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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정현석 종로구 도로과 도로계획팀장이 경복궁 돌담길에 깔린 정다듬 표면처리된 자연화강석 친환경 보도블록을 설명하고 있다.
‘궁궐 안을 산책하는 느낌.’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을 지날 때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렇게 느낄 수 있다. 왜일까?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헌법재판소 앞까지 종로구가 개발한 ‘친환경 보도블록’을 깔았기 때문이다.
이 친환경 보도블록들은 여러모로 경복궁과 창경궁 등 궁궐 안 임금의 산책로인 ‘어도’를 닮았다. 우선 미끄러운 일반 보도블록과 달리 발이 땅에 착 달라붙는 안정감이 든다. 표면을 정이나 작은 구슬로 쳐서 울퉁불퉁하게 처리하는 ‘정다듬’이나 ‘잔다듬’을 한 덕이다. 걷다 보면 보도블록 사이로 자라난 잔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역시 보도블록과 블록 사이가 콘크리트 등으로 채워진 일반 보도블록과 달리 흙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곳만이 아니다. 종로에는 이런 ‘어도 닮은 보도블록’이 곳곳에 있다. 자하문로를 비롯해 북촌로, 새문안로, 창경궁로, 혜화동 로터리, 종로구청 앞길 등에 친환경 보도블록이 설치됐으며, 점차 많은 길에 새 보도블록이 깔리고 있다.
보도블록 길이 어도처럼 변한 비밀은 무엇일까? 정현석(51) 종로구 도로과 도로계획팀장이 바로 그 비밀의 열쇠를 지니고 있다. 정 팀장은 1991년 공채로 서울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뒤 토목 관련 일을 주로 해왔다. 도로, 하천, 하수도 등이 정 팀장의 전문 영역이다. 정 팀장은 2013년 종로구에 온 뒤에도 도로 관련 일을 맡았다. 그중에서도 일반인들에게 품위 있는 도보 환경을 제공하는 친환경 보도블록 설치에 열정을 갖고 매달려왔다.
“가장 큰 비밀은 보도블록의 두께에 있습니다. 일반 보도블록은 화강석이 3~5㎝에 불과한데, 친환경 보도블록의 두께는 10㎝나 됩니다.”
‘3㎝ 대 10㎝.’ 간단해 보이는 이 두께의 차이가 보도블록의 품위를 가른다는 것이다. 기존 보도블록들은 화강석의 두께가 3㎝로 얇다 보니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밑에 콘크리트를 깐다. 그리고 콘크리트와 화강석을 결합시킨다. 하지만 이 보도블록은 15년이면 수명이 다한다. 그는 “돌과 콘크리트 물성치(물질의 물리적 성질을 나타내는 값. 밀도, 점성 등)가 다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보도블록이 탈락되고 깨지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15년 이전이라도 상하수도나 도시가스 등 시민 생활에 밀접한 매설 공사를 하다 보면 보도블록은 그대로 폐기물이 된다. 매설 작업을 위해 콘크리트를 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0㎝ 친환경 보도블록은 다르다. 두꺼워서 잘 깨지지 않기 때문에 밑에 콘크리트 없이 흙과 모래만 깔아도 된다. 표면에 ‘잔다듬’이나 ‘정다듬’을 해도 화강석이 깨지지 않는다. 매설물 공사 때도 화강석만 그대로 들어내면 돼 재활용도 된다. 빗물이 보도블록 사이로 흡수돼 도시 홍수도 예방할 수 있다. 내구성도 길다. 조선시대 궁궐 안 어도에 깔린 돌이 600년을 버티고 있는 것이나, 로마시대 주도로인 아피아 가도를 23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다 바닥에 깐 돌이 두껍기 때문이다. 아피아 가도의 바닥돌은 무려 30㎝나 된다. 종로구는 건축사 출신인 현 김영종 구청장이 민선 5기로 구청장에 취임한 다음 해인 2011년 이런 친환경 보도블록 개념을 확립했다. 이후 종로구 여러 곳에 새 보도블록을 시공해왔다. 60년 보도블록 역사를 획기적으로 바꾼 시도였다. 정 팀장은 부임한 뒤 친환경 보도블록 개념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나갔다. 지난해에는 우리 전통가옥의 대청마루 문양을 활용한 친환경 보도블록의 디자인과 관련해 특허를 신청해 디자인 특허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친환경 보도블록 사용이 마냥 순조롭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서울시 관계자들의 반대가 심했다. 초기 자재비와 시공비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두꺼워진 만큼 화강석 구매 비용 등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종로구에서는 100년이 지나도 쓸 수 있는 친환경 보도블록이 멀리 보면 훨씬 경제적이라는 점을 끈질기게 설득해, 결국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이해와 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 정 팀장은 “현재는 전국에서 30여 곳이 넘는 지자체가 친환경 보도블록을 배우기 위해 종로구를 찾는다”고 말했다. 2015년에는 김 구청장이 중국 베이징에 친환경 보도블록을 소개하기도 했다. 정 팀장은 “보도블록은 도시의 얼굴이자 쇼윈도”라며 “친환경 보도블록이 확산돼 100년 뒤 서울의 모습이 더욱 품위 있게 변했으면 한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글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조진섭 기자 bromide.js@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하지만 10㎝ 친환경 보도블록은 다르다. 두꺼워서 잘 깨지지 않기 때문에 밑에 콘크리트 없이 흙과 모래만 깔아도 된다. 표면에 ‘잔다듬’이나 ‘정다듬’을 해도 화강석이 깨지지 않는다. 매설물 공사 때도 화강석만 그대로 들어내면 돼 재활용도 된다. 빗물이 보도블록 사이로 흡수돼 도시 홍수도 예방할 수 있다. 내구성도 길다. 조선시대 궁궐 안 어도에 깔린 돌이 600년을 버티고 있는 것이나, 로마시대 주도로인 아피아 가도를 23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다 바닥에 깐 돌이 두껍기 때문이다. 아피아 가도의 바닥돌은 무려 30㎝나 된다. 종로구는 건축사 출신인 현 김영종 구청장이 민선 5기로 구청장에 취임한 다음 해인 2011년 이런 친환경 보도블록 개념을 확립했다. 이후 종로구 여러 곳에 새 보도블록을 시공해왔다. 60년 보도블록 역사를 획기적으로 바꾼 시도였다. 정 팀장은 부임한 뒤 친환경 보도블록 개념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나갔다. 지난해에는 우리 전통가옥의 대청마루 문양을 활용한 친환경 보도블록의 디자인과 관련해 특허를 신청해 디자인 특허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친환경 보도블록 사용이 마냥 순조롭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서울시 관계자들의 반대가 심했다. 초기 자재비와 시공비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두꺼워진 만큼 화강석 구매 비용 등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종로구에서는 100년이 지나도 쓸 수 있는 친환경 보도블록이 멀리 보면 훨씬 경제적이라는 점을 끈질기게 설득해, 결국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이해와 협조를 받을 수 있었다. 정 팀장은 “현재는 전국에서 30여 곳이 넘는 지자체가 친환경 보도블록을 배우기 위해 종로구를 찾는다”고 말했다. 2015년에는 김 구청장이 중국 베이징에 친환경 보도블록을 소개하기도 했다. 정 팀장은 “보도블록은 도시의 얼굴이자 쇼윈도”라며 “친환경 보도블록이 확산돼 100년 뒤 서울의 모습이 더욱 품위 있게 변했으면 한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글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사진 조진섭 기자 bromide.js@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