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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고 쾌적한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아시나요?

사회적기업 녹색친구들, 1호 오픈 땅은 서울시, 건물은 사업자 소유

등록 : 2017-06-22 16:30 수정 : 2017-06-2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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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친구들 성산’을 지은 김종식 녹색친구들 대표(왼쪽)가 집 계단에 서 있다. ‘녹색친구들 성산’은 서울시가 지원한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1호점이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서울 마포구 성산동 59-12.

성미산 자락 주택가에 자리한 231㎡(70평) 크기의 이 땅엔 지난해 5월까지 2층 단독주택이 있었다. 지어진 지 30년 가까이 돼 ‘낡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집이다. 서울 시내 오래된 주택가에선 흔한 풍경이다.

이 단독주택에 2015년 12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서울시가 사회적기업 ‘녹색친구들’의 신청을 받아들여 12억원에 이 집을 사들였다. 정확히는 건물을 빼고 ‘터’만 샀다. 그리고 녹색친구들에게 40년 동안 연 1%(1200만원)의 임대료를 받는 조건으로 터를 빌려줬다.

녹색친구들은 건물을 헐고 이 땅에 임대주택을 지어 관리하기로 서울시와 계약을 맺었다. 1~2인 가구가 사는 11세대의 4층짜리 집이다. 설계와 시공, 감리 등 실제 건축에 들어가는 비용의 70%에 해당하는 7억원도 연 이자율 2% 수준으로 서울시에서 빌렸다. 집이 임대되면 보증금 등으로 35%를 일시 상환하고, 나머지 65%는 5년 뒤에 원금까지 한꺼번에 갚는 조건이다. 이렇게 해서 땅은 서울시, 건물은 기업(녹색친구들)이 소유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되는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사업이 닻을 올렸다.

눅색친구들 제공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은 서울시가 2015년 도입한 제도다. 서울시는 감정평가 가격이 16억원 이하인 땅이나 주택을 사서 사업자에게 장기 임대한다. 주로 사회적기업인 사업자는 이 터에 단독·다가구·다세대 주택 또는 원룸주택을 짓는다. 이 주택에 도시근로자 월 평균소득의 70~100%를 버는 무주택자가 신청해 입주한다.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80%를 넘지 않아야 하며, 입주자가 원할 경우 10년 동안 거주를 보장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공사는 지난해 5월 시작됐다. 김종식 녹색친구들 대표는 ‘친환경’ ‘공유’ ‘소통’을 임대주택의 열쇳말로 삼았다. 김 대표는 “입주자 모두가 행복한 집을 만들려면 하드웨어 못지않게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며 “성미산 일대는 사람 중심의 마을 만들기가 활성화한 곳이어서 1호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의 입지로 맞춤했다”고 말했다.

눅색친구들 제공
저에너지 친환경 공동주택의 구체적인 모습은 사회적기업 ‘선랩’의 건축가들이 맡았다. 고효율 단열재를 사용하고, 유리창도 단열 효과가 높은 3중창을 썼다. 그러다 보니 평당 건축비로 보통 다세대주택보다 100만원 이상 비싼 600만원이 들었다. 모양새에도 각별히 마음을 썼다. 김 대표는 “임대주택이라서 주변에서 혹시나 부정적인 시각이 있을까 봐 세련미를 갖추도록 애썼다”고 밝혔다.

그 결과 ‘1호’라는 이름값에 부끄럽지 않은 근사한 모습의 ‘녹색친구들 성산’이 완공돼 지난달 19일 입주식을 열었다. 세련된 외관의 건물은 밤이 되면 멋지게 빛을 발한다. 얼핏 보면 2동처럼 느껴지는 독특함도 갖췄다.


이 임대주택은 뭐니뭐니해도 싼 주거비용이 장점이다. 11세대가 사는 이곳에서 가장 작은 전용면적 15.39㎡(4.7평)의 주거 공간은 보증금 5460만원에 월 임대료가 9만7540원이다. 5%의 월세전환율을 적용하면, 보증금 없이 월세만 32만5000여원을 내는 셈이다. 이 일대의 신축 빌라에서 같은 면적의 원룸을 얻으려면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55만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녹색친구들 성산’의 임대료가 주변의 60% 수준인 셈이다. 4층에 있는 35.02㎡(10.6평)의 복층은 1억3300만원의 보증금에 월세가 23만8000원이다.

