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자녀 교육서 가장 힘든 것, 믿고 기다려주는 것!

대학입시 실패해 방황하는 딸 둔 전업맘 “내 탓 아닌지…”

등록 : 2017-03-09 14:09 수정 : 2017-03-09 18:02

크게 작게

Q.춘래불사춘(봄은 왔어도 봄이 아니다)이라고 했던가요? 길고 긴 겨울이 끝나고 드디어 3월이 왔지만, 제 맘은 아직도 차가운 얼음장 같습니다. 저에게는 딸 하나가 있는데, 지난해 수능시험에서 기대했던 성적이 나오지 않아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한 후 딸아이가 무척 방황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성적에 실망해서 잠시 정신적으로 흔들거리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벌써 몇 달째 깊은 우울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입학 시즌이 시작된 뒤부터 그 정도가 더욱 깊어져 걱정됩니다. 대학에 입학한 동창생들의 소식, 신입생들과 관련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재수 학원도 다니지 않으려 하고 세상 그 누구와도 대화를 단절한 상태입니다. 저와는 비교적 대화를 자주 하던 사이였기에 더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직장에 다니는 엄마입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직장 일에 바쁘다 보니 다른 전업주부 엄마들처럼 아이에게 더 신경 쓰지 못한 것은 아닌지 자책도 됩니다. 물론 저와 제 남편도 처음에는 좋은 대학 가기를 희망했지만, 이러다 무슨 일이 나는 것은 아닌지 솔직히 겁도 납니다. 지금은 그저 유명 학교도 아니고, 아니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도 좋으니 그저 건강하기만 바랄 뿐입니다.

A.교육에 관한 한 우리는 양가감정(모순 감정)의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양가감정이란 서로 상충하는 감정이나 가치가 공존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는 인생은 성적순이 아니라 말하고 학력 철폐의 중요성을 외치지만, 막상 자기 자녀의 문제에 관해서는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지요. 그만큼 우리 사회는 학력사회의 뿌리가 여전히 깊고 또 고질적이라는 증거입니다. 부모의 학력이 높으면 자녀의 학력 역시 ‘당연히’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반대로 부모가 학력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으면, 또 그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자녀에게 뛰어난 학업 성취를 기대합니다. 인생 역전, 아니 학력 역전을 바라는 마음이죠.

많은 자녀들이 입시지옥 속에서 희망고문을 당합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바라는 부모의 마음, 아이들은 힘겨워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학력이 처지고 대학입시에서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죄 아닌 죄의식을 안고 살아갑니다. 한국판 ‘주홍글씨’라고 할까요. 대학입시에 삐끗하면 평생 그것으로 몇 등 인생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의 민낯이니까요.

자녀 교육열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서울 강남의 어느 지역에는 학원 못지않게 성업 중인 곳이 있습니다. 학생이 아닌 학부모 대상의 마음 상담입니다. 그곳을 찾는 엄마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 있어 보이며, 상당수의 엄마들은 늘씬하고 화려한 외모까지 갖추었습니다. 겉으로만 보아서는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상담을 위해 찾아오는 분들의 마음속에는 남모르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마치 납덩어리처럼 무거운 그 무엇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 무엇이란 바로 교육과 관련한 열등감과 자책감입니다.

남편이 명문 대학 출신에 전문직에 종사한다면 그럴수록, 시댁 가족들의 학벌이 화려하면 할수록 그 집안 며느리의 상대적 박탈감은 큽니다. 그래서 더욱 자녀 교육에 열정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조건이 좋고 부모의 열의가 뒷받침된다고 해서 모든 아이들이 다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 성적이 나쁘면 남편과 시댁의 눈길이 모두 자기에게 차갑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고 합니다. 집안의 유일한 학습 열성 유전자인 엄마 때문이라 생각하는 것이죠. 그 스트레스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합니다. 편견과 냉대입니다. 몇 년 전 어느 재벌가로 시집갔던 연예인이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엘리트주의가 큰 원인이었습니다. 상담을 받은 엄마들은 말합니다.

“이게 정말 행복한 건가요?”


하나의 단계에서 또 다른 단계로 넘어갈 때, 힘들어하고 좌절하는 상황을 가리켜 ‘성장통’이라 말합니다. 취학, 진학, 입시, 군대, 취업, 결혼, 이혼, 그 단계 단계마다 쉽게 건너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단계마다 고통스러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으로 미뤄볼 때 따님은 시험 성적 결과에 대한 정신적 충격이 심하고, 부모님의 기대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자신감을 잃고 상처가 무척 큰 듯합니다. 정신적인 상처는 마치 육체의 상처가 남듯, 치유하지 않고 방치해둘 경우 위험하다고 전문의들은 말합니다. 상황이 그 정도면 일단은 전문의를 찾아가 상담받기를 권합니다. 누군가에게 몽둥이로 맞을 때만 상처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 저 깊은 속에도 시퍼렇게 멍들고 때로는 깊게 파이기도 합니다. 남들의 시선 의식하지 말고, 조용히 자녀와 함께 진단받고 상처를 치유하는 게 우선인 듯합니다.

‘나 때문이야!’라고 자신에게 도덕적 귀책사유를 몰고 가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성장을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녀의 성적이 곧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물론 대신 공부해줄 수도 없습니다.

자녀 교육에 가장 중요하면서 가장 실천하기 힘든 것이, 기다려주고 인내해주는 겁니다. 함께 있다는 느낌, 언제라도 항상 최후까지 기다려준다는 그 신뢰를 자녀에게 주는 게 중요한 듯싶습니다. 물론 엄마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가지요. 그래서 어머니를 위대한 이름이라고 말합니다. 묵묵히 기다려주세요. 아이는 다시금 화사한 웃음과 함께 엄마 곁으로 다가올 겁니다. 힘들어도 기다려주세요!

글 손관승 라이프코치·칼럼니스트 전 대표이사

* 상담을 원하시는 독자는 손관승씨 이메일(ceonomad@naver.com)로 연락해 주세요.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