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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정보공개 소송 벌인 덕분
환경부, 용산기지 오염 실태 공개
소파 규정 애매하고 미군 기준 낮아
원주 기지 이전 7년, 조사 착수 못해
이대론 이전 스케줄 이행 불가능
한파가 기승을 부린 지난 15일,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3번 출구. 담장에 철망을 두른 주한미군 용산기지를 오른편으로 끼고 한강 쪽으로 걸으며 신수연 녹색연합 평화생태팀장이 물었다. “이게 뭔지 아세요?”
신 팀장이 가리킨 것은 길바닥에 설치된 지름 약 30㎝ 크기의 맨홀 뚜껑이었다. 표면에 ‘水’(수)라고 쓰인 뚜껑은 대개 일정한 간격으로 있었지만,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웠다. 기자가 고개를 젓자 신 팀장이 말했다. “관측정이에요. 이 관측정으로 시료를 채취해 용산기지 경계 바깥의 환경오염을 조사하죠. 여름엔 뚜껑이 쉽게 열렸는데 지금은 안 되네요.”
용산기지 오염은 지난달 29일 정부가 기지 내부 오염원 조사 자료를 공개하면서 다시 사회적 관심사가 됐다. 신 팀장을 포함해 시민사회가 환경부를 상대로 이 자료의 정보공개 소송을 꾸준히 벌여온 ‘성과’다. 마침 주한미군이 용산기지 주요 병력을 경기도 평택으로 옮기는 시한인 12월 말도 코앞에 닥쳐, 이태원 거리에서 신 팀장을 만났다.
용산기지 오염은 지난달 29일 정부가 기지 내부 오염원 조사 자료를 공개하면서 다시 사회적 관심사가 됐다. 신 팀장을 포함해 시민사회가 환경부를 상대로 이 자료의 정보공개 소송을 꾸준히 벌여온 ‘성과’다. 마침 주한미군이 용산기지 주요 병력을 경기도 평택으로 옮기는 시한인 12월 말도 코앞에 닥쳐, 이태원 거리에서 신 팀장을 만났다.
신수연 녹색연합 평화생태팀장이 이태원 거리에 있는 오염 관측정을 설명하고 있다. 신 팀장이 가리키는 용산기지 남쪽 지역 5번 게이트 안쪽에서 지난해 오염 조사가 실시됐다.
이 관측정으로 오염 조사를 하나?
“기지 바깥 이태원로터리 일대에 30여개가 있다. ‘水’라고 쓰여 있지만, 미군기지 기름 유출에 따른 오염과 냄새 때문에 ‘油’(유·기름)라고 고쳐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많이 한다.”
지난달 환경부 공개를 보면 기지 내부에서 벤젠 농도가 특히 높았는데?
“지난해 8월에 내부 25개 지점을 조사한 결과, 한 지점에서 지하수의 벤젠 농도가 10.077㎎/ℓ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환경기준치 0.015㎎/ℓ의 672배나 된다. 벤젠은 백혈병과 혈액암을 유발하고, 생식 기능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1군 발암물질(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 기준)이다. 25개 지점 중 벤젠이 환경기준치를 초과한 지점이 16개였다. 다른 조사 항목 중 환경기준치를 넘은 지점은 총석유계탄화수소 11개, 에틸벤젠 8개, 톨루엔 4개 등이었다. 벤젠 농도가 높은 지점은 정확하게 발표되지 않았으나, 1998년 7571ℓ의 휘발유가 유출된 곳과 가까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군기지 내부의 오염 실태는 충분히 알려졌나?
“그럴 리가 있나. 미군은 기지 오염 실태를 스스로 발표하지 않는다. 녹색연합 등이 미국 정부를 상대로 1990~2015년의 유류 유출 사고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해 1년여 만에 자료를 받아보니, 그 기간에 모두 84건의 사고가 난 것으로 확인된다. 그나마 폐기물 처리 사고 등 다른 오염 요인에 대해선 자료도 공개하지 않았다.”
실태는 어떤가?
“크고 작은 사고가 기지 전역에서 일어났다. 기지 전체가 광범위하게 오염됐다는 뜻인데, 기지 남쪽인 사우스포스트 지역이 북쪽 지역보다 사고가 더 많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인접한 곳에서 1997년 디젤 2만8845ℓ가 유출된 것이 가장 큰 사고로 나온다.”
한미연합사령부의 잔류가 여전히 논란으로 남아 있는 등 반환지역 범위에 불확실성이 있지만, 어쨌든 많은 병력이 12월 말 평택 이전이 완료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곧바로 오염 실태 조사나 정화 작업에 들어갈 수 있나?
“그렇지 않다. 복잡한 절차가 남았다. 한미 소파(SOFA·주한미군지위협정) 합동위원회 환경분과에서 미군의 기초 자료를 바탕으로 ‘환경오염 조사 및 위해성 평가 보고서’를 먼저 작성해야 하는데, 정화 기준이 되는 ‘위해성 평가’를 놓고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군이 우리보다 완화된 정화 기준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원주에 있는 미군기지는 미군이 떠난 지 7년이 넘었지만, 이 위해성 평가에 발목이 잡혀 아직 기지 안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소파 양해각서의 ‘(미)합중국 정부는 인간 건강에 대한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하는 오염의 치유를 수행한다’는 조항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애매모호하고 구체적인 수치가 없다. 이 조항을 ‘합중국 정부는 오염 발생 시 대한민국 정부의 환경 법령과 기준에 따라 조처한다’고 바꿔야 한다.”
그런데도 국토교통부는 용산기지에 대해 ‘2018년 오염 조사, 2019~2021년 정화’라는 스케줄을 변함없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불가능하다. 위해성 평가도 문제지만, 오염 정화만 해도 3~4년은 필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정화 책임이라는 큰 산도 남아 있지 않나?”
정화 책임에 대한 생각은?
“당연히 주한미군이다. 그렇지만 미군은 지금까지 한국에 있는 기지 단 한 곳에도 정화 비용을 내지 않았다.”
신 팀장은 교육콘텐츠를 만드는 직장에서 일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2012년 녹색연합에 들어가 시민활동가가 됐다. 2013년부터 미군기지 문제를 맡고 있다.
그는 “용산기지는 미군 이전→ 기지 반환→ 환경오염 치유→ 공원 조성이라는 큰 얼개로 진행된다. 국방부와 외교부, 환경부, 국토부 등 많은 정부 부처들이 연관돼 있을 뿐 아니라, 미국과 협상에도 갈등 요인이 쌓여 있다. 국무총리실이든 어디든 총괄 주체가 없으면 제대로 진행하기 어렵다”며 정부의 변화를 강조했다.
글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