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화리에서 상도3동으로
동작02, 동작11, 동작19 마을버스 종점이 사자암이다. 조선 시대인 1398년(태조 7년)에 무학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사자암이 마을버스 종점에서 약 200m 거리에 있다. 마을버스 종점 사자암 정류장과 사자암 모두 상도3동에 속한다.
옛날에 국사봉 북서쪽 기슭 아래 신씨 성을 가진 부잣집이 있었다. 어느 날 그 집에서 상을 당해서 좋은 묏자리를 찾아 땅을 팠는데 그곳에서 복숭아꽃이 나왔다. 그때부터 복숭아꽃이 나온 자리 인근을 아울러 성도화리라 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성도화리에서 성도리, 성대리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복사꽃 때문에 성도화리라는 이름을 얻은 마을, 지금은 상도3동이다.
사자암 종점은 상도3동 남동쪽 끝자락이자 국사봉 북서쪽 기슭에 있다. 종점에 내려서 상도타워아파트 옆 골목길로 올라간다. 마을 뒷산이 국사봉이다.
산비탈에 들어선 마을이 70~80년대풍이다. 길게 뻗은 좁은 골목이 산비탈 마을을 구획하듯 가로 세로로 났다. 띄엄띄엄 그려진 몇 개의 벽화를 빼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 마을이다. 담벼락에 그림이 있는 집과 낡은 기와지붕이 있는 집 사이 골목으로 들어간다. 어른 두 명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면 골목이 꽉 찰 것 같다.
갈라진 회벽에 나무 쪼가리로 만든 작은 문이 굳게 닫혔다. 나무가 들뜨고 갈라졌다. 문고리를 감고 있는 굵은 철사에 녹이 잔뜩 슬었다.
하지만 생활의 편린이 푸근하게 느껴지는 건, 이곳이 추억 같은 골목이기 때문일 것이다. 칠 없는 시멘트벽에 어른 자전거와 아이들 자전거가 포개져 기대 있다. 아빠와 아이가 함께 자전거를 탔던 행복한 시간이 골목에 소복하게 쌓여 있는 것 같았다.
오래된 집과 골목이 따듯하게 느껴지는 건 그 시절을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날이 더워지면 마을 아줌마들은 골목 어귀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과 골목을 지나는 바람을 쐬며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아줌마들이 모이는 곳이 옛날로 치면 동구나무 아래 평상이자 그늘 좋은 담장 아래 바람길이다. 골목에서 아줌마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꽃 피는 봄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흙냄새가 실려 골목에 퍼지고 있었다.
마을 골목을 뒤로하고 사자암에 도착했다. 사자암은 국사봉 기슭에 있는 사찰로 1398년에 무학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사자암 창건에 얽힌 이야기는 두 개다.
국사봉이 북쪽을 향해 달려가는 호랑이의 형국인데, 무학대사가 풍수지리상으로 조선의 수도인 한양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어서 그 기운을 누르기 위해 사자암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하나다.
다른 하나는 만리현(지금의 만리동)이 남쪽으로 달아나려는 호랑이의 형국인데, 무학대사가 국운에 좋은 호랑이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국사봉에 사자암을 지었다는 이야기다.
내용은 다르지만 두 이야기 모두 새 나라의 문을 연 조선의 안녕을 기원했던 무학대사의 뜻이 담긴 것은 같다.
국사봉에는 나라를 생각한 또 한 인물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세종의 맏형인 양녕대군 이야기다. 동생인 세종에게 왕의 자리를 양보한 양녕대군이 국사봉에 올라 나라와 동생을 생각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국사봉이라는 이름도 거기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