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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맹이었던 50대 주부도 동영상 작가 시대

서울문화재단, 영상작가 40명 선발 전업주부·변호사 등 각계각층

등록 : 2017-12-07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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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재단의 유튜브 채널(www.youtube.com/user/sfacmovie)에 올라가 있는 ‘생활예술 MCN 크리에이터’들의 동영상 작품.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생활예술 현장을 동영상으로 찍어 널리 알리는’ 영상 크리에이터들은 전업주부, 변호사, 캘리그래피 작가, 음원 콘텐츠 제작자, 대학 강사, 사진가, 래퍼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시민들이다. 1 ‘장경례-JJ.g’(영상 크리에이터 이름-채널 이름) 2 송광호-송서울 3 김세훈-김세쿤TV 4 제연주-만나다TV 5 성주현-연희동한량작가 6 유혜민-필름고모리 7 조윤식-워디 8 배영주-김삼분 9 정태란-FOLLOW TAY TV 10 김우영-Milkybaby 11 최인경-예술자판기 12 김필용-용PD.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일반 시민 누구나 동영상을 만들어 세상과 소통하는 시대.’

지난 11월21일 오후 서울시민청 바스락홀에서 만난 40여명의 서울문화재단 ‘생활예술MCN 크리에이터’(이하 ‘영상 크리에이터’)들은 어쩌면 곧 다가올 ‘일반 시민 영상시대’, 즉 ‘호모비디오쿠스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영상 크리에이터’는 서울문화재단이 ‘일상에서 벌어지는 생활예술 현장을 동영상으로 찍어 널리 알리기 위해’ 지난 9월 선발한 시민들이다. 이들은 평소에는 각자 흩어져 매달 3분짜리 생활예술 이야기를 4편씩 만들어 ‘유튜브 서울문화재단 채널’(www.youtube.com/user/sfacmovie)에 올린다. 이날은 ‘생활 콘텐츠 제작 꿀팁’ 등을 배우는 월례 교육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모두 동영상을 촬영·편집할 수 있는 기본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 면면을 살펴보면 기존 영상 전문가들의 모습과는 달라서 낯설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50살 가까이 전업주부로 생활했던 이를 비롯해 변호사, 캘리그래피 작가, 음원 콘텐츠 제작자, 대학 강사, 사진가, 래퍼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전업주부’ 장경례(57)씨는 자신을 ‘1인 영상미디어 시대의 행운아’라고 설명했다. 영상 크리에이터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장씨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평범한 주부였다. 하지만 2009년 강남구 여성능력개발센터에서 제1기 여성 비디오저널리스트 교육과정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우연히 본 뒤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장씨는 당시 교육에 온힘을 쏟았던 아들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헛헛만 마음이 들 때였다고 한다.

“그때 우연히 시작한 동영상 공부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당시 기계치에 컴맹이었다”는 장씨는 그래도 조금씩 동영상 촬영·편집 기술을 익혀나갔고, 그것은 그에게 “세계와 소통하는 새로운 도구”가 되어주었다.

장씨는 그동안 동영상 촬영을 하며 ‘잘 보이지도 않고 잘 들리지도 않는 후천적 시·청각 중복장애인 마라토너 이철성씨’ ‘유치원과 초·중·고 학생들을 찾아가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차별과 편견을 상황극으로 보여주는 장애인 강사 섹시 미녀씨’ 등을 만났다. 이들을 찍은 동영상은 그에게 미래창조과학부장관상과 국무총리상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장씨는 그런 상보다 이들과 만나면서 “좀더 넓은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게 된” 것을 더 고맙고 기쁘게 생각한다.

더욱이 장씨는 지난 9월 서울문화재단 영상 크리에이터가 된 이후 서울노인복지센터의 ‘라디오 실버스타 디제이’ ‘서울 둘레길 탐방’ ‘망우리 인문학 산책’ 등 생활 속 예술 현장을 누비며 이를 동영상에 담고 있다.


