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협치 조례 제정에 발맞춤
‘협치 50+원탁회의’ 구성 15개 확정
“이제 민관이 서로 알아가는 과정”
“이제 주민들이 구정에 대해 ‘참여’를 넘어 ‘권한’을 가질 때입니다.”
도봉구의회 유기훈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은 2016년 12월29일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최초로 제정된 도봉구 협치 조례의 정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유 의원은 이 조례의 대표 발의자다.
독재 시절 ‘통치의 대상’이던 주민들이 민주화를 맞으면서 ‘참여의 주체’로 나서게 됐으나 고령화·실업·도시재생·환경·에너지 문제 등 복잡다기해진 현대사회는 “주민들에게 참여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게 유 의원의 설명이다. 이런 현대의 여러 문제들은 “주민들이 예산을 짤 때부터 사업을 집행할 때까지, 행정부문과 함께 협력하고 ‘권한’을 나누어가질 때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협치’는 사실 서울시에서 먼저 시작됐다.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의 시정철학인 협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2016년 9월 먼저 ‘협치 조례’를 만들고, 각 자치구에 협치 사업 진행을 독려했다. 하지만 각 구청은 머뭇거렸다.
이런 상황에서 도봉구가 앞장서 나섰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2016년 10월1일 바로 ‘협치도봉 민관합동 TFT’를 구성해 협치 사업 추진에 나섰다. 그런데 사업의 안정적 추진을 위해서는 조례 제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직접 사업 계획이나 예산편성에까지 참여하는 것을 보장하는 조례 제정에 의원들이 선뜻 나서길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때 유 의원이 나섰다. 시민사회 추천으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가 된 유 의원은 “20여년 동안 사회복지관 활동 등을 하면서 협치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있었다”고 했다.
협치 조례가 발의되자 의회는 찬반양론으로 나뉘었다. 특히 일부 의원들은 “아직 서울시 조례밖에 없는 상황에서 왜 도봉구가 앞장서 서두르느냐”는 반론을 제기했다. 유 의원과 양지석 구 지속가능협치팀장 등은 “행정 융합의 시대에 민관뿐 아니라 민민, 관관 협력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체제가 필요하고, 조례 제정은 이를수록 좋다”고 반대 의원들을 설득했다.
이런 과정 끝에 약간의 문구 수정을 거친 뒤 총 3장 28개 조문으로 이루어진 도봉구의 ‘민관 협치 활성화를 위한 기본 조례’가 탄생했다. 협치 조례는 협치 문제를 심의·조정하는 기구로 ‘협치도봉구회의’를 만들고, 3년마다 ‘민관 협치 활성화 기본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또 협치도봉사무국을 설치하고, 민관 협치 사업 전반에 대해 조정·자문하는 협치조정관을 두도록 하고 있다.
올해 도봉구는 이런 협치 조례 시행에 따라 작지 않은 변화를 경험했다. 지난 4월에는 ‘협치도봉구회의’를 구성해 1차 회의를 했고, 지역사회 활동을 해온 이용은 사무국장을 중심으로 협치도봉사무국도 꾸렸다. 또 지난 7월에는 또 협치조정관에 김동현 지역활동가를 채용했다.
이렇게 조직 틀을 갖추면서 구정에서도 협치 방식을 점차 적용해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6월15일에 시행된 ‘협치 50+원탁회의’다. 2018년 협치 사업 과제를 논의하기 위한 이 회의에는 ‘협치도봉구회의’ 위원 10명뿐 아니라, 주민참여예산위원 10명, 유 의원을 비롯한 도봉구의원 4명, 공무원 10명, 공개모집한 주민 15명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멸종위기 꼬리명주나비 서식지 보전 프로젝트’ ‘방학중학교 빈 교실 활용 프로젝트’ 등 내년도 협치 사업 15개를 확정했다. 협치와 관련해 서울시로부터 10억5000만원의 예산도 확보할 예정이다.
도봉구의 이런 협치 모델은 서울시 각 자치구로 확산돼나가고 있다. 올해 들어 금천구(3월13일)를 시작으로 은평구(3월16일), 관악구(4월6일), 동대문구(4월27일), 서대문구(5월31일), 영등포구(6월1일), 강서구(6월7일), 성동구(7월13일) 등 8개 구가 협치 조례를 새로 제정했다.
하지만 유 의원 등은 아직 협치 문제는 걸음마 단계라고 말한다. ‘투쟁 중심의 선명성을 강조하는 시민단체’와 ‘행정의 전문성을 중시하는 공무원들’이 서로를 겨우 알아가는 단계라는 것이다. 유 의원은 이를 “아직 둘 사이는 연애를 막 시작하는 단계”라고 빗대어 설명한다. 하지만 유 의원이 양 팀장에 대해 “공무원들이 시민들의 얘기를 받아 안아서 구 행정을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우리 도봉구 공무원들의 헌신성이 느껴진다”고 말한 대목은, 비단 유 의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싶다. 주민과 공무원 간에 이런 신뢰가 깊어질수록, 유 의원의 말대로 “왼다리 가려운데 오른다리 긁어주는 행정 착오는 앞으로 더욱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