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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설역 광고게시판에 광고 대신
천경자 화백 그림 등 미술작품 전시
11.4㎞ 노선에 문화철도 프로젝트
서울시 아트 스테이션의 일환
지난 1일 정효섭 큐레이터가 자신이 미술관 콘셉트로 꾸민 신설동역 플랫폼에서 천경자 화백의 작품을 설명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역이라고 해야 하나, 미술관이라고 해야 하나?’
지난 2일부터 운행을 시작한 경전철 우이-신설선을 타고 신설동역 플랫폼에 내린 서울시민이라면 잠깐 이런 고민에 빠질 것 같다. 새롭게 열린 이 플랫폼의 꾸밈새가 마치 하나의 미술관 같기 때문이다.
개찰구 주변을 살펴보면, 천경자 화백의 그림 13점이 ‘색채의 마술사 천경자의 여행, 그녀가 바라본 풍경들’이라는 제목 아래 전시돼 있다. 상업광고가 점령하고 있어야 할 와이드컬러 광고판(뒤편에서 조명이 들어오는 지하철 역사 등의 광고판)에는 사진과 회화 작품 6점이 담겨,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하나하나의 작품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는 것도 미술관에 온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잠시 작품 설명을 살펴보니 ‘땅이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서 욕심으로 쌓아올린 여러 집들이 위태롭게 배 위에 쌓인 모습’을 담은 원성원 작가의 <집착의 방주>는 여러 장의 사진을 조합하는 콜라주 기법으로 만든 것이다. 정연두 사진작가의 <상록타워>는, 서울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상록타워 아파트 속 똑같은 집안 구조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주민들의 모습을 30장의 사진에 담았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하느라 출근길 시민들이 발걸음을 쉽게 떼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걱정마저 들게 하는 작품들이다. 이 미술관 같은 지하철역을 꾸민 정효섭(29) 큐레이터(사단법인 서울특별시미술관협의회 실장)는 “이 플랫폼은 우이-신설선 ‘문화철도 프로젝트’의 하나로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문화철도 프로젝트는 총연장 연장 11.4㎞에 정거장 13곳인 우이-신설선을 상업광고 없는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 서울시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높이는 프로젝트다. 우이-신설선 개통 하루 전날인 지난 1일 신설동역에서 정 큐레이터를 만났다. 뉴욕 지하철은 오랜 역사와 더불어 멋진 벽화 미술품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철역을 미술관 콘셉트로 꾸민 것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렇다. 미술품을 ‘화이트 큐브’(미술관을 그 폐쇄성을 강조해서 이르는 말)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전시로는 서울 시내 택시승강장 등에 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서울시 ‘아트 스테이션’ 프로젝트 등이 있다. 하지만 역사 전체를 미술관 콘셉트로 꾸민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미술관에 가는 사람은 소수다. 이번 문화철도 프로젝트는 미술관에 가지 않는 사람들도 예술을 즐길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뉴욕 지하철에 벽화 미술품을 설치한 것과 같은 의미다.” 서울시의 ‘아트 스테이션’ 작업은 지난해 서울역과 고속터미널 경부선 택시승강장에 놓인 48개 광고게시판에 작품을 전시하는 데서 출발했다. 정 큐레이터는 당시에도 큐레이션을 담당했다. 신설동역은 ‘문화철도 프로젝트’이면서 ‘2017 아트 스테이션’ 프로젝트의 하나이기도 하다. 처음 시도된 ‘지하철역 미술관’인 탓에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았을 것 같다. “가장 큰 고민은 원본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작품을 지하철역에 설치된 와이드컬러 광고게시판에 담는 것이었다. 이 게시판의 규격은 정해져 있는데, 작품의 규격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작품 밑에 로고와 작품 캡션까지 담아 원본이 잘려나가거나 왜곡되지 않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정 큐레이터는 또 “바쁜 지하철 승객들의 시선을 빨리 잡는 것도 핵심 과제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예술 작품을 많이 안 본 사람들의 눈길도 끌 수 있도록 주로 밝은 색상의 작품을 고려했다”고 한다. 전시품 중 천경자 화백의 여행 관련 작품 13점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천경자 선생이 1998년 자신의 작품 93점을 서울시에 기증하신 뒤 2014년부터 서울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하지만 역시 미술관에 가지 않으면 작품을 볼 수 없다. 이번 전시는 천 화백 작품 가운데서도 미국과 멕시코·인도·일본 등지로의 여행 관련 작품들을 고른 것이다. 천 화백은 여행을 통해 영감을 많이 얻으셨다. 움직이며 이동하는 역에서 이 작품들을 보는 사람들도 많은 영감을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신설동역사 미술관’을 어떻게 꾸며갈 생각인가? “서울시에서 우이-신설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반응을 모니터링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미술관이라는 개념은 변하지 않고 강화될 것 같다. 이번 작품들은 오는 12월31일까지 전시되는데, 다음에 전시될 작품들은 어떤 것들일지 예고하는 포스터를 붙이는 등 서울시가 세밀한 부분에서도 점점 더 미술관답게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들었다.” 