 없었다. 김 이사장은 이에 따라 “최중증장애인의 거주에 적합한 주거공간 마련을 위해서는 설계 때부터 최중증장애인을 고려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 이사장은 향유의 집을 정리하던 중이던 2019년 이한솔 이사장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이 이사장은 대학생들의 주거권 문제를 다루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이사장이었다. 당시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이 은평구에서 관리하던 사회주택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셜믹스를 실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건물을 새로 짓는 방안을 쉽게 꿈꾸지 못했다. 너무 방대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이후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던 이 이사장은 2021년 3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공모하는 ‘테마형 매입임대주택’에 지원해보면 좋겠다”는 연락을 김 이사장에게 했다. 테마형 매입임대주택 사업은 “장애인·자립지원, 돌봄·육아·교육, 일자리·창업지원, 귀농·귀촌 등 사업시행자가 자유롭게 ‘운영 테마’를 담은 주택을 건설하고, 그것을 엘에이치가 매입해 운영을 위탁하는 사업”이었다.
테마형의 한 유형으로 ‘장애인·자립지원’이 있고, ‘공익법인’에 신청자격이 있는 것을 확인한 프리웰은 같은 해 10월 ‘여기가 사업’으로 응모했다. 김 이사장에 따르면, ‘여기가’라는 명칭은 “시설에 있던 장애인이 자립해 처음 지인들을 초청할 때의 모습에서 따왔다.” 대부분의 자립 장애인들은 이때 “여기가 바로 우리 집이에요”라고 기쁜 음성으로 ‘여기가’를 강조한단다.
여기가 사업은 같은 해 12월 테마형 매입임대주택 사업으로 최종 선정됐다. 하지만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총 50억~60억원대에 이르는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초기 자금이 없었기 때문이다.
엘에이치는 공사 진척에 따라 중도금을 주고 최종적으로 다 지어진 건물을 매입해주지만, 최초 중도금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인 초기 1년 동안이 문제였다. 이때 5억원 정도의 자체 자금이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에는 이런 큰돈이 없었다. 이때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SVS)이 손을 내밀어주었다.
2019년 1월 출범한 사회가치연대기금은 ‘사회적 금융 도매기금’이다. ‘사회적 금융’이란 쉽게 말해 사회적경제 등 사회적 가치를 지닌 사업들이 활성화하도록 돕기 위해 돈을 빌려주면서도, 적정한 이자를 받는 것이다. 적정한 이자를 받음으로써 돈을 빌려줄 선의의 재단 등은 늘어나고 ‘사회적 금융의 생태계’는 더 커지게 된다.
박정환(48) 사회가치연대기금 기금사업실 부장은 “여기가 사업은 사회적경제 생태계 효과가 큰 임팩트 투자라고 판단했다”며 “이에 4·16재단(상임이사 박래군)에 돈을 빌려줄 수 있는지 타진했다”고 했다. 박 부장은 “4·16재단이 자금을 대여해준다면 그것이 큰 시그널 효과를 낼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시그널 효과는 어떤 공익재단이 성공적인 선행사례를 만들면, 이후 이를 보고 보다 많은 공익재단이 임팩트 투자에 참여하게 되는 효과를 말한다.
2023년 5월에 열린 ‘여기가(家)’ 착공식. ‘여기가 국토부 테마형 매입임대사업 영상’ 갈무리
‘공익재단의 임팩트 투자 확대되기’ 기대
“우리나라 공익재단은 지금까지 대부분 자체적인 후원사업이나 복지사업을 할 뿐, 임팩트 투자 사업에 참여한 사례는 없어요. 그런데 4·16재단이 성공한다면 많은 공익재단이 임팩트 투자가 사회적 가치도 높이면서 돈도 벌 수 있음을 실감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박 부장의 제안을 받은 4·16재단은 공모 절차를 거쳐 5억원의 자금을 대여해주기로 결정했다. 임주현 4·16재단 사무처장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지만 안정성 문제를 이사진에게 설득하는 것이 과제였다”며 “사회가치연대기금이 상환에 대한 담보를 해주면서 자산운영위원회와 이사회를 거쳐 지난해 2월 지원했다”고 말했다. 임 사무처장은 “이달에 4.6% 이자율로 자금을 상환받게 되면, 다시 내부 논의를 거쳐 이를 공공기금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4·16재단이 받기로 한 4.6%의 이자율은 당시 은행금리에 비해 크게 낮은 것으로, 재단 이사진이 배임에 걸리지 않을 수준이었다.
