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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잃고 폭주하는 10대 위해 음악학원까지 섭외

3년 동안 300회…서울시 ‘찾아가는 복지현장상담소’ 한정혜 복지상담사

등록 : 2017-08-03 14:25 수정 : 2017-08-03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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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6일 서울역 근처 드림씨티 노숙인센터 2층에서 서울시 복지본부 희망복지지원과의 ‘찾아가는 복지현장상담소’ 한정혜 복지상담사(왼쪽)가 노숙인과 상담하고 있다.
“가족과 단절된 상태여야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지정이 가능한데, 자녀와 연락하고 계시니 신청에서 탈락한 게 맞는 일이에요. 이혼하면 수급자 지정은 가능한데, 소송까지 할 생각이 있나요?”

지난 7월26일 서울역 근처에 있는 드림씨티 노숙인센터 2층에서는 서울시 복지본부 희망복지지원과의 ‘찾아가는 복지현장상담소’가 열리고 있었다. 한정혜(53) 복지상담사의 말에 70대 노숙인은 “나는 이혼하고 싶은데, 아내는 같이 살 생각은 없다면서도 자식 보기 창피하다고 이혼은 절대 안 하려 한다. 딸은 가끔 만나지만 돈은 안 준다”고 말했다. 한 상담사는 “부부 단절이 오래된 상태면 이혼이 가능할 때도 있다. 무료 법률 상담을 해주고 소송비용까지 지원해주는 데가 있으니 상담을 받아보라”며 전화번호를 적어줬다.

2014년부터 매주 한두 차례 보호관찰소, 무료급식소, 쪽방촌 등 취약계층 밀집지역을 방문해 복지상담을 해온 서울시 ‘찾아가는 복지현장상담소’가 지난 7월로 300회를 맞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서울형기초생활보장, 긴급복지지원 등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지원하고, 공적 지원이 어려우면 민간 복지자원까지 연계해 지속적인 통합 사례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하면서 한 상담사가 ‘찾아가는 복지현장상담소’의 유일한 복지상담사로 활약하고 있다.

“노숙인들을 상담하면서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참 많이 울었어요. 10명을 만나면 같은 사연이 하나도 없어요. 유명한 경제신문 기자도 있었어요. 취재원에게 얻은 정보로 모든 재산을 투자했다 날리면서 이혼하고 노숙자 신세가 된 거예요. 예전 동료가 번역 일감을 가끔 보내줘 겨우 생활하고 있더라고요. 누구나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지, 노숙인과 나는 별개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한 상담사는 2015년부터 복지상담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평생 두 아이를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았던 그에게 첫 직장이다. 남편을 따라 우즈베키스탄에 2년 반 머물 때 <한국방송>(KBS)의 교양프로그램 ‘동행’을 즐겨 보다 사회복지 쪽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2012년 귀국한 그는 1년 만에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땄다. 이어 건국대 행정대학원에 진학해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여러 복지관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복지관이 나이 많은 사람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실패를 몇번 맛보다 서울시 모집공고를 보고 큰 기대 없이 지원했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합격했어요. 이 일을 하려면 취약계층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포용심이 가장 중요한데, 오래 산 사람이 조금 더 나은 것 같아요.”

한 상담사가 가장 마음이 가는 곳은 미성년자가 있는 취약계층 가정이다. 지난 2월 서부보호관찰소에서 한부모 가정의 곽아무개(19)군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뽑기 기계를 흔들어 몇백원씩 여러 번 훔쳐 보호관찰 상태였다.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아 상담을 시작할 수 없었다. 결국 관찰소 담당자가 집으로 찾아가 자는 곽군을 깨워 겨우 통화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마음을 잡게 하려고 시청을 구경시켜주겠다며 밖으로 이끌었죠. 점심도 같이 먹고 조금 친해진 뒤에야 마음속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작곡을 하고 싶어 아르바이트해서 겨우 기타를 샀는데, 그 뒤에도 늘 부닥치는 건 돈 문제더라는 거예요. ‘나는 안 되는구나’ 절망하고 의미도 없는 돈을 훔치는 식으로 사회에 반항한 거죠.”


“음악 공부만 하게 해주면 검정고시에 꼭 합격하겠다”는 곽군의 약속을 받아낸 한 상담사는 여기저기 알아보다 대학로에 있는 음악학원 이사장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직접 곽군을 만난 이사장은 월 70만원의 학비를 1년 동안 지원하기로 결정해 곽군은 3월부터 음악학원에 다니고 있다. 얼마 전에는 약속대로 검정고시 모든 과목에 합격했다.

“학원에 갈 차비랑 밥값도 필요할 것 같아 동주민센터에서 서울형 긴급지원 생계비 70만원을 받았어요. 70만원이면 아이들한테는 큰돈입니다. 미성년자에게 목돈을 주면 엉뚱한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보호관찰소에서 매달 7만원씩 곽군에게 10개월 동안 자동이체하도록 해놓았어요.”

이처럼 한 상담사는 정부의 복지서비스 말고도 민간에서 도울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수급자, 비수급자, 장애인 등 복지 분야도 다양하고 관련 법률도 계속 바뀌기 때문에 공부도 게을리할 수 없다. 서울시의 각 분야 전문 주무관을 쫓아다니며 물어본 덕에 올해 초 계약직(11개월)으로 재임용될 수 있었다.

“상담을 받는 분들은 규정에 안 맞는데도 지원해달라는 사람, 싸우자는 사람, 밥을 더 달라는 사람 등 참 다양해요. 이런 분들과 오랜 시간 상담하는 걸 힘들어하는 분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친구랑 이야기하듯 편하게 느껴요. 이 일을 계속하고 싶은데 기회가 또 주어질지 불안합니다. 최근 새 정부와 서울시가 정규직화를 추진해 기대하고 있어요. 안 되더라도 실망하지 않고 노숙인들 무료급식소에 가서 무료로 상담하며 봉사할 생각입니다.”

글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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