우이-신설선에는 신설동역 외에도 ‘아트 스테이션’이 5곳이나 더 있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오늘의 젊은 작가상’ 수상자인 김영나 작가의 설치예술 작품 2점이 있는 성신여대역과, ‘2017년 국제 타이포 비엔날레’와의 협업으로 신진 그래픽디자이너 32팀의 작품 총 150점이 전시된 북한산우이역·솔샘역·정릉역·보문역이 그곳이다. 또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주로 그리는 정은혜·정도운 두 발달장애예술가의 작품으로 채워진 ‘달리는 미술관’도 운행 중이다. 앞으로 주말에 미술 작품을 보기 위해 미술관으로 가야 할지, 우이-신설선을 타야 할지 고민하는 시민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잠시 작품 설명을 살펴보니 ‘땅이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서 욕심으로 쌓아올린 여러 집들이 위태롭게 배 위에 쌓인 모습’을 담은 원성원 작가의 <집착의 방주>는 여러 장의 사진을 조합하는 콜라주 기법으로 만든 것이다. 정연두 사진작가의 <상록타워>는, 서울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상록타워 아파트 속 똑같은 집안 구조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주민들의 모습을 30장의 사진에 담았다.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하느라 출근길 시민들이 발걸음을 쉽게 떼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쓸데없는 걱정마저 들게 하는 작품들이다. 이 미술관 같은 지하철역을 꾸민 정효섭(29) 큐레이터(사단법인 서울특별시미술관협의회 실장)는 “이 플랫폼은 우이-신설선 ‘문화철도 프로젝트’의 하나로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문화철도 프로젝트는 총연장 연장 11.4㎞에 정거장 13곳인 우이-신설선을 상업광고 없는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 서울시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높이는 프로젝트다. 우이-신설선 개통 하루 전날인 지난 1일 신설동역에서 정 큐레이터를 만났다. 뉴욕 지하철은 오랜 역사와 더불어 멋진 벽화 미술품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철역을 미술관 콘셉트로 꾸민 것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렇다. 미술품을 ‘화이트 큐브’(미술관을 그 폐쇄성을 강조해서 이르는 말)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전시로는 서울 시내 택시승강장 등에 예술 작품을 선보이는 서울시 ‘아트 스테이션’ 프로젝트 등이 있다. 하지만 역사 전체를 미술관 콘셉트로 꾸민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미술관에 가는 사람은 소수다. 이번 문화철도 프로젝트는 미술관에 가지 않는 사람들도 예술을 즐길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뉴욕 지하철에 벽화 미술품을 설치한 것과 같은 의미다.” 서울시의 ‘아트 스테이션’ 작업은 지난해 서울역과 고속터미널 경부선 택시승강장에 놓인 48개 광고게시판에 작품을 전시하는 데서 출발했다. 정 큐레이터는 당시에도 큐레이션을 담당했다. 신설동역은 ‘문화철도 프로젝트’이면서 ‘2017 아트 스테이션’ 프로젝트의 하나이기도 하다. 처음 시도된 ‘지하철역 미술관’인 탓에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았을 것 같다. “가장 큰 고민은 원본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작품을 지하철역에 설치된 와이드컬러 광고게시판에 담는 것이었다. 이 게시판의 규격은 정해져 있는데, 작품의 규격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작품 밑에 로고와 작품 캡션까지 담아 원본이 잘려나가거나 왜곡되지 않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정 큐레이터는 또 “바쁜 지하철 승객들의 시선을 빨리 잡는 것도 핵심 과제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예술 작품을 많이 안 본 사람들의 눈길도 끌 수 있도록 주로 밝은 색상의 작품을 고려했다”고 한다. 전시품 중 천경자 화백의 여행 관련 작품 13점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천경자 선생이 1998년 자신의 작품 93점을 서울시에 기증하신 뒤 2014년부터 서울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하지만 역시 미술관에 가지 않으면 작품을 볼 수 없다. 이번 전시는 천 화백 작품 가운데서도 미국과 멕시코·인도·일본 등지로의 여행 관련 작품들을 고른 것이다. 천 화백은 여행을 통해 영감을 많이 얻으셨다. 움직이며 이동하는 역에서 이 작품들을 보는 사람들도 많은 영감을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신설동역사 미술관’을 어떻게 꾸며갈 생각인가? “서울시에서 우이-신설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반응을 모니터링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미술관이라는 개념은 변하지 않고 강화될 것 같다. 이번 작품들은 오는 12월31일까지 전시되는데, 다음에 전시될 작품들은 어떤 것들일지 예고하는 포스터를 붙이는 등 서울시가 세밀한 부분에서도 점점 더 미술관답게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들었다.” 우이-신설선에는 신설동역 외에도 ‘아트 스테이션’이 5곳이나 더 있다.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오늘의 젊은 작가상’ 수상자인 김영나 작가의 설치예술 작품 2점이 있는 성신여대역과, ‘2017년 국제 타이포 비엔날레’와의 협업으로 신진 그래픽디자이너 32팀의 작품 총 150점이 전시된 북한산우이역·솔샘역·정릉역·보문역이 그곳이다. 또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주로 그리는 정은혜·정도운 두 발달장애예술가의 작품으로 채워진 ‘달리는 미술관’도 운행 중이다. 앞으로 주말에 미술 작품을 보기 위해 미술관으로 가야 할지, 우이-신설선을 타야 할지 고민하는 시민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