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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신선한 채소·과일까지 공급”

푸드뱅크 20돌…서울광역푸드뱅크센터 김준혁 센터장

등록 : 2018-04-1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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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 때 시범사업으로 시작

편의점 형태 ‘푸드마켓’ 전국 최초

지난해 기부 물품 535억원어치 확보

전문위생사 고용해 신선물품도 공급

지난 3월29일 도봉구 서울광역푸드뱅크센터의 물류센터에서 김준혁 센터장이 푸드뱅크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이 물류센터는 최고 500톤까지 보관할 수 있다.

외환위기(IMF 구제금융 사태)가 한창이던 1998년 1월 서울·부산·대구·과천에서 결식 계층에게 음식을 나누는 푸드뱅크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20년 동안 성장을 거듭한 서울시 푸드뱅크는 지난해 535억원어치의 기부 물품을 확보했고, 31만9112가구가 푸드뱅크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서울광역푸드뱅크센터 김준혁 센터장이 처음 서울시 푸드뱅크 업무를 맡았던 2005년만 해도 푸드뱅크의 현실은 열악했다. “그때 서울시 푸드뱅크 담당자가 저 하나였어요. 후원 요청하러 방문한 기업에서 잡상인 취급에, 문전박대도 많이 당했습니다. 푸드뱅크를 남는 음식 동냥하는 것으로 여겼던 거지요.” 자치구마다 한 명밖에 없는 담당자는 물건 받아 나르느라 택배 기사 수준의 노동강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007년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호주 푸드뱅크를 시찰한 김 센터장은 “각 자치구 담당자의 힘을 덜어주는 광역 단위의 물류센터가 서울에도 필요함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2009년 전국 최초로 기부 물품 물류센터인 서울광역푸드뱅크센터를 열어 각 자치구 푸드뱅크에 물품을 효율적으로 나눠주는 체계를 마련했다. 부담을 덜게 된 자치구 담당자들이 향토기업, 부녀회, 종교단체 등 지역의 자원을 끌어들이는 데 힘을 쏟게 되면서 실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김 센터장은 “자치구와 겹치지 않도록 서울광역푸드뱅크센터는 기업의 대량 기부에 집중하고 있다”며 “식품회사인 대상과 씨제이(CJ), 유통업체인 이마트는 푸드뱅크 초기부터 꾸준히 후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기부 방식도 진화하고 있다. 회사는 원료와 설비를 후원하고,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지 않는 초과 근무로 기부할 제품을 만드는 ‘생산 기부’가 대표적이다. 수도권 지역의 논을 임대해 벼를 재배한 뒤 수확한 쌀을 기부하는 임직원도 있다. 유통업체는 주 고객인 주부에게서 봉사자를 모집해 푸드뱅크에 기부할 제품을 재포장하고 있다.


자치구마다 있는 ‘푸드마켓’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는 2003년 편의점 형태의 푸드마켓을 전국 최초로 시작했다. 일방적인 기부자 중심의 지원을 벗어나 이용자가 필요한 물건을 직접 고르는 푸드마켓은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양천·영등포·마포·성북구 등은 푸드마켓 2호점을 열었거나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은 자치구마다 기부량이나 운영 방식에서 편차가 있습니다. 기부 자원이 많지 않은 강북구는 다른 지역(자치구)까지 활동 범위를 넓혀 기부 자원을 확보하더군요. 자치구의 관심과 담당자의 역량이 중요합니다.”

자치구의 푸드마켓과 별개로 서울광역푸드뱅크센터는 저소득층에 필요한 각종 식품을 트럭(탑차)에 싣고 현장에 찾아가는 ‘희망마차’와 ‘이동푸드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5톤짜리 트럭 내부에 매장을 만들어놓은 이동푸드마켓은 움직이는 매장이다. 이동푸드마켓이 멈추는 곳에는 재능기부 공연, 법률 상담, 무료 진료 등 동네 화합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동네잔치를 벌인다. 상대적으로 기동성이 뛰어난 1톤짜리 희망마차는 취약계층을 찾아 골목을 누비며 다닌다.

서울광역푸드뱅크센터는 앞으로는 실직, 질병, 사고 등으로 갑작스러운 위기에 처한 세대를 위한 ‘긴급위기가정 지원사업’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푸드뱅크의 가치는 기동력 있는 전달체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지원은 아무리 잘 갖춰져도 한계가 있으니 민간이 그 틈을 메워야 합니다. 우리는 뱅크잖아요. 항상 자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골든타임 안에 식료품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푸드마켓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물품은 쌀이다. “제가 푸드뱅크를 담당한 2005년부터 쌀이 계속 1위입니다. 많이 남아돈다고 하지만 저소득층은 여전히 쌀이 가장 필요한 것 같아요. 쌀 다음으로는 라면, 국수, 고추장, 식용유 등 기본적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가공식품에 지나치게 치우친 취약계층은 채소, 과일 등 신선식품이 꼭 필요한데, 지금까지는 위생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커서 기부하고 싶다는 곳이 있어도 받지 못했어요. 만에 하나 잘못돼서 사고가 나면 푸드뱅크에 큰 타격이니까요.”

4월부터 서울광역푸드뱅크센터는 전국 광역푸드뱅크 가운데 처음으로 전문 위생사를 채용해 신선식품도 공급할 예정이다. 유통 과정에서 적정 온도 등 위생관리 체계를 본격적으로 구축해 기부 식품의 위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위생사들은 각 자치구를 돌며 기부 식품에 대해 샘플 검사를 하고, 위생관리 교육과 매뉴얼(설명서) 제작 등을 하고 있다. “이제 20주년을 맞이한 만큼 서울시 푸드뱅크가 양적인 성장을 넘어 질적인 발전을 꾀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안전한 위생관리 체계를 마련해 건강하고 신선한 식품을 늘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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