완공된 ‘녹색친구들 성산’ 임대주택.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입주자 김진희(28·회사원)씨는 “직전에 사당동 원룸에 살았을 때보다 월 30만원쯤 절약되는 것 같다”며 “비용도 비용이지만 주거환경이 쾌적해 너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또 다른 매력은 ‘더불어 사는 삶’이다. ‘녹색친구들 성산’의 1층에는 다른 다세대주택에서는 볼 수 없는 공간이 있다. 10평가량의 커뮤니티룸이다. 이 공유 공간은 서울시가 사업을 지원하는 전제 가운데 하나로, 일종의 공공성 담보 장치다.

‘녹색친구들 성산’의 입주자들은 이달 초 커뮤니티룸에서 첫 전체 입주자회의를 열었다. 입주자들은 대개 20~30대로, 직장인이 많다. 회의에선 어떻게 더불어 잘 살 것인지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텃밭 가꾸기와 플리마켓 개최, 독서 토론회 운영, 지역예술가나 마을 공동체에 커뮤니티룸 대여 등 여러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입주자회의의 서성민(33) 대표는 “처음이라 서먹서먹한 점도 없지는 않지만, 친환경적 삶과 공동체적 가치에 동의한 분들인 만큼 즐거운 일들이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녹색친구들 성산’의 1층에는 10평 남짓한 커뮤니티 공간이 있다. 입주자들은 여기서 ‘더불어 사는 삶’을 다양하게 실험한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앞서 녹색친구들은 입주 희망자를 대상으로 신청을 받고, 주거공동체에 대한 교육도 실시했다. 임대료가 싸고 입지 조건이 좋은 탓인지 경쟁률이 5 대 1을 넘었다고 한다.

서울시는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서울시 산하 사회주택종합지원센터의 최경호 센터장은 “공공임대주택은 입주하기가 ‘로또’ 당첨만큼이나 어렵고, 민간 임대시장은 너무 비싸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이 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의 경우, 지난해 50억6800만원에서 올해는 84억6800만원으로 크게 늘렸다. 현재 서울에선 녹색친구들 말고도 두꺼비하우징, 아이부키, 안테나 등의 사업자가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을 공급하고 있다.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은 주거시장에서 ‘공공+민간’의 성격을 띤 모델이다. 김 대표는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의 터는 공공의 소유도 민간의 소유도 아니며, ‘사회의 땅’이라 해야 타당하다”며 “그 터에 지어진 집의 수혜자는 바로 입주자”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사업에 참여한 녹색친구들의 수익성은? 김 대표는 선례가 없는 사업이고, 건축비가 예상보다 많이 들어 ‘녹색친구들 성산’ 자체만으론 남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대신 사회주택을 더 지으면 ‘규모의 경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녹색친구들은 서대문구 창천동에 완공한 2호점 11세대의 입주계약을 마쳤고, 관악구 봉천동에선 18세대의 3호점 공사를 벌이고 있다. 또 아이부키, 안테나 등 두 사업자와 힘을 합쳐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48세대가 사는 중규모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의 설계를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사회주택 사업이 공공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만큼 수익성보다는 지속가능성이라 표현하고 싶다”며 “사회주택 공급 확대가 새 정부의 공약 사항이었던 만큼 지속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대상 물건 서울 시내 100평 기준 감정평가액 16억원 이하 토지

임대 조건 시세 80% 이하, 거주 기간(10년) 보장

입주 조건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70~100% 이하(무주택자)

적용 주택 단독·다가구·다세대 주택, 도시형생활주택(원룸), *커뮤니티 공간 확보 의무(총 주거전용 면적의 10% 이상)

주거 방식 공동주택으로 운영

자금 지원 토지분은 시가 매입 *사회투자기금 융자(최대 사업비의 90%) 가능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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