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소로 떠오른 서울의 대장간들

등록 : 2017-08-17 14:57

크게 작게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는 초기 인류 문명의 ‘문화 영웅’이었다. 전설적인 동이족 수장 ‘치우’, 신라 석씨 왕조를 연 ‘석탈해’ 등이 대표적이다.

농경 위주의 정착사회가 이뤄지면서 대장일은 점차 천시되었으나,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고을마다 대장간이 있고, 서울 같은 대도시 주변에는 집단 거주지가 형성되었다.

현재의 중구 쌍림동 지역인 ‘풀무고개’, 성동구 금호동 일대의 ‘무쇠막고개’가 대표적인 대장간 마을이었다. 무쇠막고개는 이름만으로도 그곳이 쇠를 다루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금호’(金湖)라는 지명 역시 무쇠막을 한자로 표기한 ‘수철’(水鐵)리에서 파생한 것이다. 풀무고개는 지금의 장충동·묵정동·충무로5가의 옛 지명인 ‘야현’(冶峴)의 순우리말이다.

풀무고개에만 1970년대 말까지 70여곳이 있었다는 대장간이 지금은 손으로 꼽을 정도만 남아 있다. 그 가운데 역사성과 희소성을 평가받아 서울시 미래유산에 선정된 대장간은 동명대장간을 비롯해 동광대장간, 불광대장간, 형제대장간 등 4곳이다. 장인의 경력을 기준으로 모두 50년 이상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최소 2명이 호흡을 맞춰야 하는 대장일의 특성 때문인지 부자, 형제가 함께 일한다. 질 좋은 단조 수제품을 찾기 어려운 시대에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아 전국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명소로 발돋움했다. 주말농장이나 ‘DIY’(스스로 만들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집 가까운 대장간을 알아두면 자기 손에 딱 맞는 도구를 손에 넣을 수 있다.


서울시 미래유산 선정 대장간

동광대장간

17살 때 대장일을 시작한 이흔집(69)씨가 1975년 상경해 동대문구 용두동, 제기동 일대에서 일하다 1995년부터 현재의 위치에 터를 잡은 대장간이다.

2003년부터 아들 일웅씨가 아버지를 돕고 있다. 건설 공구 등 각종 도구 제작은 물론 캠핑 장비까지 만든다. 인터넷 사이트를 열어 주문을 받고 있다.(동대문구 왕산로 296-1)

불광대장간

박경원(79)씨가 1963년 처음 문을 열었으며, 1991년부터 아들 상범씨가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경원씨는 한국전쟁 때인 13살 무렵 피난 간 동네에서 대장일을 배웠다. 리어카에 화덕을 싣고 다니며 일을 하다가 불광천변에 처음 자기 대장간을 차렸다.

2012년 서울박람회에 초청돼 시연할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은평구 대조동 80-7)

형제대장간

류상준(64)씨와 동생 상남씨가 1997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가 말편자 만드는 기술자여서 자연스레 대장간 일에 눈을 뜬 상준씨는 13살부터 대장일을 시작했다. 1997년 동생과 함께 문을 열면서 이름을 ‘형제대장간’으로 했다. 상준씨는 2015년부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객원교수로 강의할 만큼 이론에도 밝다.(은평구 수색로 249)

글 이인우 선임기자

사진 서울시미래유산 누리집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