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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권 구청장 “젊은 영등포 향한 정원도시 출발점 삼을 것”
가로변, 골목길 등 일상 곳곳 정원 확대
‘마을정원사 양성’ 등 정원문화도 확산
영등포공원에선 ‘정원 소풍’ 축제 열어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이 지난 17일 오후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문래동 꽃밭정원’에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정원에 온 중고등학생들의 놀이기구를 밀어주고 있다. 최 구청장은 2001년 기부채납 받은 뒤 창고로 쓰이던 땅을 23년 만에 꽃밭정원으로 조성해 주민들에게 돌려줬다
“여기 꽃밭정원은 영등포에 터를 잡은 주민들이 문래동을 사랑한 흔적입니다.”지난 17일 오후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문래동 꽃밭정원’.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이 지난 5월8일 문을 연 꽃밭정원의 의미를 짚은 표지 ‘문래동 꽃밭정원 이야기’를 읽어 내려갔다. 꽃밭정원 입구에 세워진 표지판에 새겨진 글은 최 구청장이 직접 쓴 것이다.
표지판 너머 약 2천 평 규모의 정원 곳곳에서는 성별·나이 구분 없는 다양한 구민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새 정원은 이런 다양한 웃음을 모두 품을 만큼 다채롭고 조화롭게 꾸며졌다. 어린이를 위한 청결 ‘모래놀이터’와 상상력 풍부한 놀이기구 △성인을 위한 운동기구 △여러 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정원문화센터’ △정원 작가들의 상상력이 듬뿍 담긴 ‘작가의 정원’ △겨울에도 푸르른 ‘사계절 잔디마당’ 그리고 △습식과 건식으로 구성된 ‘맨발 황톳길’등 갖가지 시설이 빼곡 자리잡고 있다.
최 구청장이 이 꽃밭정원을 ‘문래동 사랑’이라 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지는 문래동의 오랜 역사와 변천 과정을 배경 삼은 것이다. “꽃밭정원 자리는 문래동의 오랜 역사를 담은 현장입니다. 산업화 시대의 상징 중 하나인 ‘미싱을 돌리던’ 대표적 장소였지요.” 최 구청장 말대로 1930년대 문래동에는 동양방적, 종연방적 등 여러 방적 공장이 생겨났다. 이에 해방 뒤인 1952년 동 이름을 우리 식으로 바꿀 때 문래동이 됐다. 방적기계를 상징하는 ‘물레’를 변형해 ‘문래’(文來)가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므로 문래는 최 구청장의 말대로 “미싱을 돌려서 동생들 공부시키고 부모님을 부양했던 애틋한 여공들의 마음을 담은 이름” 이기도 하다.
최 구청장이 이 꽃밭정원을 ‘문래동 사랑’이라 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지는 문래동의 오랜 역사와 변천 과정을 배경 삼은 것이다. “꽃밭정원 자리는 문래동의 오랜 역사를 담은 현장입니다. 산업화 시대의 상징 중 하나인 ‘미싱을 돌리던’ 대표적 장소였지요.” 최 구청장 말대로 1930년대 문래동에는 동양방적, 종연방적 등 여러 방적 공장이 생겨났다. 이에 해방 뒤인 1952년 동 이름을 우리 식으로 바꿀 때 문래동이 됐다. 방적기계를 상징하는 ‘물레’를 변형해 ‘문래’(文來)가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러므로 문래는 최 구청장의 말대로 “미싱을 돌려서 동생들 공부시키고 부모님을 부양했던 애틋한 여공들의 마음을 담은 이름” 이기도 하다.
한 어머니가 어린아이와 함께 꽃밭정원을 걷고 있다.
꽃밭정원 자리는 그중에서도 대표적 방적회사인 옛 방림방적 자리였다. 방림방적은 재일동포 기업가 서갑호(1915~1976) 회장이 1962년 설립한 회사로 규모가 20만 평 정도에 이르는 큰 기업이다. 방림방적은 2000년대 들어 설비를 지방으로 이전하고, 아파트 등을 지었다. 현재 꽃밭정원 터는 이런 과정에서 방림방적이 2001년 4천 평을 영등포구에 기부채납한 곳이다.
문제는 기부채납 받은 땅이 20년이 넘게 구청 사업부서 자재창고로 쓰이는 등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자재창고 둘레는 약 5m 높이의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어 지역의 공기마저 답답하게 만들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였다. 당시 영등포에는 자재창고와 가림막을 없애달라는 주민 민원이 많았다고 한다. 최 구청장은 항상 그 민원을 염두에 두고 있다가 “지난해 4월 전남 순천에서 열린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방문해 정원의 효용성을 눈여겨보면서 낡은 자재창고를 정원으로 바꾸면 좋겠다는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진행은 일사천리였다. 최 구청장은 곧 구의회 사업보고 및 구민 설명회 등을 진행했고, 서울시로부터 시비 23억5천만원의 지원금을 따냈다. ‘문래동 사랑’ ‘영등포 사랑’의 마음들이 하나로 모여 큰 힘을 발휘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10월부터 가림막을 없애고 본격적으로 정원 조성에 나섰다.
아이들과 함께 맨발 황톳길을 걷는 어머니들.
