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별거 초기엔 씩씩하게 지냈는데
소유욕 강한 엄마·남편 때문에 우울
초라해도 괜찮아요, 우리 삶 원래 남루해
나쁜 사람에게서 자기를 보호하는 법 배워야
Q저는 50대 진입을 바로 앞에 둔 여성으로, 외국에서 살고 있으며 결혼 19주년을 앞두고 남편과 1년 전 별거해 이혼소송 중입니다. 별거를 막 시작했을 때는 생각보다 씩씩하고 긍정적으로 잘 지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제 삶이 너무 남루한 것 같아 기운이 빠지고 틈만 나면 우울 모드로 빠집니다.
저희 엄마는 제가 어릴 때는 좀 차가운 엄마였는데, 제가 어른이 되면서 그리고 최근엔 더욱 저에게 의존하십니다. 5년 전 제가 외국으로 나올 때는 ‘부모를 내던져버렸다’는 표현을 쓰며 원망과 서운함을 강하게 비치신 것은 물론, 제 결혼 때 찍은 가족사진을 저 보는 데서 버리셨지요. 가끔 전화로 엄마가 아버지 험담을 하면서 저에게 이만큼 컸으면 아버지를 야단치고 바로잡아줄 수도 있어야 하지 않냐, 나는 고독사하게 될 거다, 다들 딸이 좋다던데 나는 사는 게 재미가 없으니 죽고 싶다…. 맨날 이런 말씀만 하니 그립기 전에 기가 빨리는 느낌입니다.
제가 이혼하게 되자 저를 맹비난하다가 나중엔 비수를 꽂으시더군요. 이혼하고 한국에 와야지 부모 버리고 낯선 곳에 끌려갔다가 이혼하고 남아 있고 싶냐, 나중에 네 딸도 이혼할 텐데…. 그때부터 제가 입을 다물기로 하고 연락을 확 줄였습니다. 그랬더니 엄마는 제 코트를 사서 보내셨더군요. 너무 놀라운 가격표를 그냥 붙여서요. 비싼 것을 입으면 기분이 좋아지지 않냐며, 그래서 가격표 그대로 두었다며. 저는 혼자 일해서 아이 둘을 키우는 상황에서 그 기분 내기용 코트값에 입이 벌어져 저 자신이 초라하고 입맛이 쓰더군요.
한편 제 남편은 자기가 진보주의자인 줄 알지만 실은 가부장적인 남자인데요, 이곳에 와서 남편에게 내가 한국에서 지낼 때 시어머니나 남편, 시집 식구에게 존중받지 못해서 행복하지 않았는데, 이제부터는 나도 존중받고 남도 존중하며 살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제 의도와 다르게 시어머니 언급 부분에 격분해서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재산분할까지 치밀하게 정리하고 아이들은 본인이 키우겠다며 저를 압박하던 끝에, 다시는 시어머니를 비방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면 이혼 취소를 하겠다고 해서 각서를 썼더니, 그것을 소리 내어 읽으라고 강요해 읽고 나서 대성통곡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 저는 이혼을 망설이는 것도 아니고 후회하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결단을 내렸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남편에게도 숙여줄 만큼 숙여줬으니 미련 없다 하는 마음이었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독하디독한 남편도, 늘 희생자 코스프레하는 엄마도 결국 저를 본인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자 활용하려는 사람들인 게 분명해 보이면서, 처음의 전의가 사그라지고 지금은 아프고 아파서 제 자아가 한없이 쪼그라든 느낌입니다. 전에는 엄마와 남편은 내게 ‘옳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은 더 나아가 그들은 내게 ‘나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진전되었습니다. 제가 그 두 사람을 오해하고, 저희 엄마 말씀처럼 현재 처지 때문에 예민해진 걸까요? 어떻게 하면 제가 자기연민을 딱 끊고 다시 씩씩하게 살 수 있을까요? 뚜벅이 A이혼은 큰 사건입니다. 가족이 함께했던 그 오랜 시간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고, ‘결혼의 실패’라고 하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경험을 뼈아프게 인정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사는 것이 익숙해진 여성들에게는 더욱더 홀로 서는 삶이란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가득 찬 미래입니다. 그 앞에서 감정의 격변을 겪으며 우울해지는 건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만약 뚜벅이님에게 엄마다운 엄마가 계셨다면 당신을 깊게 안아주면서 힘들 만하다고, 자기연민에 빠져도 괜찮다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이혼을 결심하고 처음엔 씩씩하고 자부심마저 느끼셨다니 어쩌면 그게 더 부자연스러운 감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상실의 경험은 제각기 달라서 누구나 똑같은 감정을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뚜벅이님의 경우라면 분노하고 슬퍼할 만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씩씩하고 긍정적으로 대처하면서 자신을 지키고 싶었나봅니다. 약해지면 이혼하지 못하고 또다시 굴욕적인 삶을 살아야 하니까요. 그 또한 당신에게는 최선이었을 겁니다. 자기연민에 빠져도 괜찮습니다. 우리 삶은 생각보다 초라하고 남루합니다. 그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분주하게 애쓰고 악전고투를 감내하지요. 마치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과장된 감정을 느끼면서 말이지요. 그러다 어느 순간 희망 없는 관계, 가치 없는 관계를 위해 너무 긴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허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 사실을 알아버린 당신 자신을 많이 위로해주세요. 자기연민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힘이 생길 테니까요. 그리고 이제 홀로 서야 할 때입니다. 인간은 대부분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살아갑니다. 평소엔 선한 얼굴을 하다가도 자기 이익 앞에선 순식간에 공격성을 드러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아온 배경 때문에 또는 기질적으로, 주도권을 빼앗거나 힘을 휘두르는 데 몰두합니다. 뚜벅이님의 남편은 주도권 싸움에 몰두했던 사람이고, 어머니는 딸의 삶을 질투하면서 당신을 소유하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우리 자신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고백하자면 과거에 저는 저 자신에 대해 상대를 이해하고 관용을 베푸는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그런 행동에도 관계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이기적인 의도가 깔렸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지요. 