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 척! 이 조례

보행기, 빈곤층 노인에 이동의 자유 제공

은평구 노인용 보행기 지원 조례

등록 : 2017-06-2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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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진 은평구의회 의원(왼쪽 사진)과 서정신 불광1동장(오른쪽 사진)이 지난해 7월 불광1동의 저소득층 주민에게 보행기를 전달하고 있다. 불광1동 제공
서울 은평구의회 신성진(48) 의원이 노인용 보행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는 2013년이다. 그해 여름 함께 살던 시아버지가 계단에서 넘어져 팔과 허리 등에 골절상을 입었다.

당시 86살의 고령이던 시아버지는 다치고 난 뒤 방과 화장실만 다니며 집안에 갇혀 있다시피 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신 의원은 “몸이 불편하니 한달에 한번 경로당에도 나다니지 않으셨다. 많은 어르신이 비슷하겠구나 생각했다. 처지가 어려운 분들은 특히나”라고 말했다. 시어머니도 20년 넘게 암을 앓아서 외부 생활이 어려운 터였다.

신 의원은 2014년 구의회에 처음 들어온 뒤 노년층이 외부와 단절되지 않고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될 ‘지팡이’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지난해 2월 ‘서울특별시 은평구 노인 성인용 보행기 지원 조례’로 결실을 보았다. 신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조례는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큰 이견 없이 처리됐다. 조례는 2012년부터 전남 등 일부 지자체들이 시행해온 보행기 지원 사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서울 자치구에서 노년층 이동권을 위한 보행기 지원 조례를 마련한 것은 은평구가 처음이다.

조례가 제정되자 은평구는 이 사업에 3000만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아울러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과 연계해 지원 대상 노년층을 동주민센터 직원들과 함께 찾았다. 지원 대상은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거나 일상생활이 불편한 65살 이상 노년층 가운데 노인장기요양보험법상 1~5등급을 받지 못한 저소득층이다. 1~5등급을 받은 노년층의 경우엔 소득 수준에 따라 정부가 이미 보행기 구매 비용을 차등 지원하고 있다. 은평구의 천현주 어르신재가복지팀장은 “등급외 판정을 받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계층 등 복지 사각지대에서 어려움을 겪는 노년층이 조례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은평구는 1대당 15만원씩 모두 200개의 보행기를 사서 지난해 7월, 10월 두차례에 걸쳐 노년층에 지원했다. 신 의원은 “은평구의회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보행기를 전달하는 자리에 참석해 어르신께 설명도 하고, 살아가는 말씀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 보행기는 평균 5년 정도 쓸 수 있다고 구청 쪽은 말했다.

보행기를 지원받은 노년층의 만족도는 높다. 불광1동에 사는 이아무개(88) 할머니는 “장을 보거나 노인정에 갈 때 너무 편하다. 보행기에 의지해서 걸으니 허리도 덜 아프고, 힘들면 앉아서 쉴 수도 있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보행기가 편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돈이 드니 살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구청이 공짜로 줘서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아무개(86·불광1동) 할머니도 “다리가 아파 집 바깥으로 나가는 게 힘들었는데 보행기 덕에 외출이 편해졌다. 사용에도 큰 불편이 없다”며 고마워했다.

이 조례 제정에 힘쓴 공로로 신 의원은 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주는 ‘2016 지방의원 매니페스토 약속대상’에서 ‘좋은 조례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어르신들의 야외 활동과 사회참여 기회를 확대해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은평구는 올해도 7월과 10월에 200개의 보행기를 지원할 예정이다. 은평구의 65살 이상 구민(지난해 말 기준)은 모두 7만1457명으로, 서울 자치구 중에서 노인 인구가 가장 많다. 은평구 관계자는 “서울의 외곽 지역이고 거주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40~50년 이상을 산 구민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은평구 의회가 시동을 건 노년층 보행기 지원사업은 서울의 다른 지자체로 퍼지는 추세다. 강북구에선 박문수 구의회 의장의 제안으로 65살 이상의 거동이 불편한 저소득 노인 200여명에게 올해부터 보행기를 지원한다. 박 의장은 ‘강북구 노인복지 기본 조례’를 근거로 구청에 보행기 지원을 요청했으며, 강북구청은 올해 신규 사업에 포함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신 의원은 “많은 어르신들이 보행기를 이용해 좀 더 자유롭게 바깥나들이를 하면서 외로움을 이기고 사회관계가 원활해져 더욱 활력 있는 노후를 즐기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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