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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콘텐츠 만드는 사회적기업
‘관련 법안’ 개정 촉구 연극 제작
지난해 말 관련 법안 개정돼
한부모 가족의 날 제정
예비 사회적기업 ‘명랑캠페인’ 오호진 대표가 지난 18일 서대문사회적경제마을센터 2층 사무실 앞에서 회사 소개판을 보여주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난 연말 오호진(44) 명랑캠페인 대표는 여의도 국회만 바라보며 내내 마음을 졸였다. 본회의가 열리지 않아 오 대표가 기다리던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었다. “법에 문외한이었던 제가 국회 사이트에 들어가 회의 일정을 날마다 살필 정도로 속을 많이 태웠어요.” 마침내 지난해 12월29일 저녁 한부모 가족 지원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함께 애썼던 배우와 스태프, 여성단체와 시민단체 사람들은 연락이 닿지 않아 기쁨을 나누지 못해 아쉬웠지만, 작은 케이크 하나 사서 집에서 남편과 자축했다.
개정안에 따라 2019년부터 5월10일은 ‘한부모 가족의 날’로 지정돼, 한부모 가족에 대한 사회의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한 각종 행사가 열린다. 한부모 가족을 위한 전용 상담전화도 설치해 운영한다. 도움이 필요한 한부모 가족에게 지원기관과 시설을 연계해주는 종합정보 제공 서비스도 할 수 있다. 아울러 이혼이나 사별로 한부모가 된 임신부도 미혼모자 가족 복지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한부모 가족에 대한 편견을 깨는 출발점으로 작은 변화가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거예요.”
오 대표가 입법 연극 <미모(美母)되니깐>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15년이다. 청소년 미혼모 시설 ‘두리홈’ 연극놀이 워크숍이 출발점이다. 참가자들의 반응이 좋아 8회에서 30회로 프로그램 수를 늘렸다. 미혼모 당사자들이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로 나서서 연극을 하면서 입법 연극으로 발전했다.
입법 연극의 핵심은 문제점을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관련 단체와 함께 법안을 만들거나 개정하는 데 있다. 2016년에는 권미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연극을 관람한 뒤 관심을 가져줬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한국한부모연합,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등과 함께 ‘한부모가족 지원법’과 ‘양육비 이행 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수차례 검토하고 권 의원실과 정기적으로 회의를 했다. 8개월 준비 끝에 지난해 1월 국회의원 41명이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을 고치는 게 이렇게 힘든 건 줄 몰랐다고 제가 투덜거리니 권 의원이 100번 제안하고 100번 발의하면 된다고 응원해줬어요.” 오 대표는 영화와 공연 보기를 좋아해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고, 1999년부터 영화계와 공연계에서 기획 일을 시작했다. 2010년부터 2년간 공익 분야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희망제작소의 공익 기획자 양성 프로그램(소셜 디자이너 스쿨)을 수강했다. 작은 결혼식, 친환경 결혼식 등 ‘우리가 주인이 되는 결혼’이라는 기획으로 소셜벤처경연대회에서 상도 받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생필품을 모아 판자촌에 기부하는 캠페인을 열기도 했다. 공연기획사를 그만두고 푸르메재단 모금팀장으로 자리를 옮겨 그동안 넓혀온 네트워크를 활용해 연예인들과 기부 공연, 뮤지컬 등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하지만 비영리기관의 업무 방식이 자신과 잘 맞지 않아 오 대표는 10개월 만에 독립을 택했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 기획에 참여했다. 50대 독거남들이 희망을 찾는 ‘나비남 영화제’, 영화로 타인과 소통하고 위로하는 ‘공감영화제’, 입체낭독극 <뛰뛰빵빵> <어쩌면> <웃는 동안>, 연극 <가족병: 혼자라도 괜찮을까?> 등이다. 이런 활동을 이끄는 명랑캠페인은 문화예술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예비)사회적기업이다. 연극, 콘서트,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건강한 사회변화 캠페인을 시도한다. 2015년 오 대표가 주식회사로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다. “제 경험을 살려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사회를 향해 문제를 제기하며 변화를 끌어내는 데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대부분의 활동이 인식 개선을 최우선 목표로 삼다보니 대개 무료로 이뤄진다. 지원사업이 아니면 비용을 부담하며 계속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미모되니깐>도 회당 400만~500만원의 비용이 든다. 규모를 줄여 작은 뮤직토크쇼로 바꿔 운영했다. “사업비의 한계도 있고 해서 ‘찾아가는 공연’ 형식으로 대안을 찾았어요.” 미혼 엄마들의 독백을 담은 뮤직토크쇼 <母(모)놀로그>는 지난해 하반기에 5회 공연했다. 