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어머니와 아들이 직접 만나게 해주세요

몰래 혼인신고한 남동생, 노발대발 엄마…누나 “어찌하오리까”

등록 : 2017-11-0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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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 여친에 반대하는 엄마

반발해 몰래 혼인신고한 남동생

누나들 장벽에 가로막힐 수도

동생의 문제는 동생에게 맡겨야

Q저는 4녀 1남의 장녀입니다. 딸 넷 중 셋은 결혼했고, 남동생은 저와 17살 차이가 납니다. 남동생은 예전부터 사귀는 여자 친구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남동생을 잘 키웠다고 자부하면서 부잣집 딸과 결혼시켜야겠다, 또는 전문직 여성과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시곤 했습니다.

세상엔 완벽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엄마가 해보는 말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남동생이 사귀는 여자 친구는 엄마와 아빠의 반대로 몇 달간 헤어졌는데, 최근에 제가 남동생과 연락하면서 들은 것은 다시 만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조금 더 산 사람으로서 이렇게 얘기를 해줬습니다. 엄마가 그 여자를 싫어할 순 있어. 하지만 인생은 네가 사는 거야. 그러니까 잘 생각하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엄마가 동사무소에서 서류를 떼어보고, 남동생이 5달 전에 이미 혼인신고를 했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엄마는 때때로 딸들에게, 넌 내가 공부시켰는데 살림만 하고 사니? 그럴 거면 내가 너 공부 괜히 시켰다, 또는 넌 이런저런 점이 부족해, 등등 듣기 거북한 말씀을 주로 하셨고 손자의 학업 성적이 낮다는 걸 알고 또 간섭하려 하셨습니다. 그래서 딸들 중 한 명과만 자주 연락을 합니다. 그래서인지 딸들에게도 한참 후에야 이 사실을 알리셨습니다.


저는 남동생을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고 진심으로 한 결정인가 의심했으나, 나중엔 엄마의 강요와 욕심에 남동생이 질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남동생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 않냐고 엄마에게 얘기했습니다. 엄마는 노발대발하시며 지금은 저랑 연락도 안 하십니다. 딸들 중 두 명은 엄마 편이 되어 남동생을 나무라고 있습니다. 저희 엄마께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참으로 걱정입니다. 소나무

A어머니가 현실적이고 성취지향적인 분인 것 같습니다. 거기다 자기주장이 강해서 자식들을 당신 생각대로 통제하고 싶어하시네요. 그런 부모는 자식의 삶을 결정할 모든 권한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자식이 부모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자기가 공격당했다고 생각하면서 분노하지요. 자기 권한을 침범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들은 부모에게서 독립할 때 격렬하게 저항하게 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할 수 없을 테니까요. 착실한 자식이라면 부모의 말을 거역할 때 더 엄청난 압박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동생이 여자 친구와 이별도 하려 했겠지요.

아무리 그렇게 해도 부모의 명령에 자식이 거역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평생 부모와 생각이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은 양보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자식이 배우자 문제로 부모와 갈등을 겪으면서 비로소 독립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때 부모와 자기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부모가 굉장히 자기중심적이라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의 남동생도 바로 그 상황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가 부모와 다르다는 것, 부모와 다른 가치관을 가졌다는 것을 결혼으로 확인하고 또 선언한 것이지요. 동생이 어떤 배우자를 만났든, 저는 아주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부모에게서 독립해야 한다고 부추기고도 싶습니다. 당신의 어머니처럼 자식들의 인격적 경계선을 함부로 침범하는 분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소나무님, 엄마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냐고 물으셨죠. 아마 맏이로서 막냇동생과 부모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듯합니다. 그러나 저는 엄마와 동생의 관계에 끼어들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네요. 어머니와 그의 아들이 직접 만나게 해주세요. 그동안 남동생은 누나들이라는 장막에 가려 부모와 전면적으로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그건 부모와 남동생 그 누구에게도 발전적인 환경이 아닙니다. 자식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서로를 이해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으니까요. 이제라도 서로 싸우고 미워하며 상대를 알고 또 적절한 거리도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당신 자신을 위해서도 가족 안에서 했던 그간의 역할에서 벗어나세요. 추측건대 당신은 부모에게는 무던한 딸이고 동생들에게는 어른스러운 맏이였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당신의 어머니가 욕심 많고 통제하는 엄마 역할을 하는 동안 당신이 포용적인 엄마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가족 갈등을 완화시켰는지도 모릅니다.

가족체계가 그렇습니다. 가족원 중에 한 사람이(주로 부모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또 다른 가족원이(주로 자식이) 그 역할을 맡습니다. 어머니가 자기 역할에 충실하지 못할 때 아이가 아버지의 심리적 동반자가 되거나 어린아이답지 않게 집안일을 하거나 동생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는 일을 떠맡는 것이지요. 강제될 수도, 자발적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또 누구와도 갈등하거나 대립하지 않는 중재자였을 겁니다. 자식들을 함부로 평가하는 당신의 어머니보다 어른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당신 글에는 어머니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나 솔직한 자기 생각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 동생들의 태도와 생각을 빌려 어머니의 성격을 설명하시네요. 자식이 자기 역할을 버리고 다른 역할을 떠맡으면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습니다. 즉 가족의 인정과 권한, 힘 등은 얻겠지만 자식으로서 누려야 할 행복이나 기쁨, 천진함은 희생당하게 됩니다.

저는 당신이 어머니를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다른 형제자매와 어떤 관계인지, 당신을 제외한 형제자매가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묘사하지 마시고, 당신이 어머니를 어떻게 느끼는지, 당신에게 어머니란 어떤 존재이며 어머니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동생의 문제는 동생에게 맡기시고 당신은 부모의 자식으로 돌아오세요. 그래서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다시 경험하세요.

지면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blessmr@hanmail.net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글 박미라 마음칼럼니스트·<천만번 괜찮아>ㅣ<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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