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폐지 어르신 지원책, 손수레사업단 ‘눈길’

서울도봉시니어클럽, 8만원어치 이상 수집하면 일정액 지급

등록 : 2018-03-08 15:14 수정 : 2018-03-08 16:03

크게 작게

81살 할머니 월 19만원 지급

손수레사업단에 162명 참여

서울시 70%·도봉구 30% 지원

서울시, 곧 종합대책 발표 계획

강북구, 올 상반기 중 전수조사

지난 2월19일 서울 강북구청 근처 번화가에서 폐지 수집 어르신이 생계 수단인 손수레를 끌고 간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남편이 하던 일을 이어서 하려고 합니다.”

도봉구 방학동에 사는 김명숙(81·가명) 할머니는 지난해 5월 서울도봉시니어클럽의 문을 두드렸다. 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손수레사업단’에 속해 있던 남편이 4월에 세상을 뜨자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남편 일을 잇겠다고 한 것이다. 손수레사업단은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들의 모임으로, 시니어클럽이 2008년부터 운영했다. 김 할머니는 남편이 몸이 아파 폐지를 줍지 못하는 날에는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대신 폐지를 모아온 터였다.


그 뒤 김 할머니는 한 달에 평균 고철 80㎏, 플라스틱 3㎏, 신문 72㎏ 등을 모으고 있다. 돈으로 바꾸면 25만원쯤 된다. 이와 함께 김 할머니는 손수레사업에 참여하는 대가로 한 달에 19만원을 지원받는다. 이율기 도봉시니어클럽 관장은 “손수레사업으로 월평균 45만원 안팎의 소득을 올리면서 김 할머니는 아픈 허리를 주 1회 이상 물리치료를 받게 됐고, 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교육·문화 활동으로 외로움도 많이 떨쳐내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손수레사업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큰 도봉구 노인 162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한 달에 8만원어치 이상 폐지·고철을 수집하면, 김 할머니처럼 19만원을 지원받는다. 이 지원금은 서울시가 70%, 도봉구가 30%를 내 조성한 것으로, 1인당 연간 210만원의 범위 안에서 지급한다.

폐지 수집 노인들의 어려움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원 방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일자리 차원에서 도봉구 손수레사업단을 지원하는 것이 눈에 띈다. 박지영 서울시 인생이모작지원팀장은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9곳에 시니어클럽이 있지만 손수레사업단을 운영하는 곳은 도봉구뿐”이라며 “올해는 다른 자치구의 시니어클럽을 통해 폐지 수집 어르신을 위한 지원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서울시 차원에서 폐지 수집 노인들을 위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은 아직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폐지 수집 어르신은 생계(경제), 안전, 일자리, 주거, 건강 등 노인정책의 여러 영역에 겹쳐 있는 만큼 종합대책 필요성에 공감하고 방안을 마련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서울시는 종합대책 마련을 위해 지난해 9월 한 달 동안 25개 자치구의 재활용품 수집업체를 방문해 실태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모두 2417명의 폐지 줍는 노인들을 조사한 결과, 10명 가운데 4명꼴인 951명(39.4%)이 80살을 넘어 고령화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폐지 수집 노인 대다수(82.3%)가 ‘경제적 어려움’을 폐지 수집의 이유로 꼽았으나, 정작 폐지를 팔아 버는 돈이 ‘10만원 미만’인 경우가 51.9%(1254명)나 됐다. ‘5만원 미만’인 사람도 695명(28.8%)이었다. 세 명 가운데 한 명꼴인 35.2%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또는 차상위계층이었으며, 여성의 비율이 남성의 두 배였다.

폐지 수집 노인들의 실태를 연구해온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소준철 연구원은 “폐지 수집 노인들에게 개별적·개인적 차원의 지원보다는 경로당이나 복지관 같은 노인 집단을 통한 지원이 필요하다. 접근 방식도 복지 차원뿐 아니라 폐기물(자원재활용), 일자리 등의 산업정책과 연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북구와 도봉구는 폐지 수집 노인 지원 조례를 제정하는 등 서울 자치구 중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다.

강북구는 2015년 11월 ‘재활용품수집인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2016년 10월 폐지 수집 노인 실태조사를 하고, 야광띠 등 안전용품 210벌을 지급했다. 강북구는 올 상반기에 폐지 수집 노인을 전수조사해 여름에는 얼음조끼와 안전조끼 등의 물품을 추가로 지급할 예정이다.

도봉구는 폐지, 고철 등을 수집해 생계를 꾸려가는 저소득층을 제도적으로 돕기 위해 지난해 12월 ‘서울특별시 도봉구 재활용 가능자원 수집인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폐지 모으는 노인을 ‘재활용 가능자원 수집인’이라 이름 붙인 대목이 눈길을 끈다.

조례의 주요 내용은 △재활용 가능자원 수집인 지원 계획을 해마다 수립하고 시행할 것 △교통사고 예방·안전·환경정비 등의 교육을 연 1회 이상 의무화할 것 등이다. 지원 대상은 도봉구가 주민등록지이고, 재활용 가능자원을 수집하는 65살 이상의 저소득 어르신과 장애인이다. 교통사고 방지를 위해 야간에도 구분할 수 있는 개인보호 장비, 재활용 가능자원 수집 물품, 동절기 난방비 등을 지원한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조례를 근거로 재활용 가능자원을 수집해 생활하는 어르신과 장애인에게 공적·민간 자원을 연계해 촘촘한 그물망 복지를 펼치겠다”고 밝혔다.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