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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에 지친 시민 ‘도심 속 오아시스’

공공미술작품 ‘그린 셸터’ 설치 김규성·이의준 작가

등록 : 2017-10-1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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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디자이너 김씨·그래픽디자이너 이씨

창업지원대상에 선정돼 공동 창업

디자인에 식물 결합, 새로운 시도

컨테이너형 박스 안에 수직정원 조성

지난 13일 시민들과 함께 만드는, 진화한 공공미술 작품인 ‘그린 셸터’ 안에서 작품을 만든 김규성(앉은이)·이의준 디자이너가 쉬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달 14일부터 종로구 종로타워 앞에 컨테이너 외형의 시민 쉼터인 ‘그린 셸터’가 문을 열었다. 독특한 외양과 그 안에 가득한 식물 탓에 거리를 지나는 많은 시민이 ‘도대체 정체가 뭘까’ 하며 그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이 독특한 공간은 우리나라 공공미술의 진화를 보여주는 설치물이다. 그 진화의 핵심은 이 공공미술 작품을, 공공미술 하면 떠오르는 조형미술 작가가 아닌 디자이너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함께 만들었다는 데 있다.

그린 셸터는 컨테이너형 박스 안에 수직정원을 갖춰 미세먼지 등에 지친 시민들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이다. 3면에 식물이 놓여 있는 셸터 안에 들어가 정면의 유리문을 닫으면, 셸터는 금세 ‘도심 속 오아시스’가 된다. 식물이 뿜어내는 산소는 뇌가 안정 상태일 때 나타나는 알파파를 높이고, 잔잔히 흐르는 음악은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고 다시 ‘도심이라는 전쟁터’로 나갈 힘을 비축하게 해준다.


지난 13일 그린 셸터에서는 김규성(38)·이의준(42) 두 작가가 정식 개장에 앞서 도심 속 산소 지대인 이 공간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수직정원 조성, 식물 관리, 식물 공간 디자인을 주로 하는 기업 ‘식물팩토리’의 대표다. 식물팩토리는 웹디자이너인 김 대표와 그래픽디자이너인 이 대표가 2010년 서울시 청년창업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뒤 만든 회사다.

김 대표는 2003년 한 인터넷 음원회사에서 웹디자이너로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화원을 운영하는 부모님에게 인터넷 누리집을 만들어드린 것이 계기가 돼 점차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뒤이어 평소 알고 지내던 그래픽디자이너 이 대표와 의기투합해 청년창업 기업가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디자인’과 ‘식물’이라는 공공미술에서는 낯설게 여겨질 법한 요소들을 가지고 공공미술 작품을 만들어냈다.

사실 두 사람이 ‘공공미술 작가’가 된 것은 서울디자인재단(대표이사 이근)에서 올해 추진한 ‘2017년 공유도시 공공미술 프로젝트’ 덕이 컸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예술가 혼자 만드는 작품이 아니라 다양한 시민들이 함께 창작하는 공공미술의 시범 사례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올해 공공미술 사업을 진행했다.

재단은 참가자들부터 독특하게 꾸렸다. 조형미술 작가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과 미술가, 디자이너, 건축가, 시인, 무용가, 인문학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67명을 모았다. 미술관 자문단이나 각 지역 문화단체가 추천한 인물들이었다. 여기에 식물팩토리의 두 대표도 참가했다. 김 대표는 “추천자가 얘기한 프로그램이 신선했고, 다양한 분야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참여하게 됐다”고 말한다.

공공미술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더욱 독특했다. 참가자들은 지난 4월28일 원탁회의를 열어 각자의 생각을 발표하며 아이디어를 다듬어나갔다. 시인은 공터에서 시를 짓는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요리사는 ‘반짝 가게’인 팝업스토어를 열어 만나기 어려운 나라의 요리를 만들면서 그 나라 얘기를 나누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김 대표와 이 대표도 수직정원을 기초로 퀵배달원 등 도심 속 노동자들이 이용할 쉼터를 구상했다.

참가자 서로가 평가와 토론을 하며 아이디어들이 조금씩 다듬어졌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건물 1층 등에 수직정원을 설치하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외부에 독립공간을 만드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듣고 지금과 같은 형태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고 말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모두 35개의 공공미술 아이디어가 탄생했다.

1차 원탁회의에서 탄생한 35개 아이디어는 전문가 평가를 거쳐 19개로 축약됐다. 이 19개 아이디어들은 다시 지난 6월13~15일 ‘더불어랩’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계획안(아트플랜)으로 발전됐다. 19개 아이디어를 낸 개인과 팀들이 하루에 5~7개 팀씩 나뉘어 3일 동안 토론하면서 “이런 부분은 재미있는데, 저런 부분은 별로인 것 같다”며 서로의 아이디어를 평가했다. 이 과정에서 그린 셸터도 초기 퀵배달원 등을 대상으로 한 쉼터에서 일반 시민들의 쉼터로 발전했다. 이 대표는 “미세먼지 탓에 퀵배달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민들도 고통받고 있다는 의견이 많아, 주 이용 대상을 일반 시민으로 확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이 19개의 계획안을 놓고 전문가 심사를 거쳐 최종 8개 작품을 선정했고, 선정된 작품에는 작품당 5000만~7000만원을 제공했다. 그린 셸터가 맨 먼저 시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앞으로 10월 중에 새롭고 다양한 공공미술들이 차례로 공개될 예정이다. 시를 읽고 시를 짓는 공간인 ‘시.zip’, 종로통에서 꽃을 파는 노점상들이 만드는 ‘공유 정원’, 주민들이 직접 그리는 마을 벽화인 ‘서울마을벽화’, 예술가와 노숙자 재활을 위한 잡지 <빅이슈> 관계자들이 함께 만드는 건축물 ‘2017 공사구간 프로젝트’ 등이 그것이다.

이 새로운 공공미술 작품들이 그 신선한 아이디어로 한번, 그리고 시민들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로서 다시 한번 시민들에게 잔잔한 웃음을 선사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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