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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땅속은 안전한 거죠?”

’땅꺼짐’은 전세계 도시 공통 문제…낡은 상하수도관이 주원인
매설물 관리 주체 제각각, 지하안전 통합관리 상설기관 시급

등록 : 2024-10-04 15:31 수정 : 2024-10-0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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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성산로 인근에서 지난 8월29일 오전 도로 땅꺼짐이 발생해 도로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터파기 후 다짐 불량,
굴착공사 부실도 땅꺼짐 원인”
“과거 지반침하사고
건수 적다고 안심할 수 없어”

코로나19로 전세계가 감염 공포에 휩싸여 있던 2021년 여름 극장가에서는 ‘땅 꺼짐’ 사고를 소재로 만든 재난 영화 ‘싱크홀’이 상영됐다. 11년 동안 열심히 일해 어렵게 서울 아파트를 장만했지만 집들이하던 날 건물이 거대한 싱크홀로 빨려 들어가면서 벌어진 이야기다. 실제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싱크홀 사고를 고려하면 그저 ‘허구’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어서일까. 사람들 모이기를 꺼리던 시기인데도 영화 ‘싱크홀’은 관객 수 220만 명을 기록하며 그해 흥행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이런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일이 최근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지난 8월29일 서대문구 연희동 성산로에서 깊이 2.5m, 가로 6m, 세로 4m의 땅꺼짐 사고가 발생해 달리던 승용차가 빠지면서 인명피해도 났다.

이에 대해 이석중 서대문구 지하안전팀장은 “이 싱크홀 사고는 서울시 관할 도로에서 일어나 시가 나서 복구와 후속 작업을 했으며 구도 합동팀으로 참여해 지하매설물 파악 및 폭주한 주민 민원에도 대응했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의 ‘지하안전정보시스템’(www.jis.go.kr) 자료를 보면 최근 5년(2019년~2024년 9월23일 현재) 서울에서 신고된 싱크홀 등 ‘지반침하안전사고’ 건수는 모두 85건이었다. 수시로 나오는 지하안전사고 뉴스와 영화에 각성한 주민은 “우리 동네 땅속은 안전한 거냐?”고 묻는다.

땅꺼짐 등 지반침하안전사고의 원인은 다양하다. 서울 송파구청 도로과 관계자는 “싱크홀 등 지하안전 사고는 대부분 30년 이상 지난 낡은 지하배관이 손상돼 물이 새고 주변 흙이 쓸려가면서 틈이나 구멍이 생겨 발생한다. 또 각종 지하시설물 공사나 건축을 위한 땅파기와 메우기 공사 부실도 원인이 될 수 있고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폭우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2면 최근 5년간 구별 지반침하사고 신고 현황 참조).

주민안전을 챙겨야 하는 구에선 지하안전사고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서울앤의 문의에 답변한 구청들의 담당 부서는 “매설된 모든 노후관로를 정비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잦은 굴착공사 및 지하개발사업으로 전반적으로 지반이 약해졌다” “구가 지역 특성에 맞춰 주도적으로 지하안전사고 예방 활동을 할 장비와 인력이 부족하다” “탐사 주기를 당겨야 한다” “탐사장비의 성능(지하 2~3m까지만 탐지 가능) 한계가 있다” “도로, 가스관, 열수송관, 전기관, 전기통신관 등 관리기관이 제각각이고, 민간부문이 끼어 있어 통합관리가 쉽지 않다” 등의 답변을 내놨다.