하지만 사회가치연대기금을 통한 자금 조달이 프리웰에 정말 중요한 이유는 이 자금이 무담보로 지원된다는 것이다. 은행권 등 제도권 금융기관에서는 담보 없이 결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가치연대기금과 4·16재단, 그리고 한국사회주택협회가 서로 협력하면서 초기 마중물에 해당하는 자금을 무담보로 대여해줌으로써, 프리웰은 자금순환의 물꼬를 비로소 틀 수 있게 됐다.
자금 문제를 풀었지만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 바로 설계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되는 최중증장애인 주거시설 설계는 사회주택 설계 경험이 많은 ‘건축사사무소 루연’이 맡았다.
임도균 루연 대표는 “프리웰은 참 독특한 의뢰인”이라고 평가했다. “일반 의뢰인은 임대 건물이든 매매용 건물이든 모두 전용 면적이나 세대 수를 늘리는 것을 요구하는데 프리웰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설계가 유니버설디자인에 맞춰야 했지만, 사실 그것을 넘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병원처럼 넉넉한 복도, 침대가 들어갈 수 있는 넉넉한 엘리베이터도 설계에 넣었습니다. 모든 것이 최중증장애인을 고려한 선택이었습니다.”
임 대표는 또 하나 인상적인 것으로 모든 세대에 스프링클러를 단 것을 꼽았다. 추가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가는 스프링클러가 꼭 있어야 한다고 프리웰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정하 이사장은 “만일 장애인 주거공간에 불이 난다면 탈출이 쉽지 않다”며 “가장 생존 가능성이 높은 것이 스프링클러로 물을 쏘면서 소방관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다. 이에 따라 비용을 좀더 들여서라도 스프링클러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여기가의 스프링클러는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돈이 아니라 인간”임을 보여주는 상징물처럼 느껴진다.
석암재단과의 싸움으로부터 무려 17년이 지나고 여러 동지가 힘을 합치면서 최중증장애인 주거시설 여기가 프로젝트는 그 ‘도전’의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김정하 이사장은 “‘도약’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말한다. 그가 얘기하는 도약이란 “여기가 프로젝트의 성공을 통해 우리 사회의 장애인 탈시설화에 대한 인식, 새로운 소셜믹스에 대한 가능성 등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이다.
‘여기가’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이 지난 26일 대학로에 있는 ‘대항로’에서 앞으로 추진해나갈 소셜믹스 방법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도균 건축사사무소 루연 대표, 김정하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이사장, 박정환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기금사업실 부장,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과 김준호 협회 팀장.
장애인 인식 ‘도약’까지 뚜벅뚜벅 한 걸음씩…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공적인 소셜믹스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장애인 입주민과 비장애인 입주민, 그리고 지역주민들까지 포함한 소셜믹스’가 어떤 형태로 가능할지에 대한 물음표가 남아 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하는 ‘최중증장애인이 포함된 소셜믹스’이니만큼 온전한 해결책이 쉽게 도출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김정하 이사장과 그의 ‘동지들’은 인터뷰 때도 1층 카페와 건강관리실 개방, 김포지역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 강화 등 다양한 소셜믹스 방안을 제시하고 논의했다.
김 이사장 등이 그렇게 ‘도전’하는 자세로 뚜벅뚜벅 걸어나갈 때, 소셜믹스의 성공을 통한 우리 사회의 ‘도약’도 어느덧 가깝게 다가와 있을 것이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