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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삭감된 공공급식 예산 20억원 살아나 다행이에요”

서울시 먹거리정책자문관 위촉된 배옥병 희망먹거리네트워크 대표

등록 : 2017-12-0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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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학교 급식 전국 확대 주역

“시민위원회는 민관 협치의 산물”

도농상생 공공급식 등 안착 과제

먹거리 불평등 심각…실태조사 착수

지난 4일 오후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2017 도농상생 이구동감 소통마당’에 참석한 배옥병 서울시 먹거리정책자문관.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오늘 새벽 2시에 먹거리 관련 예산안이 상임위를 통과했어요.” 지난 11월30일 오후 서울시청에서 만난 배옥병 서울시 먹거리정책자문관은 예산안 얘기부터 꺼냈다. 서울시가 시의회에 제출한 2018년도 예산안은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오는 15일 본회의에서 의결된다. 그는 “상임위마다 소관 예산안을 철저하게 심사해 며칠 동안 고생했는데, 다행히 거의 원안대로 통과됐다”며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올해 20억원 정도 삭감됐던 공공급식 관련 예산이 살아났어요.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안전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공공급식의 시스템화가 꼭 필요합니다. 또 자기 아이의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도 먹거리 정책을 잘 몰라요.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늘려 그 중요성을 알려야 합니다.”

지난 9월 서울시는 전국 최초의 먹거리 총괄 조례인 ‘서울시 먹거리 기본조례’를 공포하면서 희망먹거리네트워크 배옥병 대표를 먹거리정책자문관으로 위촉했다. 2002년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란 이름으로 창립한 희망먹거리네트워크는 친환경 학교 급식의 전국적 확대를 이끈 단체다.


친환경 학교 급식을 위해 달려온 15년을 돌아본다면?

“그냥 아이들 밥 한끼 먹이는 게 아니었구나. 학교 급식과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연결하는 고리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얼마 전 학교 급식 우수학교로 뽑힌 여중에 갔는데, 동아리 학생들이 날마다 음식물 쓰레기양을 재면서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더라. 다른 학교 영양사는 유전자조작식품(GMO)의 유해성을 안 뒤 식용유와 된장, 간장을 모두 바꿨다고 했다. 학교의 학생·학부모·교사, 산지의 생산자, 농장에서 학교까지의 과정 등 먹거리 시스템의 변화를 현장에서 확인하니까 정말 뿌듯했다.”

학교 급식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95년 두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 어머니회 부회장을 맡게 됐다. 시범 급식을 하던 학교라 학부모들이 가장 많이 건의한 문제도 급식이었다. 날마다 학부모 6명씩 급식실에서 조리부터 설거지까지 봉사하는데, 식재료는 부실하고, 아이들이 손도 안 된 밥을 쓰레기로 버리고, 주방 바닥에 세제를 막 붓고…. 학부모 의견을 학교에 반영하다 1997년 운영위원회가 생겼다. 그런데 한 학교만 노력해서는 급식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느껴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먹거리 민관 협치에서 민간을 대표하다 관에 들어와보니 어떤가?

“15년 동안 관과 협의하면서 이해하기 어렵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 힘들었다. 그런데 서울시에 들어와서보니 공감 가는 부분이 있어 함께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행정의 특성이 결정하기 전까지는 힘들어도 한번 결정하면 잘 가는 것 같다. 지금까지는 서울시 먹거리 관련 정책이 하나의 부서에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부서에 흩어져 있어 부서 칸막이 문제가 컸다. 먹거리 정책을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조율하기 위해 ‘서울시 먹거리 기본조례’에 민관 협력으로 먹거리 정책을 총괄·조정하는 먹거리 시민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됐다.”

먹거리 시민위원회는 어떤 곳인가?

“먹거리 시민위원회는 민민·민관·관관 협치로 만들어온 서울시 먹거리 정책의 귀중한 결과물이다. 시민과 전문가 등 전체 150여명 규모로 이루어지는데, 서울시장과 시민대표가 공동위원장을 맡게 된다. 지금까지 먹거리 정책은 위생·영양 중심이었다. 패러다임을 바꿔 생산부터 폐기까지 모든 과정에 지속가능한 먹거리 체계를 만들기 위해 서울시와 정말 많은 토론을 해왔다. 그 과정을 거쳐 지난해 말 도농상생 공공급식 정책, 지난 6월 먹거리 마스터플랜, 이번에 먹거리 시민위원회까지 만들어졌다. 이 세 가지가 안착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와 서울시를 잘 연결하는 게 자문관의 일인 것 같다.”

친환경 학교 급식과 도농상생 공공급식은 어떻게 다른가?

“학교가 아닌 어린이집, 복지 시설, 지역아동센터 등은 구마다 공공급식지원센터를 만들어 지원하는데, 공공급식 물류만 담당하는 게 아니라 시민의 먹거리 기본권까지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유전자조작식품, 살충제 계란, 간염 유발 소시지, 쌀의 비소 문제 등이 잇따르면서 시민들은 먹을 게 없다고 한다. 먹거리 불안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먼저 농촌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해야 하고, 다음에는 먹거리가 밥상에 오르기까지 안전한 과정을 통해 와야 한다. 그 체계를 만드는 도농상생 공공급식은 서울 시민의 먹거리 기본권뿐 아니라 모든 국민의 먹거리 기본권에도 기여할 것이다.”

내년도 서울시 먹거리 정책에서 역점 사항은?

“서울시 가구의 5%가 경제나 건강 문제로 밥을 제대로 못 먹고 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인구가 많은 지역에는 비만 인구도 많다. 어르신 등 취약계층의 먹거리 불평등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내년에는 취약계층의 먹거리 문제 실태 조사부터 할 계획이다.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뒤 ‘찾아가는 동주민센터’를 시작해 취약계층을 집집이 찾아가 도움을 드리고 있다. 먹거리도 포함해 취약계층의 먹거리 보장을 제대로 해야 한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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