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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만에 쪽방 생활에서 벗어나 구로구 개봉동의 18평형 매입임대주택에 거주하게 된 박영길(가운데)씨가 지난 13일 쪽방 생활 탈출에 도움을 준 사람들과 함께 ‘마이홈 상담센터’ 안내팻말을 들고 새로 입주한 집 앞에 섰다. 사진 오른쪽부터 배문호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강서권주거복지센터장, 이덕화 강서권 마이홈 상담센터 상담원, 박영길씨, 김형욱 영등포 쪽방상담소장, 박은정 강서권주거복지센터 차장.
LH 강서권주거복지센터
12가구짜리 매입임대주택을
영등포 쪽방상담소에 관리 위탁
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떨어져 ‘모스크바보다 더 춥다’던 지난 13일 오후, 구로구 개봉동의 18평형 다가구주택에 사는 박영길(69)씨의 마음은 오히려 훈훈했다. 늘 고맙게 여기던 ‘집주인’을 지난 8월 입주 뒤 처음으로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박씨는 지난여름 지금 집으로 옮겨오면서 약 40여년간 떠날 수 없었던 영등포역 근처 ‘0.8평짜리 쪽방’ 생활을 마감할 수 있었다.
박씨가 집주인이라고 한 이는 배문호(55) 한국토지주택공사(LH) 강서권주거복지센터장이다. 배 센터장은 12가구가 살 수 있는 ‘매입임대주택’ 한 동 전체를 주거복지재단 임대주택 운영기관인 영등포 쪽방상담소(소장 김형욱)에 맡겼다. 매입임대주택은 엘에이치가 ‘민간이 건설한 도심 내 기존주택을 사들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에게 저렴하게 임대하는 주택’을 가리킨다. 현재 전국에 10만7000호 정도 된다. 보통 다가구주택 중 한두 채를 쪽방상담소 같은 ‘주거취약계층 운영기관’에 맡기는 일이 많고, 건물 전체를 한 운영기관에 맡기는 일은 흔치 않다고 한다.
쪽방상담소 같은 매입임대주택 운영기관은 주거취약계층 주민들과 밀접한 연대를 가진 엔지오 단체인 경우가 많다. 운영기관은 입주자 선정뿐만 아니라, 입주 뒤 관리까지 맡고 있다. 김 소장도 정기적으로 매입임대주택들을 방문해 “하수구가 막히지는 않았는지, 수돗물은 잘 나오는지” 등을 비롯해 주민들의 불편사항을 점검하고 있다.
영등포 쪽방상담소는 엘에이치 강서권주거복지센터가 맡긴 매입임대주택에 들어갈 12가구를 오랫동안 쪽방 생활을 해온 사람들 중심으로 선발했다. 박씨도 그 가운데 한명으로, 4층짜리 갓 지은 다가구주택의 203호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박씨는 지난 8월 입주할 무렵의 무더운 여름 날씨나 이번 겨울 강추위를 겪으며, 주거환경이 너무나 열악했던 쪽방 생활이 떠올랐단다. 쪽방의 어원이 ‘쪼갠 방’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쪽방은 집 한 채를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작은 방으로 여러 개 쪼갠 집들을 가리킨다. 방만 개인이 홀로 쓰고 부엌과 화장실은 공동으로 써야 했다. 목제 가구가 많은 영등포 쪽방촌은 여름철이면 섭씨 50도가 넘을 때가 많고, 겨울에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연탄에만 의지해 추위를 이겨내야 했다. 경기도 송탄이 고향인 박씨는 제대하고 서울로 올라온 1970년대 초부터 쪽방에 자리잡았다. 막노동으로 돈을 모을 요량으로 천호동에서 아산으로 온갖 곳을 다 다녔지만, 결국 쪽방을 벗어나지 못했고 병든 몸만 남았다. 60살이 넘으면서는 공사판에도 나갈 수 없었다. 건설 현장 관리인들이 사고가 날까봐 박씨같이 나이 든 사람의 채용을 꺼린 탓이다. 주거급여와 노령연금만으로 생활하면서 더 이상 쪽방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1평도 안 되는 쪽방은 어쩌면 ‘무덤’ 그 자체였다. 그러다 3년 전쯤 김형욱 쪽방상담소장으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할 자격이 되니 서류를 열심히 갖춰 신청해보라는 것이다. 문제는 ‘보증금 50만원’이었다. 주거취약계층이 매입임대주택에 들어가려면 월세 21만원과 보증금 50만원을 내야 한다. 월세 21만원은 쪽방 월세 25만원보다 작지만, ‘목돈 50만원’은 박씨에게는 거금이었다. 하지만 박씨는 이번이 쪽방을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해 한달에 “3만원도 모으고 5만원도 모아” 결국 보증금 50만원을 마련했다. 김 소장은 이 ‘보증금 50만원’을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입주자들의 강한 의지로 풀이한다. 김 소장은 “쪽방은 사실 월세 25만원만 내면 나머지는 여러 가지 구호물품과 무료급식 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구조지만, 매입임대주택에서 지내려면 식료품도 자기가 사고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영등포 쪽방상담소는 엘에이치 강서권주거복지센터가 맡긴 매입임대주택에 들어갈 12가구를 오랫동안 쪽방 생활을 해온 사람들 중심으로 선발했다. 박씨도 그 가운데 한명으로, 4층짜리 갓 지은 다가구주택의 203호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박씨는 지난 8월 입주할 무렵의 무더운 여름 날씨나 이번 겨울 강추위를 겪으며, 주거환경이 너무나 열악했던 쪽방 생활이 떠올랐단다. 쪽방의 어원이 ‘쪼갠 방’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쪽방은 집 한 채를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작은 방으로 여러 개 쪼갠 집들을 가리킨다. 