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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후 사회적기업 푸른환경코리아의 직원들이 전철 중앙선 망우역의 개찰구를 청소하고 있다. 1994년 철거민 자활공동체로 시작한 푸른환경코리아는 지난해 코레일 청소관리 일반 입찰에서 민간기업들과 경쟁해 중앙선 수주에 성공했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지난 20일 오후 중랑구 전철 중앙선 망우역의 교육장에 철도역 환경미화원들이 모였다. 매달 있는 산업안전교육을 받기 위해서였다. 교육장 한편에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미화원들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들이 가득 붙어 있었다. 미화원 84명이 지난 5월24일과 6월1일 두 팀으로 나눠 강원도 속초로 간 야유회에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야유회를 가끔 가느냐고 묻자 다들 “처음”이라고 답했다.
용문역의 청소를 6년째 담당하고 있는 최숙(52)씨는 “직장 야유회는 평생 처음 가본 것”이라며 “1년 전 회사가 사회적기업인 푸른환경코리아로 바뀌면서 처음 경험하는 게 참 많다”고 말했다. 코레일은 철도역 청소관리 위탁업체를 2년마다 입찰로 새로 뽑는데, 업체가 바뀌어도 미화원은 그대로 새 업체에 고용 승계된다. “앞선 회사들은 일만 강요했지, 단순업무라고 우리를 막 대하는 게 있었거든요. 그런데 푸른환경코리아 이사님하고는 농담도 주고받아요.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본사 직원들은 처음이에요. 이사님은 우리를 사장님이라고 불러요. 우리가 있어서 회사도 존재하는 거라구요. 생각해보니 맞는 것 같아요. 사소한 거지만, 그런 배려가 저희한테는 크게 다가와요.”
미화원은 휴일에도 근무하기 때문에 자녀 결혼식 날 휴가를 얻기 위해서는 회사에 청첩장을 제출해야 한다. 청첩장을 냈더니 푸른환경코리아에서 예식장으로 화환을 보내,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죠. 최악의 조건에서 일하는데 이렇게 대우를 해주니까 책임감을 느끼고, 자부심도 갖게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남자 화장실을 청소할 때 고객이 짓궂은 농담을 하면 수치심을 느꼈는데, 지금은 마음이 당당하니까 가볍게 받아넘겨요.”
일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자 생각지도 못한 보상이 돌아왔다. “얼마 전 여자 화장실에서 고객 한분이 어쩔 줄 몰라 하세요. 사정을 물어보니 때가 아닌데 갑자기 생리혈이 나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필 흰 바지를 입고 계셔서…. 그래서 제가 근처 편의점에 가서 속옷을 하나 사고, 탈의실에 예비용으로 갖다놓은 제 바지랑 함께 드렸죠. 그런데 그분이 고맙다고 코레일 본사로 연락해서 상을 받았어요. 전에는 대충 하고 갈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회사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다들 열심히 하고 있어요.”
지난 20일 오후 중랑구 망우역에서 사회적기업 푸른환경코리아 직원들과 망우역 직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김기만 푸른환경코리아 이사는 “회사의 목적이 ‘취약계층에게 품격 있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장 직원을 제대로 대우하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푸른환경코리아의 모태는 봉천동 철거민의 자활공동체다. 1994년 관악자활지원센터의 사업단으로 시작해 1999년 주식회사로 독립했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가정집, 카펫, 터널, 열차 청소에 각종 하청에 재하청까지 가리지 않고 했다. 그러나 가장 큰 시장인 공공부문과 대기업은 큰 실적이 없는 회사의 진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제정됐다. 김 이사는 “처음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있어서 사회적기업 인증을 신청하지 않았는데, 지켜보니 기업적 방식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취지가 우리 회사와 딱 맞는 것 같아 이듬해 인증을 받았다”고 말했다.
2012년은 푸른환경코리아가 공공시장에 진입한 원년이다. 코레일이 수도권 11개 구간 가운데 3개 구간의 역사 청소를 사회적기업만 참여하는 제한 입찰로 맡긴 것이다. 푸른환경코리아는 축적된 기술력으로 3개 구간 모두 따냈다. “밑바닥부터 안 해본 것 없이 고생한 게 그때 도움이 되더라고요. 다른 민간업체들은 청소관리가 단순히 몸으로 때우는 일이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우리는 걸레 색깔에 따라 용도를 달리하도록 청소도구 사용법부터 새로 교육합니다. 규정상 매달 산업안전교육을 해야 하는데, 교육을 제대로 안 하고 서명만 받는 업체도 있어요. 우리는 오히려 현장 직원들과 소통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꼭 하고 있습니다. 원칙을 지키면 사고가 나도 대응이 가능하더라고요.”
지난해 수주에 성공한 중앙선은 사회적기업 제한 입찰이 아니라 민간 기업들과 경쟁한 일반 입찰이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2013년 코레일이 전국 용역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품질(SLA)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해 계약금액의 1%를 인센티브로 받는 등 전문성과 책임성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푸른환경코리아는 현재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매드포갈릭 등 대기업과 국민안전처 중부해양경비안전본부, 서울시 동부여성발전센터 등 정부, 지자체의 시설·보안 관리까지 맡고 있다. 박현진 망우역장은 “직원과 고객들의 평가가 상당히 좋다. 미화원들이 자부심과 사명의식을 갖게 되면서 달라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기업이 일반기업보다 더 효율적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사회적기업의 경제적·사회적 성과 분석’ 자료를 보면, 사회적기업 전체 생존율은 89.9%, 정부 지원이 종료된 사회적기업의 생존율은 86.5%였다. 일반기업의 3년 뒤 생존율 38.2%의 3배에 가깝다. 김 이사는 “단순히 돈만 버는 게 아니라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등 사회적 공헌이 큰 사회적기업의 생존율이 일반 기업보다 더 높다는 건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코레일의 사회적기업 제한 입찰처럼 공공부문에서 실력을 입증할 기회를 준다면 사회적기업들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기업 등 사회적경제기업 제품 우선구매제도를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서울시의 지난해 사회적 경제 공공구매액은 약 800억원으로, 시 공공구매 총액 7조2000억원의 1.1%에 불과했다. 서울시는 2020년까지 사회적 경제 공공구매액을 1500억원까지 늘릴 예정이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