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상대에 대한 경청, 이해, 존중은 분쟁조정 3원칙”

분쟁조정 전문가 양성 과정 기획한 주건일 서울YMCA 이웃분쟁조정센터 팀장

등록 : 2017-06-22 14:43 수정 : 2017-07-03 16:21

크게 작게

주건일 서울와이엠시에이 이웃분쟁조정센터 팀장이 지난 16일 오후 4시 서울 성동구 왕십리2동주민센터 강당에서 자신이 기획한 제1회 ‘마을 주민자율 조정전문가 양성 과정’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아파트단지를 넘어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의 분쟁까지 조정하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말하기 전에 경청을, 판단하기 전에 이해를, 시비하기 전에 존중을…. 이것이 ‘마을 주민자율 조정 전문가’들이 지켜야 할 세가지 원칙입니다.”

지난 16일 오후 4시 서울 성동구 왕십리2동주민센터 강당. 40~60대에 이르는 20여명의 마을 주민들이 강사인 조철민 한일장신대 연구교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조 교수의 강의는 지난 5월26일부터 오는 7월7일까지 매주 금요일에 열리는 총 7회의 ‘제1회 마을 주민자율 조정 전문가 양성 과정’ 중 네번째 시간이었다.

분쟁조정 전문가가 되기 위해 모인 중년의 수강생들 중에 유독 젊어 보이는 한 사람이 눈에 띈다. 분쟁조정을 연구하는 대학원생인가 싶었는데, 그가 바로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주건일(38) 서울와이엠시에이(YMCA) 이웃분쟁조정센터 팀장이다.

주 팀장이 기획한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를 넘어선’ 풀뿌리 마을 분쟁 조정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 이웃간 분쟁조정은 2011년 서울YMCA에 이웃분쟁조정센터가 설립되면서 비로소 널리 확산됐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분쟁조정의 대상은 주로 아파트단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이번 프로그램이 그 대상을 연립과 다세대주택 등까지 포함한 ‘마을’로 확대한 것이다.

2004년부터 13년 동안 와이엠시에이 시민사회운동부에서 시민 자율조정, 창의적 분쟁 해결 등을 해온 것으로 안다. 이런 경험에 비추어볼 때 우리나라의 이웃 간 갈등 수준을 어느 정도로 보는가?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사회갈등관리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7위에 불과한데, 사회갈등요인지수는 칠레, 이스라엘, 터키에 이어 네번째로 높다는 연구 결과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정부의 갈등 관리는 그동안 국가정책에 대한 시민의 반대를 관리하는 것에 방점을 찍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웃 간 분쟁은 개인의 영역으로 방치되어왔고, 그것이 층간소음 등 이웃 간 분쟁을 사회적 문제로 키운 원인이 되었다. 그사이 공동주택의 경우에는 층간소음을 비롯한 담배 연기 냄새, 애완견 사육, 쓰레기 투기 등 다양한 분쟁에 노출돼왔고, 2014년 9월 배우 김부선씨의 아파트 난방비 비리 의혹 제기가 큰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는 등 많은 갈등 요소가 분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와이엠시에이의 이웃분쟁조정센터가 시민 생활의 갈등 해결 모델들을 앞서서 만들어가고 있다.

“이웃분쟁조정센터가 만들어졌을 당시 사람들에게 이웃 분쟁이라는 주제는 낯선 것이었다. 서울와이엠시에이는 1978년부터 시민중계실을 열고 시민 상담을 받아왔는데, 200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층간소음, 애완견 문제 등 아파트 관련 상담이 많이 늘어났다. 그런데 당시로써는 해결 방안이 없었다. 소비자 상담은 소비자 피해보상 규정도 있고, 기업과 시민사회의 역학 관계를 통해서도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공동주택 분쟁과 관련해서는 어떤 규정이나 매뉴얼(안내서), 컨센서스(합의)도 없었다.”

이웃분쟁조정센터는 이에 따라 2013년부터 아파트단지 내 이웃 간 분쟁을 해결할 주민 리더를 키우는 ‘아파트 주민자율 조정가’ 양성 과정을 만들었다. 이때 배출된 주민자율 조정가들이 중심이 돼 은평뉴타운 제각말 5단지에 ‘1호 주민자율 조정마을’이 만들어지는 등 아파트 갈등 조정을 위한 시범단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 하반기 아파트 주민 간 갈등과 분쟁이 많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인가?

“아파트 건립이라는 하드웨어에만 치중하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의질이라는 소프트웨어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은 우리나라 주택정책의 필연적 결과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1980년대를 기점으로 대량으로 보급됐다. 그러나 건물만 짓고 공동체 유지 등을 소홀히 한 나머지 공동체 붕괴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공동체가 붕괴하자 각종 갈등이 분쟁으로 표출되게 됐다.”

이번에 이웃 간 갈등 조정의 범위를 아파트에서 연립주택과 다가구주택까지 포함한 마을 전체로 확대한 이유는 무엇인가?

“전국의 아파트는 2017년 현재 820여만호에 이르지만, 연립주택도 175여만가구나 된다. 더욱이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들은 아파트 주민들이 겪고 있는 갈등 외에도 협소한 주차 공간 때문에 갈등을 겪는 경우도 많다. 뚜렷한 관리 주체마저 없는 실정이어서 갈등과 분쟁의 강도도 좀 더 심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빌라 등에서는 자동차 주차 순번을 정하다가 다투는 경우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또 반지하 주택의 경우 차가 창문을 막는 사례도 있는 등 연립주택과 다세대주택의 경우 주거환경 자체가 이웃간 분쟁이 커질 수밖에 없다.”

주 팀장은 이에 따라 “기존 ‘아파트 주민자율 조정마을’ 중 한곳을 시범적으로 확대해 연립주택 등을 포함하는 방안을 고민해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왕십리2동주민센터에서 주민참여예산을 확보했으니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주 팀장은 “단순한 강연회가 아니라 분쟁조정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다시 제안”했고, 그 결과 현재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교육 이후의 구상은 어떻게 되나?

“우선 수료생들을 중심으로 왕십리2동주민센터 안에 제1호 ‘풀뿌리 마을 주민자율조정센터’를 시범적으로 열 계획이다. 교육받은 주민들이 와이엠시에이 이웃분쟁조정센터 전문가들과 함께 실제 공동주택과 마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분쟁과 비리 등을 상담·조정하게 된다. 마을 주민자율조정센터가 성동구의 17개동 전체로 확산되는 것도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관심이 많다. 정 구청장은 교육프로그램이 끝난 뒤인 7월13일에 수료생들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주민토론회에 직접 참석해 의견들을 듣고 센터의 확산에 대한 구상을 하실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추세에 맞춰 문재인 정부의 공동주택정책에도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럴 것으로 기대해본다. 서울YMCA가 중심이 돼 발족한 ‘공동주택 유권자연대’가 지난 4월19일 주요 대선후보들에게 이웃갈등 예방을 위해 ‘주민분쟁해결지원법’ 제정과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 활성화를 제안했다. 그때 민주당과 정의당으로부터 이를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주 팀장은 정책 변화의 핵심은 “하드웨어에 치중하던 지금까지의 주택정책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소프트웨어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주 팀장은 특히 “국토교통부의 경우 공동주택 문제를 주택건설공급과의 적은 인력이 담당하고 있다”며 “관련 인원과 예산을 늘리지 않으면 늘어나는 마을 분쟁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글·사진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