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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여러분, 절차와 규정만 찾다가 놓친 것 없나요?”

관료주의 복지행정 비판한 ‘나, 다니엘 브레이크’ 상영회 연 김수영 양천구청장

등록 : 2017-03-02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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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장실에서 단체관람 이유를 설명하는 김수영 양천구청장. 대학은 국문과를 졸업했지만 석·박사 과정에서 사회복지정책과 사회적기업을 공부했다. 김 구청장은 최근 50대 독거 남성의 복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백 마디의 말, 백 번의 교육보다 이 영화 한 편이 우리 직원들에게 공무원으로서의 마음가짐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 어떠한지를 여실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지난달 20일 오후 4시 양천구 양천문화회관에서 양천구 직원들과 영화를 단체 관람한 김수영(53) 양천구청장은 공무원의 역지사지 자세를 강조한 감상평을 전했다.

김 구청장이 조례 대신 선택한 영화는 201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나, 다니엘 블레이크>. 성실하게 목수로 살아가다 심장병이 악화돼 일을 할 수 없게 된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가 영국 정부의 관료적인 복지정책에 막혀 인간의 존엄성을 잃고 숨져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난달 21일까지 이틀간 3회에 걸쳐 열린 양천구청의 특별한 영화 상영회에는 양천구청 전 직원 1200명뿐 아니라 양천구의 통장·사회복지관 직원 등 1500명가량이 참여했다.

-전 직원 대상 단체 관람회는 쉬운 일이 아닌데, 영화의 어느 대목에 꽂혔는지?

“찾동(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을 하면서 우려됐던 것이, 직원들이 이벤트성 행사로 여기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직원들이 해야 하니까 하는 게 아니라, 자기 마음에 울림이 있어야 지역의 어려운 사람을 찾아갈 때 관료적으로 대하지 않고 따뜻하게 마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 이 영화를 보고 ‘딱 이거’다 싶었다.

기준만 맞으면 해줘야 하는 게 영국의 복지 시스템이다. 그러다 보니 더 관료화되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대상화한다. 이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이 영화다. 영화 보면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 생각나더라.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을 대상화하다 보면 그들을 서류로밖에 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 직원들은) 그들이 얼마나 수치심을 가질지 생각하고 있는가? 영화 속 다니엘 블레이크는 나를 더 이상 구차하게 만들지 말라고 선언한다. 인간으로 대우해 달라는 외침이 우리 직원들에게도 울림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구청장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다 전달됐다고 보나.

“저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두 달에 한 번씩 창의혁신아카데미라고 해서 직원들 상대로 전문가 강의를 1~2시간 하는데, 그 강의 듣는 것보다 영화 한 편이 더 크게 마음을 움직인다면 그 효과도 더 클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내용 중 절대로 따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영국의 복지 시스템이 있다면?

“(영국의 공무원이 다니엘 블레이크에 누누이) 절차 이야기를 하는 대목이다. 예컨대 이미 통지서를 받았는데 전화로, ‘통지서 갈 겁니다’라고 통보하고(웃음).

구청장 3년 동안 느낀 점은 생각보다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이 많다는 점이다. 또 한편으론 ‘이런 일 해보자’고 하면 절차와 규정을 들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더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절차와 규정이 중요하긴 하나 무엇이 우선인지 한번 생각해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절차와 규정만 찾다가 놓치는 부분은 없는지 다시 한번 보자는 취지에서, 복지 담당 공무원뿐 아니라 전 부서 직원들이 보도록 한 것이다.”

-복지 행정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온 것으로 알고 있다.

“구청장 취임 첫해인 2014년 11월부터 신월3동 등 복지 수요가 많은 4개 동에 먼저 방문복지팀을 신설하고, 이듬해 7월에는 이를 바탕으로 양천형 찾아가는 방문복지를 18개 동주민센터 전체로 확대하는 조직 개편을 추진했다.

처음 그걸 하자고 했더니 사회복지 하는 분들이 ‘전달할 것이 없는 복지전달체계의 개편 아니냐’는 지적도 했다(웃음). 재원이 없는 상태에서 조직만 개편하는 것 아니냐고 한숨을 푹 쉬더라.

그래서 기존의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형식적 기구가 아니라, 실질적인 민간 부분의 복지 지원 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 목욕탕·세탁소 운영자 등 지역 사정을 잘 아는 분들이 참여해서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고 있다.”

지역 사정에 맞는 복지 체계 구축도 양천구의 특징이다. 예컨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9명에 불과한 여유 있는 목5동의 한 교회가 어려운 사람이 많은 신월3동을 돕는 경우이다. 또한 지난 12월 건강음료 배달사원, 가스검침원 등 1700명을 ‘이웃살피미’로 위촉해서 독거 어르신 등 홀로 사는 사람들의 안부를 살피고, 이상 움직임을 발견할 경우 즉각 동주민센터에 신고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했다. 김 구청장의 복지 분야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열정은 국회의원 보좌 업무를 하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국문과 출신이지만 사회복지 정책·사회적기업 관련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 기고문(2월17일치 11면)에서 중년 독거남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시하면서 이들에 대한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했는데….

“매일 아침 당직실에서 올린 구청 동향 보고를 보다 보면 가끔 병사하거나 자살한 사람의 뉴스를 보곤 한다. 그런데 유독 50대 독거남이 많다.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이라고 하면, 어르신만 찾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혼자 있는 남성들이 위험한 분들이다. 이들은 동주민센터에서 찾아가더라도 자존심 때문에 대개 도움을 거절하고, 알코올중독과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많다. 이들 중에는 가정이 해체된 사람이 많다. 가정에서도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이 사회는 남자가 한번 실패하면 재기하기 어렵다. 혼자 나와서 주민등록도 안 돼 있는 사람들이 많다. 마침 3월 중순까지 주민등록 일제 조사 기간이어서 주민등록상 50대 이후 64살까지 6000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 중이다. 특별히 관심 가져야 할 분이 몇 명인지 중간 정도 되는 사람은 몇 명인지, 단 몇 명이라도 구제하고 바탕을 마련해줄 계획이다.

-당장 지원해줘야 할 사람들은 얼마 정도로 보는가?

지난해에는 65살 이상 독거 어르신만 전수조사했다. 3월10일까지 조사를 마쳐야 확실해지겠지만, 양천구에서는 20~30명을 특별히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건강검진이 우선이다. 자포자기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므로, 본인이 알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엘이디(LED) 시설 공사도 해줄 계획이다. 엘이디 전등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 좋다고 한다. 전기요금도 형광등에 비해 적게 나온다.

글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사진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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