어떤 식으로든 자기 이익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민낯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나쁜’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앞으로는 ‘자신의 행복’이라는 이익을 의식적으로 추구해야 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투쟁도 불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홀로서기’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면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blessmr@hanmail.net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박미라 마음칼럼니스트·<천만번 괜찮아><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한편 제 남편은 자기가 진보주의자인 줄 알지만 실은 가부장적인 남자인데요, 이곳에 와서 남편에게 내가 한국에서 지낼 때 시어머니나 남편, 시집 식구에게 존중받지 못해서 행복하지 않았는데, 이제부터는 나도 존중받고 남도 존중하며 살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제 의도와 다르게 시어머니 언급 부분에 격분해서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재산분할까지 치밀하게 정리하고 아이들은 본인이 키우겠다며 저를 압박하던 끝에, 다시는 시어머니를 비방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면 이혼 취소를 하겠다고 해서 각서를 썼더니, 그것을 소리 내어 읽으라고 강요해 읽고 나서 대성통곡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 저는 이혼을 망설이는 것도 아니고 후회하는 것도 아닙니다. 처음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결단을 내렸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남편에게도 숙여줄 만큼 숙여줬으니 미련 없다 하는 마음이었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독하디독한 남편도, 늘 희생자 코스프레하는 엄마도 결국 저를 본인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자 활용하려는 사람들인 게 분명해 보이면서, 처음의 전의가 사그라지고 지금은 아프고 아파서 제 자아가 한없이 쪼그라든 느낌입니다. 전에는 엄마와 남편은 내게 ‘옳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은 더 나아가 그들은 내게 ‘나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진전되었습니다. 제가 그 두 사람을 오해하고, 저희 엄마 말씀처럼 현재 처지 때문에 예민해진 걸까요? 어떻게 하면 제가 자기연민을 딱 끊고 다시 씩씩하게 살 수 있을까요? 뚜벅이 A이혼은 큰 사건입니다. 가족이 함께했던 그 오랜 시간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고, ‘결혼의 실패’라고 하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경험을 뼈아프게 인정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이라는 틀 안에서 사는 것이 익숙해진 여성들에게는 더욱더 홀로 서는 삶이란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가득 찬 미래입니다. 그 앞에서 감정의 격변을 겪으며 우울해지는 건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만약 뚜벅이님에게 엄마다운 엄마가 계셨다면 당신을 깊게 안아주면서 힘들 만하다고, 자기연민에 빠져도 괜찮다고 말해주어야 합니다. 이혼을 결심하고 처음엔 씩씩하고 자부심마저 느끼셨다니 어쩌면 그게 더 부자연스러운 감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상실의 경험은 제각기 달라서 누구나 똑같은 감정을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뚜벅이님의 경우라면 분노하고 슬퍼할 만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씩씩하고 긍정적으로 대처하면서 자신을 지키고 싶었나봅니다. 약해지면 이혼하지 못하고 또다시 굴욕적인 삶을 살아야 하니까요. 그 또한 당신에게는 최선이었을 겁니다. 자기연민에 빠져도 괜찮습니다. 우리 삶은 생각보다 초라하고 남루합니다. 그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분주하게 애쓰고 악전고투를 감내하지요. 마치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과장된 감정을 느끼면서 말이지요. 그러다 어느 순간 희망 없는 관계, 가치 없는 관계를 위해 너무 긴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허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 사실을 알아버린 당신 자신을 많이 위로해주세요. 자기연민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힘이 생길 테니까요. 그리고 이제 홀로 서야 할 때입니다. 인간은 대부분 자기의 이익을 위해 살아갑니다. 평소엔 선한 얼굴을 하다가도 자기 이익 앞에선 순식간에 공격성을 드러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아온 배경 때문에 또는 기질적으로, 주도권을 빼앗거나 힘을 휘두르는 데 몰두합니다. 뚜벅이님의 남편은 주도권 싸움에 몰두했던 사람이고, 어머니는 딸의 삶을 질투하면서 당신을 소유하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우리 자신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고백하자면 과거에 저는 저 자신에 대해 상대를 이해하고 관용을 베푸는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그런 행동에도 관계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이기적인 의도가 깔렸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지요. 어떤 식으로든 자기 이익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민낯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나쁜’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앞으로는 ‘자신의 행복’이라는 이익을 의식적으로 추구해야 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투쟁도 불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홀로서기’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면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blessmr@hanmail.net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박미라 마음칼럼니스트·<천만번 괜찮아><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