오 대표는 “이제야 세상 물정을 알아가고 있어요”라고 한다. 사회적기업 대표를 하면서 돈 걱정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욕도 먹으며 산단다. 그러면서 내공도 생기고 정신력도 강해지고 있다고. “간혹 미혼모들 가운데 자신들 이용해 돈 번다고 대놓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처음에는 충격을 받아 다른 단체 대표를 찾아가 상담했더니 ‘욕하는 몇 사람 때문에 이 일 안 할 거냐?’고 되물어, 알 수 없는 누군가를 돕는 거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그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꿈은 예술의 전당 같은 대형 공연장의 사장이 되는 거였단다. 이제는 사회적기업을 하는 게 너무 잘한 일인 것 같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과 즐겁게 오래 해보고 싶어요.”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입법 연극의 핵심은 문제점을 인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관련 단체와 함께 법안을 만들거나 개정하는 데 있다. 2016년에는 권미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연극을 관람한 뒤 관심을 가져줬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한국한부모연합,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등과 함께 ‘한부모가족 지원법’과 ‘양육비 이행 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수차례 검토하고 권 의원실과 정기적으로 회의를 했다. 8개월 준비 끝에 지난해 1월 국회의원 41명이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을 고치는 게 이렇게 힘든 건 줄 몰랐다고 제가 투덜거리니 권 의원이 100번 제안하고 100번 발의하면 된다고 응원해줬어요.” 오 대표는 영화와 공연 보기를 좋아해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고, 1999년부터 영화계와 공연계에서 기획 일을 시작했다. 2010년부터 2년간 공익 분야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희망제작소의 공익 기획자 양성 프로그램(소셜 디자이너 스쿨)을 수강했다. 작은 결혼식, 친환경 결혼식 등 ‘우리가 주인이 되는 결혼’이라는 기획으로 소셜벤처경연대회에서 상도 받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생필품을 모아 판자촌에 기부하는 캠페인을 열기도 했다. 공연기획사를 그만두고 푸르메재단 모금팀장으로 자리를 옮겨 그동안 넓혀온 네트워크를 활용해 연예인들과 기부 공연, 뮤지컬 등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하지만 비영리기관의 업무 방식이 자신과 잘 맞지 않아 오 대표는 10개월 만에 독립을 택했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 기획에 참여했다. 50대 독거남들이 희망을 찾는 ‘나비남 영화제’, 영화로 타인과 소통하고 위로하는 ‘공감영화제’, 입체낭독극 <뛰뛰빵빵> <어쩌면> <웃는 동안>, 연극 <가족병: 혼자라도 괜찮을까?> 등이다. 이런 활동을 이끄는 명랑캠페인은 문화예술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예비)사회적기업이다. 연극, 콘서트,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건강한 사회변화 캠페인을 시도한다. 2015년 오 대표가 주식회사로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다. “제 경험을 살려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사회를 향해 문제를 제기하며 변화를 끌어내는 데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대부분의 활동이 인식 개선을 최우선 목표로 삼다보니 대개 무료로 이뤄진다. 지원사업이 아니면 비용을 부담하며 계속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미모되니깐>도 회당 400만~500만원의 비용이 든다. 규모를 줄여 작은 뮤직토크쇼로 바꿔 운영했다. “사업비의 한계도 있고 해서 ‘찾아가는 공연’ 형식으로 대안을 찾았어요.” 미혼 엄마들의 독백을 담은 뮤직토크쇼 <母(모)놀로그>는 지난해 하반기에 5회 공연했다. 오 대표는 “이제야 세상 물정을 알아가고 있어요”라고 한다. 사회적기업 대표를 하면서 돈 걱정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욕도 먹으며 산단다. 그러면서 내공도 생기고 정신력도 강해지고 있다고. “간혹 미혼모들 가운데 자신들 이용해 돈 번다고 대놓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처음에는 충격을 받아 다른 단체 대표를 찾아가 상담했더니 ‘욕하는 몇 사람 때문에 이 일 안 할 거냐?’고 되물어, 알 수 없는 누군가를 돕는 거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그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꿈은 예술의 전당 같은 대형 공연장의 사장이 되는 거였단다. 이제는 사회적기업을 하는 게 너무 잘한 일인 것 같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는 일이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과 즐겁게 오래 해보고 싶어요.”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