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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이야기 담은 주머니 속 문예지 지향

올 1월 창간한 서울문화재단의 웹진 ‘비유’ 고영직 편집장

등록 : 2018-01-1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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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쓰다, 묻다 3개의 메뉴로 구성

재단이 지원하는 청년 작가 100명과

기성 작가 구분 없이 작품 게재

‘작업공간 구하기’ 작가 분투기 눈길

평론가인 고영직 웹진 편집장이 지난 12일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 뒤편 숲속에서 에 실린 글들을 스마트폰으로 읽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주머니 속의 문학잡지.’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주철환)이 올해 초 창간한 웹진 <비유>(view.sfac.or.kr)를 가리키는 말이다. <비유>가 스마트폰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데 최적화된 덕에 ‘언제든지 주머니에서 꺼내 문학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특징을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웹진 <비유>가 다루는 문학의 영역은 주머니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크고 넓다. <비유>는 무엇보다 ‘전문작가가 쓰는 시와 소설’이라는 전통적인 문학 개념에 도전한다. 좀더 다양한 사람들이 쓴 폭넓은 글을 문학의 틀에 포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문학의 개념마저 확장해나간다.


웹진의 전체 구성을 ‘!(하다)’ ‘…(쓰다)’ ‘?(묻다)’라는 3개 메뉴로 나눈 것도 이런 ‘도전과 확장’의 결과다. ‘!(하다)’는 여러 문학적 실험을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문학이란 완성된 작품의 형태만이 아니라 작품이 완성되기 이전의 과정 속에도 있다는 새로운 관점에서 출발한다. 창간호에서는 ‘월 10만원으로 작업공간 구하기’ 프로젝트에 참가한 4명의 작가 이야기를 다뤘다.

‘…(쓰다)’는 2017년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인 지원사업으로 선정된 청년 작가 100명의 작품과 기성 작가의 신작을 구분 없이 함께 공개한다. 이에 따라 작가 소개란에 ‘어떤 신춘문예에 등단한 누구’라는 식의 내용은 없다. 다만 기성·청년 작가 구분 없이 ‘글쓴이가 글의 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소개한다.

‘?(묻다)’는 특정 낱말로 여러 사람의 의견을 엮어가는 메뉴다. 창간호에는 ‘캡처’와 ‘목격자’라는 두 낱말이 올라와 있다. 이 가운데 ‘목격자’는 2017년을 관통하는 굵직한 사건의 한가운데에 섰던 이들이 그 현장을 전하는 코너다. 지난해 7월 강서구에서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무릎 꿇었던 어머니 중 한 명인 이은자씨가 쓴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토론회의 날’ 등의 글이 실려 있다.

이 ‘작지만 커다란 새로운 잡지’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 탄생 과정을 듣기 위해 지난 12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비유> 편집장인 고영직(49) 평론가를 만났다. 고 편집장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에서 간사로 일하기도 했으며, 1992년 평론 작업을 시작한 뒤에도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 대표를 지내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언제부터 <비유>를 구상하게 됐나.

“2016년 11월 서울문화재단으로부터 매체 창간 제안을 받았다.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고, 20~30대 청년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발표 공간 등을 포함한 새 매체를 창간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반영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 일텐데, 현재와 같은 ‘웹진 형식으로 문학의 확장’을 추구하는 방식은 언제 형성됐나.

“새 형식은 지난해 2월쯤 편집진이 구성되면서 본격 논의됐다. 저를 포함해 김지은(아동문학평론), 김중일(시인), 황현진(소설가), 김나영(문학평론), 장은정(문학평론) 작가가 편집진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연희문학창작촌의 한혜인 총괄매니저와 오영호 대리도 함께 머리를 맞댔다. 최종적인 틀은 지난해 9~10월께 나왔다. 지금도 편집진이 2주일에 한 번씩 모여 편집회의를 하면서 잡지의 방향을 논의한다.”

고 편집장은 “<비유> 아이디어는 젊은 편집진이 많이 냈다”며 새 잡지 창간의 공을 젊은 후배들에게 돌렸다.

‘!(하다)’ ‘…(쓰다)’ ‘?(묻다)’라는 구성이 굉장히 도전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구성의 핵심은 앞으로는 ‘독자들이 포함되는 문학생태계’로 가야 한다는 지향을 담은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문학계에서는 독자들은 소외돼 있었다고 본다. 이번에 잘 알려지지 않은 청년 문학인을 지원하는 사업과 맞물려서 생산자 중시가 아니라, 수용자 중시로 전환하자는 방향성을 담은 것이다. 한 예로 ‘…(쓰다)’ 같은 경우, 기성 작가와 청년 작가 작품을 구분 없이 소개함으로써, 작가 등단 제도를 약간 완화해줄 수 있는지 실험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전망은?

“지금은 한국문학의 큰 전환기다. 최근에 몇 년 동안 많은 전통적 문예지가 폐간하거나 잡지로서 구실이 크게 떨어졌다. 이와 함께 일반 독자들이 작가가 돼 출간한 독립잡지들은 많이 늘어났다.

젊은 독자 중에는 세계문학 등이 자신의 생활과 동떨어진 얘기를 담아 자신과 관련도 없고, 와닿지도 않는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현재 동시대, 이곳에서 살아가는 얘기를 담아내고자 한다. 이런 현상은 글 쓰는 게 등단 작가들의 전유물이던 시기가 확실히 지났음을 보여준다. 이런 흐름 속에서 <비유>가 한국의 문학 생태계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머니 속에 있지만 그 출중함 때문에 다른 이들이 그 존재를 알아보는 것’을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 한다. <비유> 또한 주머니 속 스마트폰에서 출발해 기성 문학의 낡은 관습을 꿰뚫어버리는 ‘문학적 송곳’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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