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진로 목표 상실로 부적응 위험
“학습권과 인권 보호 시책 마련하도록”
지역협력체계 만들어 진로 탐색 지원
“저기 귀퉁이에서 네명이 한명을 몰래 때리고 있어요.” “운동하고 있는 친구들 엉덩이를 숨어서 찍어요.”
지난 16일 오후 강남구 학동초등학교 강당에서 스포츠 인권 강의가 열렸다. 3~6학년의 야구부 선수 22명이 ‘(그림 속)숨은 폭력 찾기’ 활동으로 학교 곳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권침해를 생각해보는 경험을 했다. 행복하게 운동하기 위한 운동부 일정표와 규칙을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보는 모둠 활동도 이어졌다. 강의와 활동을 진행한 김시원 강사가 “스포츠라는 글자에 한자 ‘人人’이 들어가 있듯이 사람과 사람이 동등하게 함께 하는 게 스포츠다”라고 말하자, 아이들은 ‘아하, 그렇구나!’라고 호응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미경(더불어민주당, 은평2, 문화체육관광위원) 서울시의원이 참석했다. 그가 올해 발의해 4월에 제정된 ‘서울특별시교육청 학생선수 학습권 보장 및 인권보호 조례(학생선수 보호 조례)’와 관련해 학교에서 운동선수 대상 기존 인권교육이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다. 김 의원은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보기 참 좋았다”며 “학생선수 인권교육도 강의보다 역할극 등으로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바뀌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학생선수 보호 조례는 운동선수들에게 운동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데도 역점을 둔다. 김 의원은 “학교 체육은 과도한 경쟁으로 경기 실적만을 추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학생선수들은 학습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사실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학생 운동선수들의 최저학력 미달과 중도 포기가 꽤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 1학기 기준으로 서울의 학생선수는 총 9354명인데, 이 가운데 21%인 2056명은 최저학력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중학교 3학년 운동선수의 40%에 가까운 507명이 최저학력 미달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선수 활동을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 학생 운동선수 가운데 중도 포기율은 8.3%이다. 김 의원은 “학생 운동선수들의 최저학력 미달과 중도 포기의 증가는 진학이나 진로 목표의 상실로 학교 부적응, 나아가 사회 부적응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학생선수 보호 조례는 학생선수의 학습권 보장 및 인권보호를 위한 지원계획 수립(제4조) 인권보호를 위한 시책 추진 및 실태조사 실시(제5조) 학교운동부 지도자에 대한 정기적 연수 실시(제6조) 학생선수를 위한 학업 정보의 제공 및 위탁교육에 관한 사항과 관련 기관과의 협의체 구성과 운영(제7조~제9조) 등의 내용을 담았다.
조례에 따라 서울시 교육감은 학습권 보호 정책과 인권보호 시책을 세워 시행해야 한다. 해마다 학생 운동선수 인권교육과 진로상담, 직업교육, 운동부 지도자 교육·연수에 대해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올해 시 교육청은 6월까지 초·중·고 661개 팀을 대상으로 예방교육이나 상담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최저학력제를 운영하거나 학업증진 프로그램 등을 하고 있는지 조사했다. 7월엔 최저학력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 현황을 전수 조사해 어떤 과목에서 미달하는지, 기초학력보장 프로그램은 있는지 파악했다.
내년부터 시 교육청은 ‘학생선수 인권교육 강화 및 지역 협력체 운영’이란 사업을 신설해 3000만원의 예산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학생 운동선수와 지도자의 인권 인식을 개선하는 교육 교재 제작과 운영, 학생 운동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다양한 진로를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 지역협력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김낙영 서울시교육청 장학관은 “학교체육진흥법에 따른 정책이 이미 있지만 지침 수준에 그쳤다”며 “이제 조례가 만들어져 예산 근거가 마련되어 학생 운동선수의 학습권 보장과 인권보호를 학교 현장에서 적극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학생 운동선수들이 운동을 그만두더라도 꿈을 키워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이 다른 진로를 찾는 기회를 주는 데 학생선수 보호 조례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시정 질문, 자료 요구, 행정사무 감사 등을 진행해 조례 관련 교육청의 실행 계획과 사업들이 실효성을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