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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패턴 차분히 들여다봐야
이상화된 원칙에 사로잡힐 수도
복잡한 생각 접고 현실에 매진하길
Q 40대 워킹맘입니다. 저는 왜 이렇게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걸까요? 아이 낳고 키울 때는 사회에서 뒤처지는 것 같아서 어렵사리 취업을 했고, 취업한 후에는 또 아이들이 걱정되고 보고 싶고 너무 빨리 커버리는 것 같아 직장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합니다. 사실 제가 지금 하는 일 자체가 워낙 어려운 전문 분야이기도 하고, 지금 직장으로 이직하면서 기존 경력과 완전히 다른 일에 도전해보려고 시작한 일이어서 배우며 따라가기도 벅찬데, 회사에서는 다 알아서 하라는 식입니다. 솔직히 지금 제 업무는 제가 꼭 해보고 싶어서 도전한 분야는 아닙니다. 지난 회사 팀장의 전문 분야였는데 어찌나 저를 견제하고 정보를 차단하던지 화가 나서 그만두고 이직한 터라,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원해서 온 게 아니라 그 사람의 꿈을 좇아오다가 방향감각을 잃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지금까지 입사와 퇴사를 계속 반복하면서, 아이를 돌봐주신 시어머니도 이번 직장이 마지막이라고 하셨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어느 회사에 들어가도 만족스럽지 않았고 재미도 없었고 금세 그만두고, 그래왔습니다. 머릿속에 늘 ‘이렇게 살아야 한다’만 있었지 ‘어떻게 뭘 하며 살아야’ 하는지 고민을 깊게 해보지 못했네요.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만족스럽고 자유로운 삶의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내가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잡을 수 있을까요? 이정란
A 직업에 대한 의미나 확신을 찾지 못하셨군요. 당신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직업 환경이 급변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일에서 느끼는 소외감과 박탈감 등이 극에 달한 상태니까요. ‘가슴 뛰는 일을 하라’는 멋진 말을 따라 살고 싶지만 가슴 뛰게 만드는 직업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고, 사실 가슴 뛰는 것 같은 거추장스럽고도 비효율적인 증상은 이미 학창 시절에 없애버렸습니다. 세상을 탐지하는 감성과 직관의 안테나를 잘라버렸기 때문에 우리에게 길을 알려주는 지표는 오로지 타인의 성공, 대중매체가 보여주는 성공 이미지가 전부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직업의 세계에서 길을 잃었다 해도 당신 탓만은 아닙니다. 다만 당신 내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직장에 마음 붙이기 어렵게 만드는 심리적 요인들은 무엇일까요? 입사와 퇴사를 반복한다 하셨는데, 어떤 기준으로 직장을 선택하며, 퇴사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직장마다 입사와 퇴사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목록으로 정리해보면 당신만의 어떤 반복적인 패턴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 직장에서는 팀장과의 심리적 경쟁과 견제가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혹시 직장에서 부러움이나 경쟁심 또는 질투 같은 감정을 자주 느끼시나요? 불건강한 감정이라고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누구나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모든 감정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으며, 무엇보다 부끄러워한다고 해서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자신이 입사와 퇴사에 어떤 패턴을 보이는지, 왜 그러는지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 역시 이런저런 직장을 수없이 옮겨 다녔습니다. 그런데 개인의 이직을 꼭 한가지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직장 문화의 불합리나 경제적 문제도 있을 것이고, 그 외에 관계에서의 심리적 역동, 전문가가 되는 길에 대한 불안, 자기 재능에 대한 불신, 지루하고 반복적인 과정에 대한 혐오, 버림받거나 불행한 결말을 맺을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타당한 이유도 있지만 잘못된 신념에서 기인한 이유도 꽤 있지요. 그러니 직장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차분히 정리해보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이상화된 원칙이 당신의 현실을 더욱 불만족스럽게 만드는 건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멋진 삶, 만족스러운 삶에 대한 어떤 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각해보세요. 우리에겐 나 자신, 그리고 내 현실의 불만족스러움을 이상화된 꿈으로 보상하려는 심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존감이나 자신감이 떨어질 때 더 몽환적인 꿈을 꿉니다. 그런데 이상이 아무리 높더라도 현실은 누추하게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이상 속에선 모든 성공이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의도하고 뜻한 대로 성공적인 결과가 산출됩니다. 그러나 현실에선 지루함이나 번거로움, 재미없음을 견뎌야 하고, 수많은 변수가 내 뜻과 노력을 배신하지요. 이처럼 꿈꾸기와 꿈을 실현하기는 전혀 다른 전개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엔 큰 꿈을 권하기도 하지만 중년 이후엔 현실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합니다. 살아온 현실을 기준으로 꿈과 이상의 조정이 필요하지요. 이정란님,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잠시 내려놓고 현실이 전개되는 방식을 경험하세요. 지루함, 무능감, 무력감 등의 통로를 통과해보세요. 재미없음의 시간을 견뎌보세요. 현실에 깊게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굳건하게 발을 딛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생각(이상, 판단 등)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그 상황에 푹 젖어드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 지루하고 의미 없는 것들 가운데서 섬세한 결을 발견하게 됩니다. 재미는 그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나만의 안목으로 그 일의 매력을 찾아내고, 나만의 방식으로 그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요. 그러면 그다음 단계를 꿈꾸고 욕심내게 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가슴이 뛸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꿈을 좇다가 방향감각을 잃어도 괜찮습니다. 자기 줏대가 없는 사람을 보고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친구 따라간 강남에서 운명적인 일을 만난 경우도 현실에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니 복잡한 생각일랑 접어두시고 지금의 일에 한동안 매진해보세요. 그 일에 숙달될 때까지요. 중년의 이상은 그렇게 현실과 만나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니 현실에서 싹튼 이상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면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blessmr@hanmail.net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박미라 마음칼럼니스트·<천만번 괜찮아>, <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