‘문래동 꽃밭정원’이 지난 8일 문을 열자 문래동 주민들의 일상이 크게 바뀌었다. 기피하고 돌아가던 장소가 이제 생활의 중심이 됐다. 지난 17일 꽃밭정원에서 만난 위봉한(71), 김광순(65) 부부는 22개월 된 손녀 수아를 데리고 매일 꽃밭정원을 찾는다. 세 사람이 모두 기분 좋은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광순씨는 수아의 상황을 가장 먼저 고려했다. 김씨는 “요즘 많은 놀이터에 모래가 없다”며 “소독된 청결한 모래놀이터가 있어서 수아가 촉감놀이를 하는 데 정말 좋은 장소”라고 말했다. 위봉한씨는 “이곳에서 매일 황톳길을 걸은 뒤 세족장에서 깨끗이 씻으면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이렇게 매일 손녀와 함께 공원에 오시면 부부 금슬이 더 좋아지겠다”고 하자 두 사람은 밝은 웃음으로 답했다.
꽃밭정원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돌도록 만들어진 맨발 황톳길은 특히 어른들에게 인기가 많아 이용자들이 멀리서도 찾아온다. 당산1동에서 어린이집 보조교사로 일하는 최순자(71)씨는 매일 일이 끝나면 자전거를 타고 꽃밭정원 황톳길을 찾는다. 이날도 황톳길을 10바퀴 돌고 난 최씨는 땀으로 촉촉해진 얼굴로 “대한민국에서 좋다는 황톳길은 거의 다 가봤다”며 “가까운 곳에 이런 좋은 황톳길이 생겨 생활에 활기가 도는 것 같다”고 말했다. 4살 된 선우를 데리고 나온 선우 엄마도 “파주에 사는 선배가 꽃밭정원 황톳길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함께 정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문래동 꽃밭정원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찾는 곳이지만, 아마도 이곳을 찾는 ‘가장 어린 방문객’은 정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문래자이어린이집’의 1~2살배기 원아들일 것이다. 김정아(51) 문래자이어린이집 원장은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들과 함께 멀리 떨어진 공원을 가기가 어려웠다”며 “꽃밭정원이 생겨서 실외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꽃밭정원은 안전하고 가깝고 모래놀이터와 황톳길까지 있어서 앞으로 주 2회 정도 야외 활동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구민이 ‘작가의 정원’에 핀 꽃을 사진 찍고 있다. 꽃밭정원에는 정원작가가 기획한 작가의 정원이 3개 조성돼 있다.
꽃밭정원을 시민들의 힘으로 잘 유지하겠다는 다짐의 목소리도 들린다. 김미자(69) 영등포구의 자원봉사연합회 회장은 “구민들이 꽃밭정원을 스스로 아끼는 모습을 보이도록 자원봉사자들도 활동을 더욱 열심히 할 것”이라며 “가령 규정을 모른 채 반려견과 함께 황톳길을 걷거나 모래놀이터에 어른이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주민들에게 잘 알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등포 주민들의 꽃밭정원 사랑이 깊어지면서 지난 16일에는 문래동에 있는 14개 직능단체 대표들이 공동으로 최호권 구청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꽃밭정원에서 최구청장에게 감사패를 직접 전달한 최균범 문래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장은 “23년간 닫혀 있던 공간을 이렇게 ‘멋진 정원’으로 만들어주셨다는 점에서 14개 직능단체가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아 감사패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래동 꽃밭정원은 ‘멋진 정원’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영등포구가 본격적으로 추진할 ‘정원도시 영등포’의 모델이기 때문이다. 최 구청장은 “문래동 꽃밭정원은 문래동의 변화를 넘어 영등포가 정원도시로 변화하는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라며 “앞으로 공원, 가로변, 골목길, 교통섬, 마을마당 등 일상 곳곳에 정원을 확대해 영등포구를 젊은 도시, 건강 힐링도시로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영등포구는 우선 5월24~26일 ‘정원소풍’이라는 이름으로 영등포역 뒤편에 있는 영등포공원에서 첫 번째 정원축제를 연다. 최구청장은 ‘정원소풍’에 대해 “구민이 참여한 공감정원, 가족 화분 만들기, 구민사랑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 정원의 가치를 구민들에게 널리 알려나가는 역할을 할것”이라고 말했다.
꽃밭정원과 정원 근처의 아파트 모습. 높이 5m의 가림막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정원으로 바뀌면서 주변 주민들의‘생활의 중심’이 됐다
영등포구의 정원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정성문 영등포구청 푸른도시과 과장은 “앞으로 해마다 정원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정원축제를 통해 영등포구에 있는 오래된 공원들의 시설을 새롭게 바꿔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 과장은 또 “큰 정원뿐만 아니라 작은 자투리땅이라도 주민들이 자연을 느낄 수 있게 꾸밀 것”이라며 “가로수길을 활용한 보행 정원, 안양천 등지에 만들어놓은 황톳길을 활용한 수변 정원, 경로당·복지관에 조성하는 실버 정원, 학생들을 위한 스쿨 정원 등 생활 밀착형 정원”들을 점차 확대해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정 과장은 또 “현재 문래동 꽃밭정원과 영등포공원 등 2곳에 설치된 정원문화센터를 내년에 2곳 더 늘릴 예정”이라며 “센터를 중심으로 마을정원사 양성 교육 등 각종 교육을 해 정원 문화를 넓혀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최호권 구청장은 “문래동 꽃밭정원을 출발점으로 한 정원도시 영등포 사업을 통해 구민들이 5분 거리에서 녹지를 접할 수 있는 5분 녹지생활권을 만들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올해 신년사에서 “2024년을 젊은 영등포를 향해 힘차게 도약하는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힌 최 구청장은 “젊은 영등포를 이루는 데는 하이테크와 같은 첨단도 중요하지만 녹색의 삶도 필수”라며 “‘빨간 꽃 노란 꽃’ 등 각종 꽃이 만발한 영등포를 만들기 위해 더욱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구청장의 다짐 위로 문래동 꽃밭정원을 찾은 주민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김보근 선임기자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