서울시에 묻혀 있는 상하수도관의 총길이는 약 2만4200㎞에 이르는데 이 중 사고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수관 길이는 약 1만840㎞다. 단순 환산하면 상하수도관은 25개 구마다 서울~부산 왕복 거리에 버금가는 약 970㎞ 길이로 매설된 셈이다. 여기에 전기, 통신, 가스, 열수송관까지 더해야 한다. 이런 사정을 헤아리면 외주관리를 한다 하더라도 지하굴착팀 직원 몇 명이 감당하기에는 버겁다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예산상 한계도 있다. 안준희 서울시 물순환안전국 하수정비팀장은 “30년 이상의 노후 하수관로 길이는 약 6020㎞로, 해마다 2천억원가량을 들여 정비가 시급한 약 100㎞를 보수하고 있다”며 “시민 안전 관점에서 보면 국비 등 추가 예산을 지원해 보수량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2019년 7월 서울시는 ‘서울시 지하시설물 통합 안전관리 대책’을 발표하고 2023년까지 2조7천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서울시가 컨트롤타워를 맡는 ‘지하시설물 안전관리 협의체’도 발족하기로 하고 케이티(KT),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한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지하시설물 안전관리 통합정보 분석시스템’을 구축하고 전력, 통신, 상수도를 공동 수용하는 ‘소형공동구’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후 진척 여부에 대해 김준규 서울시 재난안전실 도로관리과 지하안전1팀장은 “당시 예산 중 약 1조9천여억원이 지반침하사고에서 가장 비중이 큰 노후 하수관로 정비에 배정돼 해마다 3천여억원씩 집행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또 “당시 기관들과 맺은 업무협약도 유효하게 적용되고 있으며 이후 지하 레이더 탐사(GPR) 및 복구관리는 관할에 따라 서울시와 구가 각각 주관하고 있고 탐사 후 안전관리는 해당 기관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인규 한국지반환경공학회 부회장은 “땅꺼짐은 전세계 노후 도시가 갖는 공통적인 문제로 아직 기술적 한계가 있어 사전 확인이 어려운데다 매설된 관별로 관리 주체가 제각각인데다 보안 등 이유로 정보공유도 안 되고 있다. 재난방재처럼 지하안전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상설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지난 8월 말 연희동 싱크홀 사고 직후 ‘지하안전관리체계 개선방안’을 내놓고 지난달 27일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TF는 국토교통부 기술안전정책관을 팀장으로 환경부·행정안전부와 함께 지자체로 서울시·부산시·광주시·경기도, 유관기관으로 국토안전관리원·한국환경공단·한국도로공사·건설기술연구원, 학계에서는 한국지반공학회와 카이스트(KAIST)가 참여해 9월부터 12월까지 운영된다.

국토교통부의 ‘지하안전정보시스템’에서 확인되는 지난 5년간 서울에서 일어난 땅꺼짐 사고 건수 85건을 자치구별로 나눠 보면, 강남·송파구가 각 12건, 성북구가 9건, 강서·영등포구가 각 5건, 강동·구로·마포구가 각 4건으로 집계된다. 85건 중 절반 이상인 45건이 상하수관 손상에 의한 지반침하사고다. 상하수관 손상 중 특히 하수관 손상으로 인한 경우가 78%인 35건으로 상수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상하수관 손상에이어 터파기 공사 후 다짐 불량이 16건, 굴착공사 부실이 11건으로 뒤를 이었다.

송파구의 경우 상하수도관 손상이 아닌 터파기 공사 후 다짐 불량이 4건으로 많은 점에 대해 송파구는 “상하수도관로 손상이나 굴착공사에 의한 지반침하라도 그 발견이 늦고 원인이 명확하지 않을 때 다짐 불량으로 기록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지 구별지반 특성이나 시설 조건이 달라서 그런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올해 땅꺼짐 15건 중 강남·성북구 각 3건, 송파·서대문구 각 2건

올해 서울시 전체 땅꺼짐 사고는 지난 9월 23일까지 모두 15건 발생했는데 이 중 하수관로 손상이 7건으로 가장 많았다. 15건을 자치구별로 보면 강남·성북구가 각 3건, 송파·서대문구가 각 2건, 구로·노원·마포·성동·종로구가 각 1건이었다. 지난 8월 땅꺼짐 사고가 발생한 서대문구의 경우 그 이전 5년 동안 발생했던 지반침하사고는 지난해 4월 충정로3가에서 발생했던 사고 1건이 유일했다. 당시 땅꺼짐 원인은 다짐 불량으로 나타났다. 과거 지반침하사고 건수가 적다고 안심할 수 있는것은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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