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86살의 고령이던 시아버지는 다치고 난 뒤 방과 화장실만 다니며 집안에 갇혀 있다시피 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신 의원은 “몸이 불편하니 한달에 한번 경로당에도 나다니지 않으셨다. 많은 어르신이 비슷하겠구나 생각했다. 처지가 어려운 분들은 특히나”라고 말했다. 시어머니도 20년 넘게 암을 앓아서 외부 생활이 어려운 터였다.
신 의원은 2014년 구의회에 처음 들어온 뒤 노년층이 외부와 단절되지 않고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될 ‘지팡이’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지난해 2월 ‘서울특별시 은평구 노인 성인용 보행기 지원 조례’로 결실을 보았다. 신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조례는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큰 이견 없이 처리됐다. 조례는 2012년부터 전남 등 일부 지자체들이 시행해온 보행기 지원 사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서울 자치구에서 노년층 이동권을 위한 보행기 지원 조례를 마련한 것은 은평구가 처음이다.
조례가 제정되자 은평구는 이 사업에 3000만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아울러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과 연계해 지원 대상 노년층을 동주민센터 직원들과 함께 찾았다. 지원 대상은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거나 일상생활이 불편한 65살 이상 노년층 가운데 노인장기요양보험법상 1~5등급을 받지 못한 저소득층이다. 1~5등급을 받은 노년층의 경우엔 소득 수준에 따라 정부가 이미 보행기 구매 비용을 차등 지원하고 있다. 은평구의 천현주 어르신재가복지팀장은 “등급외 판정을 받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계층 등 복지 사각지대에서 어려움을 겪는 노년층이 조례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은평구는 1대당 15만원씩 모두 200개의 보행기를 사서 지난해 7월, 10월 두차례에 걸쳐 노년층에 지원했다. 신 의원은 “은평구의회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보행기를 전달하는 자리에 참석해 어르신께 설명도 하고, 살아가는 말씀도 들었다”고 말했다. 이 보행기는 평균 5년 정도 쓸 수 있다고 구청 쪽은 말했다.
보행기를 지원받은 노년층의 만족도는 높다. 불광1동에 사는 이아무개(88) 할머니는 “장을 보거나 노인정에 갈 때 너무 편하다. 보행기에 의지해서 걸으니 허리도 덜 아프고, 힘들면 앉아서 쉴 수도 있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보행기가 편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돈이 드니 살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구청이 공짜로 줘서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아무개(86·불광1동) 할머니도 “다리가 아파 집 바깥으로 나가는 게 힘들었는데 보행기 덕에 외출이 편해졌다. 사용에도 큰 불편이 없다”며 고마워했다.
이 조례 제정에 힘쓴 공로로 신 의원은 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주는 ‘2016 지방의원 매니페스토 약속대상’에서 ‘좋은 조례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어르신들의 야외 활동과 사회참여 기회를 확대해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은평구는 올해도 7월과 10월에 200개의 보행기를 지원할 예정이다. 은평구의 65살 이상 구민(지난해 말 기준)은 모두 7만1457명으로, 서울 자치구 중에서 노인 인구가 가장 많다. 은평구 관계자는 “서울의 외곽 지역이고 거주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40~50년 이상을 산 구민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은평구 의회가 시동을 건 노년층 보행기 지원사업은 서울의 다른 지자체로 퍼지는 추세다. 강북구에선 박문수 구의회 의장의 제안으로 65살 이상의 거동이 불편한 저소득 노인 200여명에게 올해부터 보행기를 지원한다. 박 의장은 ‘강북구 노인복지 기본 조례’를 근거로 구청에 보행기 지원을 요청했으며, 강북구청은 올해 신규 사업에 포함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신 의원은 “많은 어르신들이 보행기를 이용해 좀 더 자유롭게 바깥나들이를 하면서 외로움을 이기고 사회관계가 원활해져 더욱 활력 있는 노후를 즐기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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