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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배우들, 무대서 온전한 나를 찾다”

송파구·송파문화재단 ‘엄마배우 프로젝트’ 3년차 운영

등록 : 2024-08-15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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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송파문화재단이 3회째 연 ‘엄마배우 프로젝트’에 30~60대 여성 17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로 만든 극을 무대에서 연기하며 ‘나’를 찾아가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7월20일 송파여성문화회관에서 열린 공연발표회 무대 모습.

마치 여고 졸업식 같았다. 이동근 송파문화재단 대표이사가 한 명씩 ‘○○○ 배우님’이라고 호명하고 수료장을 전했다. 지난 7월24일 오전 송파여성문화회관 문화누리터. 이날 열린 ‘엄마배우 프로젝트 수료식’에 참여해 수료장을 받은 ‘엄마’들은 기념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3개월 동안의 여정을 마무리한 이들의 얼굴은 뿌듯함과 벅참으로 상기돼 있었다. 때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엄마배우 프로젝트는 송파구와 송파문화재단이 4년째 이어온 연극 장르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2021년 첫해엔 대상을 50~60대 남성으로 진행하다가 이듬해부터는 30~50대(올해는 60대까지 확대) 여성으로 바꿔 3년째 해오고 있다. 입소문이 나면서 올해는 약 50명이 신청해 경쟁률이 거의 3 대 1에 이르렀다. “참여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한지 등을 기준으로 17명을 뽑았다”고 프로젝트 담당자인 김하윤 송파문화재단 주임이 전했다.

수료식 뒤 나눔 자리에서 참여자들은 “엄마배우 프로젝트에 참여해 무대에서 나를 찾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박가영씨는 “집에서 새벽 한 시까지 음악을 틀어놓고 연습했다”며 “저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어 참 좋았다”고 했다.

참여자 사이의 배려와 공감으로, 치유하며 희망을 얻었다는 이들도 있었다. 최혜미씨는 “살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누구나 어려웠던 때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김승연씨는 “시작할 때 힘든 상황을 이야기하며 슬픔의 눈물을 흘렸는데, 오늘은 행복의 눈물이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참여한 권선미씨는 “처음엔 딸의 권유로 시작했지만, 올해는 자발적으로 신청했다”며 “힘이 나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60대 김명희씨는 “연극을 하며 칭찬도 받아 자신감이 생겨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희망이 보인다”고 기뻐했다.

올해 엄마배우 프로젝트 참여자는 40~50대가 14명으로 가장 많았다. 60대는 2명, 30대는 1명이 있었다. 12명은 첫 참여였고 3명은 두 번째, 2명은 세 번째 참여였다. 중도 포기자 없이 모두 끝까지 참여해 함께 무대로 올랐다. 프로그램 운영 총괄자인 김태임 강사는 “자신감을 느끼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경험을 모든 참여자가 다 해볼 수 있었다”며 “한 명도 낙오되지 않은 데 의미가 크다”고 했다.

이번 엄마배우 프로젝트의 주제는 ‘그때의 너에게’다.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나누며 극본을 완성한 뒤, 연극을 매개로 무대에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도록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참여자들은 4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수요일마다 송파여성문화회관 강의실, 문화누리터 등에 모여 2시간씩 10차례 활동했다.

프로그램은 교육 연극 체험으로 시작했다. ‘의자’와 ‘나무가 심어진 화분’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심청전’의 책 표지를 상상하며 한 사람씩 마음속으로 배역을 정한 뒤 앞으로 나와 직접 표현해봤다. 당시 김태임 강사는 “우리 프로그램은 이미 쓰인 대본을 달달 외워 공연하는 연극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이야기로 살아 있는 극을 만들 것이니, 누구나 쉽게 공감하고 잘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그는 “공연에 대한 부담이나 걱정은 내려두고 진정으로 나를 만나며 그 과정을 즐기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2회차 수업에서 참여자들이 그림책 ‘서커스’를 활용해 서커스단 연기를 연습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2회차에선 그림책 ‘서커스’를 활용해 서커스단 연기를 해봤다. 외줄 타기, 공 던지기, 불구덩이 통과하기, 접시 돌리기 등을 하며 참여자들은 함께 웃음을 터뜨리며 가까워졌다. 이날 수업 후기에서 한 참여자는 “처음 해보는 교육 연극 활동에 문화적 충격을 받고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도 했다”며 “참여자들과 가까워지고, 강사님의 응원 덕분에 끝까지 해보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다”고 썼다.

3~5회차에선 공동의 연극을 준비해 나갔다. 수업은 몸과 마음의 감각을 일깨우는 연극 놀이로 시작했다. 3회차에선 ‘어린 시절의 소리’ 하면 떠오르는 사연들을 나누고, 조별로 공통의 이야기를 만들어 발표했다. 각자의 인생 노래와 사연을 듣는 4회차에선 조별로 장면을 만들어봤다. 조별 장면 만들기와 발표는 5회차에도 이어졌다. 김태임 강사가 조별 내용을 모아 1차 대본으로 정리했다. 5개의 옴니버스로 구성하고 이야기마다 약간의 허구를 곁들였다.

6회차부터는 연극 연습에 들어갔다. 대본을 함께 읽으며 대사, 음악 등을 꼼꼼히 살피고 고쳐야 할 부분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 이후 장면 연습과 3차례의 전체 공연 연습이 이뤄졌다. 김태임 강사는 “발성 등 전문적인 연기 지도는 최소화하고 개인별, 팀별 연습 뒤 호흡을 맞추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게 지도했다”고 했다.

공연 발표회는 7월20일 오후 송파여성문화회관 소강당 무대에서 열렸다. ‘바닷가에 있는 엘피(LP) 바(BAR)’라는 설정 속에서 손님들이 각자의 사연을 담은 신청곡과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사장님과 알바생, 결혼 뒤 처음 혼자 나선 나홀로 여행객,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부들, 어린 시절 헤어져 미국으로 입양된 뒤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가족들, 그리고 여고 동창생들 등이 등장했다.

배우들은 자신의 인생을 노래로 표현하며 무대에 나왔다. 이문세의 ‘알 수 없는 인생’과 패티김의 ‘그대 없이는 못 살아’, 보니 엠의 ‘서니’ 등을 부르며 율동을 곁들이기도 했다. 객석에서는 가족과 지인, 구민 등 140여 명의 관객이 이들의 도전과 열정에 큰 박수를 보냈다.

오는 11월쯤 이들은 ‘그때의 너에게’ 무대에 다시 한 번 오를 계획이다. 복지관 등 지역의 기관 종사자들을 관객으로 초대해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김하윤 주임은 “엄마배우 프로젝트에서 발견한 자신들의 재능을 지역 사회에서 나눌 수 있는 방안도 함께 찾아볼 예정이다”라고 했다.

글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송파문화재단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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