방만 개인이 홀로 쓰고 부엌과 화장실은 공동으로 써야 했다. 목제 가구가 많은 영등포 쪽방촌은 여름철이면 섭씨 50도가 넘을 때가 많고, 겨울에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연탄에만 의지해 추위를 이겨내야 했다. 경기도 송탄이 고향인 박씨는 제대하고 서울로 올라온 1970년대 초부터 쪽방에 자리잡았다. 막노동으로 돈을 모을 요량으로 천호동에서 아산으로 온갖 곳을 다 다녔지만, 결국 쪽방을 벗어나지 못했고 병든 몸만 남았다. 60살이 넘으면서는 공사판에도 나갈 수 없었다. 건설 현장 관리인들이 사고가 날까봐 박씨같이 나이 든 사람의 채용을 꺼린 탓이다. 주거급여와 노령연금만으로 생활하면서 더 이상 쪽방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1평도 안 되는 쪽방은 어쩌면 ‘무덤’ 그 자체였다. 그러다 3년 전쯤 김형욱 쪽방상담소장으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할 자격이 되니 서류를 열심히 갖춰 신청해보라는 것이다. 문제는 ‘보증금 50만원’이었다. 주거취약계층이 매입임대주택에 들어가려면 월세 21만원과 보증금 50만원을 내야 한다. 월세 21만원은 쪽방 월세 25만원보다 작지만, ‘목돈 50만원’은 박씨에게는 거금이었다. 하지만 박씨는 이번이 쪽방을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해 한달에 “3만원도 모으고 5만원도 모아” 결국 보증금 50만원을 마련했다. 김 소장은 이 ‘보증금 50만원’을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입주자들의 강한 의지로 풀이한다. 김 소장은 “쪽방은 사실 월세 25만원만 내면 나머지는 여러 가지 구호물품과 무료급식 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구조지만, 매입임대주택에서 지내려면 식료품도 자기가 사고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40년 이상 영등포 쪽방 생활을 한 박영길(오른쪽 세번째)씨와 조순금(오른쪽 두번째)씨가 김형욱 영등포 쪽방상담소장(오른쪽 네번째) 등과 새로 입주한 매입임대주택의 주거 상황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결국 생활비를 조금씩 모아 보증금을 마련하는 행위 자체가 더 나은 삶을 위해 주체적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뜻이다.
배 센터장은 “엘에이치 매입임대주택 사업이 주거취약계층에게 이처럼 ‘희망의 사다리’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박씨와 같은 주거취약계층이 자신의 주거환경에 대해 절망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주거환경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제시해주는 제도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장 20년까지 살 수 있는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 덕에 개봉동 매입임대주택에는 영등포 쪽방 시절과는 다른 생기가 돈다. 우선 14가구 중 2세대가 신혼부부다. 502호에 사는 최연주-권애 부부는 입주 이틀을 앞두고 결혼식을 올렸다. 김 소장은 “운영기관 입주자 선정 규정 중 결혼을 하면 대기 순서와 상관없이 제1순위로 입주시킬 수도 있다는 규정이 있다”며 “쪽방 거주자인 남편 최연주씨의 애초 입주 순위가 상당히 뒤에 있었지만, 두 사람이 결혼을 약속하면서 개봉동 다가구주택에 입주할 수 있었다”고 한다. 501호에 사는 김아영씨는 출산을 앞두고 봉천동에 있는 매입임대주택에서 지금 주거지로 옮긴 경우다. 지난 10월 아들을 낳은 김씨는 “주거환경이 좋아지고 주변에 좋은 어린이집과 학교가 많아 아주 만족스럽다”며 편안한 웃음을 띠었다. 김 소장은 “이 밖에도 주거환경이 바뀌면서 입주자 중 상당수가 결혼을 전제로 사람을 사귀고 있어 ‘신혼부부’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귀띔한다.
김 소장은 “입주자들 간 친목도 잘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쪽방 시절부터 몇십년을 이웃하며 지냈기 때문이다. 박씨도 척추 수술을 해 거동이 불편한, 같은 층 201호 조순금(83) 할머니를 ‘이모님’이라 부르며 외출할 때 휠체어를 들어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김 소장은 조만간 주민 커뮤니티모임도 정기적으로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입주민들의 변화 모습을 살펴본 배 센터장은 “우리 사회에는 열악한 주거환경에 살면서도 정보 부족 등으로 더 나은 주거환경으로 가는 희망의 사다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소외계층이 여전히 있다”며 “지난 보수정권에서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취했다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주거복지 5년 로드맵 등을 통해 소외계층에 더욱 많은 관심을 쏟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내년에는 엘에이치 강서권주거복지센터와 영등포 쪽방상담소의 협업 같은 사례가 더욱 늘어나 ‘더 많은 박씨들’이 희망의 사다리를 올라 차가운 겨울을 따뜻한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