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눈을 맞추고, 고개 끄덕거려보세요

마음에 상처받은 사람 많은 시대, 마음 잘 나누는 법

등록 : 2017-04-20 14:19 수정 : 2017-04-2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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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독자로부터 흥미로운 전자우편 한 통을 받았습니다. 정신과 의사도 아니고 상담을 전공하는 심리학자도 아니며, 종교인도 아닌 일반인이 어떻게 해서 독자들의 사연을 듣고 인생 상담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었습니다. 물론 시비를 걸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분도 장차 이런 일을 하고 싶다는 희망의 뜻으로 전해 왔기에,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겸사겸사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가끔은 자기의 의지와 다르게 흘러가는 게 인생입니다. 원래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을 때 남의 인생 훈수 두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요즘 제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훈수 두는 일입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독자들의 사연을 듣고 제 경험을 함께 나누는 일이니까요.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에서는 ‘라이프 코치’, ‘커리어 코치’라고 합니다. 그곳 유력 신문에서는 관련 전문가들이 독자들의 사연을 듣고 상담하기도 하지만, 인생 경험이 풍부하고 표현력을 갖춘 사람들이 글을 쓰기도 합니다.

이 연재를 하면서 지금 우리 사회에는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극도로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지치고 상처받아 어디에 하소연할 곳을 모르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사회와 가정, 각 분야에서 소통의 통로가 숨 막힐 정도로 꽉꽉 막혀 있다는 하소연도 자주 듣습니다.

“제발이지 제 얘기도 한 번만 들어주실 수 없나요?”

아무도 자신의 고민에 주목하지 않고 경청하지 않기에 외로워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특수성상 누구에게도 자신의 상처를 보이기를 싫어하기에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어야 하면서도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느낌을 원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을 대상으로 ‘마음 산업’ 또는 ‘고민 산업’이라 이를 정도로 관련 직종이 급팽창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내 삶의 주인 되기’라는 연재가 소통의 허브로서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절감하게 됩니다.

마음을 나누는 일의 요체는 말을 잘하는 능력에 있지 않습니다. 인내심을 갖고 진짜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큰 입’이 아니라 ‘큰 귀’입니다.

“당신이 우리의 아픔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서는 그런 불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함부로 가르치려 들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슷한 아픔을 보여줄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공감의 진정한 의미는 여기서 나올 테니까요. 상처는 털어놓는 동안 상당 부분 스스로 치유됩니다.


“아, 그랬군요!”

간단하지만 이런 추임새가 필요합니다. 요즘 강조되는 ‘리액션’입니다. 리액션이란 어려운 게 아닙니다. 눈을 맞춰주고 끄덕거려주고 맞장구쳐주는 겁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말만 하려 할 뿐 리액션에 인색하기 때문입니다. 부부 관계, 자녀와의 대화, 직장생활, 학교에서도 성패는 바로 리액션 능력에 달려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언어뿐 아니라 웃음, 표정 같은 비언어적 표현도 중요합니다.

많은 강연장을 다니면서 저는 유감스럽게도 청중들의 얼굴에서 리액션 근육이 너무도 발달되어 있지 않음을 발견합니다. 특히 공직사회와 리더들의 모임이 더 심합니다. 모두 굳어 있습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그래, 당신이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볼 거야!”

그만큼 우리 사회가 경직되어 있다는 방증이겠지요. 진정한 강연의 묘미는 함께 즐기는 데 있습니다. 그렇듯 가정과 학교생활, 직장생활도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방송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리액션이 곧 소통의 출발입니다.

저는 최근 어떤 모임에서 가톨릭 사제와 동석했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자들의 마음속 고해성사를 계속 들어야 하는 신부님들 역시 그 과정에서 얼마나 ‘기’를 빼앗기는지, 때로는 그 상담 과정을 통해 자신도 내면의 고통을 받는다는 고백이었습니다. 때문에 이런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객관화가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말하는 상대와 약간의 거리감을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신부님의 표현으로는 ‘건강한 거리감’입니다.

다른 사람의 사연을 듣고 위로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역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이고, 때로는 내면의 상처가 생기기에 주기적으로 또 다른 전문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힐링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감성노동 또는 감정노동자일 테니까요. 내면의 힘이 부족하면 균형을 잃고 균형을 잃으면 마음이 무너집니다.

“둘이 가면 혼자 되고, 혼자 가면 둘이 됩니다. 걷는다는 것은 결국 비우는 행위니까요….”

그 신부님은 걷기 예찬론자로, 특히 혼자 걷기를 권했습니다. 걷는 게 수행이고, 내면의 힘을 기르는 시간이란 뜻이었습니다. 상실의 시대, 많은 이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외로워서 걷기 시작했는지 아니면 걷다가 외로워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울컥 뜨거운 기운이 내면에서 올라오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시간이 자기 자신의 감정과 만나는, 진정한 리액션이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요? 우리는 남의 감정뿐 아니라 자기감정에도 서툰 사람들입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남이 아닌 나를 만나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다른 이의 감정과 만나기에 앞서 우선 내 감정에 리액션해보면 어떨까요?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글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 저서 <투아레그 직장인 학교> 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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