이제 점점 많은 이들이 장씨처럼 ‘어느날 문득’ 자신의 주변에 가깝게 다가온 동영상을 발견하고 있다. 특히 2005년 2월 유튜브 서비스가 시작되고, 2007년 6월 아이폰이 스마트폰 시대를 연 이후 동영상은 성별이나 나이 구분 없이 누구나 쉽게 만들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되었다. 촬영 장비도 40만~50만원 정도면 텔레비전 방송용 풀 HD의 4배 해상도인 4K까지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살 수 있다. 휴대폰에 내장된 카메라로도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이에 따라 동영상 생산자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 3일 현재 ‘36만5500명’의 구독자를 지닌 유튜브 ‘마하린TV’의 운영자는 초등학교 5학년생 최린군이다. 최군이 엄마와 함께 만들어서 올린 라면 먹기, 미끄럼틀 타기 등의 동영상은 적게는 수만 건에서 많게는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한다.

모든 연령층이 동영상 생산자 겸 소비자가 되면서 동영상의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도 올해 ‘서울로 7017’ ‘잘 생겼다 서울 20’ 등 서울시정의 홍보에 인기 유튜버들의 동영상을 활용했다.

서울문화재단은 주철환 대표가 지난해 취임 이후 역점을 두고 있는 ‘아무나(아!문화) PD’ 사업도 이런 ‘일반 시민 영상시대’의 확산과 맞닿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나 PD는 누구나(아무나) ‘아! 문화’라고 할 만한 콘텐츠를 만드는 시대라는 전제로 시민 중에서 아무나 PD 1000명을 선발·지원하는 사업이다. 영상 크리에이터는 아무나 PD의 영상부문 사업이다.

장경례씨뿐 아니라 선발된 다른 영상 크리에이터도 이 아무나 PD 사업 중 일부다. ‘송서울’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송광호(28)씨는 2015년 9월부터 지난 3월까지 약 1년6개월 동안 베트남 남부 바리아-붕타우 대학에서 한국어 교사로 자원봉사를 하며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유튜브 영상 제작을 시도한 게 인연이 됐다.

2016년 웹드라마 ‘호러 딜리버리 서비스’ 기획·감독을 맡기도 한 크리에이터 김세훈(34)씨는 “어머니가 광장시장에서 평생 한복을 만드시다가 그만두실 연세가 되면서” 동영상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어머니 또래 분들이 돌아가시면 사라질 수 있는 한복 만드는 기술을 동영상으로 남기고자” 한 것이다.

그의 동영상 채널 ‘김세쿤TV’는 이에 따라 ‘여밈깃 암홀 저고리 만들기’ 등 구체적인 한복 제작 방법과 광장시장에서 한복을 만드시는 분들 인터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영상 크리에이터 중에서 막내인 제연주(23)씨는 “대학 시절 영상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영상 메시지의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느끼면서” 동영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제 씨는 현재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을 인터뷰하는 ‘만나다TV’를 운영하고 있다.

영상 크리에이터들은 잔뜩 쌓인 동영상 파일을 시청자들이 감동할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장경례씨는 “첫 화면을 구성하기 위해 몇 시간을 고심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 고생을 감내하는 이유는 그렇게 만들어진 콘텐츠가 강한 메시지 전달자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송광호씨가 베트남 봉사 시절 동영상으로 ‘왕따’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대표적이다. 송씨는 따돌림을 당하는 베트남 대학생과 커피 등을 마시며 깊은 얘기를 한 뒤 이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자신의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그 동영상을 본 베트남 학생들이 왕따 학생에 대한 오해를 풀고 서로 소통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고 한다. 제연주씨도 “장애인과 비장애인 아티스트들이 모여 만든 사회적 기업 ‘블롬위크’ 영상을 만든 뒤, 관계자로부터 ‘홍보 영상으로 요긴하게 쓰겠다’는 감사 인사를 받으며 동영상의 힘을 새삼 느꼈

다”고 말한다.

서울문화재단은 현재 활동하는 영상 크리에이터들은 이번 12월에 4개월간의 1차 활동 기간이 끝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나 PD 시대에 걸맞게, 재단은 내년과 내후년에도 영상 크리에이터를 모집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또 어떤 시민들이 영상 크리에이터로서 동영상과 뜨거운 연애를 하게 될지 자못 기대된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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