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오랜만에 만난 선배의 고민 토로
나를 잘 아느냐는 아내의 질문
5시에 일어나 부산 떨고 코골이까지
잠은 충분히 자도록 배려해야
“당신은 당신과 함께 사는 아내가 누구인지 잘 아세요?”
여자들은 이처럼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던져서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만약 아내에게 이런 질문을 들었다면 남편들은 바짝 긴장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배우자에 대한 불만, 원망, 미움 같은 감정이 잔뜩 묻어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는 만나자마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미치겠어. 와이프가 느닷없이 자기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고 하더니 벌써 며칠째 아무 말도 않고 있거든. 뭐가 불만인지 영문을 알아야 해명을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남북한도 화해한다는데 우리 집은 요즘 거꾸로 냉전 상태야. 뭐가 문제일까?”
자기는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아 더욱 답답하다고 했다. 확실히 그는 행실이 불량한 남편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인생 사전에는 ‘일탈’이란 단어가 빠져 있다고 할 정도로 모범적인 사람이다. 단 한 가지 짐작되는 구석만 빼고는 말이다. 그 선배에게 살짝 물었다. “요즘도 새벽 일찍 일어나세요? 오전 시간은 어떻게 보내세요?”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지. 평생의 습관인걸. 그런데 퇴직하고 나니까 오전 시간이 그렇게 길 수가 없어. 점심은 약속이 있어 외출하는데, 그사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통스러울 때가 많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일단 커피머신을 들여놓았어. 새벽에 커피 만드는 게 재미있어서 와이프에게도 마셔보라고 했더니 짜증을 내는 거야. 왜 남의 성의를 무시하고 짜증부터 내는지 몰라.” 알고 보니 그의 부인은 올빼미형, 텔레비전에서 드라마를 보느라 밤늦게 잠자리에 든다. 반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무척 힘들어한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은 새벽형 인간과 올빼미형 인간 사이의 불가피한 라이프스타일의 충돌일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남편이 출근하고 자녀가 등교하고 나면 온전히 부인만의 공간과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공간과 시간을 비집고 남편이 들어온 것이다. 퇴직은 이처럼 본인뿐 아니라 집 안의 생태계까지 바꿔놓는다. 수십 년 동안 보이지 않게 유지되어오던 질서가 무너져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선배에게 조심스레 한 가지 더 물었다. “혹시 주무실 때 코골이 많이 하세요?” “그런가봐.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나이가 들면서 심해진 모양이야. 아, 그래서 그런가? 최근에 나보고 다른 방에서 자라고 하더라고.” 배우자의 심한 코골이에 새벽부터 커피를 만드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굉음, 양치질하는 동안 욕실에서 들려오는 온갖 기이한 소리까지 실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불쾌함이 길어지면 견디기 힘들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수면 방해는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고 더 나아가 면역력 활동을 약화시킨다. 연인은 힘들거나 불쾌하면 헤어지지만 부부는 참고 산다. 그게 차이다. 전통적으로 성공한 남자들일수록 새벽형 인간이 많다. 조찬 모임이란 일찍 일어나는 ‘얼리버드’들의 모임이다. 반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야행성’이 많다. 시이오(CEO·최고경영자)로 재직하는 동안 엔터테인먼트 쪽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가 있었는데, 오전에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처음에 황당했지만 화급한 일이 아니라면 오전에는 서로 연락하지 않는 것이 그쪽 업계의 불문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연과 녹화, 방송 등 밤에 업무가 이뤄지는 탓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으르다’는 부정적 인상은 새벽형 인간의 편견이었다. 잠과의 전쟁은 천재들도 피해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르네상스 시대 최고 스타 미켈란젤로는 작업하는 동안 신들린 사람처럼 일하다가 옷 입은 채 잠자리에 들곤 했다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만능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우니베르살리스’라 알려져 있는데 매우 특이한 수면 방식으로도 유명하다. 4시간마다 20분씩, 모두 6차례 짧은 잠을 자는 분할 수면 사이클이다. 6차례를 모두 합한다고 해도 하루 2시간에 불과한 극단적으로 짧은 수면 시간이지만, 워낙 건강했던 탓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천재가 아니다. 잠을 잘 자야 한다. 유심히 살펴보면 퇴직 후 새벽이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새벽형 인간들이다. 일찍 출근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직장에서 환영받지만 때로는 주변을 피곤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새벽 시간이면 어김없이 감동받은 글이라며 메시지를 전하는 분들은 대부분 성실한 인간이다. 멋진 글이라 하더라도 새벽 시간에 다른 사람의 잠을 깨게 해서는 곤란하다. 내가 깨어 있으니 다른 이들도 깨어 있어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많은 남성은 사회생활을 통해 경쟁과 효율에 최적화되어 있다. 가족을 위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가정은 기업이 아니다. 효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려와 사랑이다. 만약 가정에서까지 효율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면 가족은 숨이 콱콱 막힐 것이다. 취향의 독재라 생각할 수도 있다.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배우자의 생체리듬을 고려하지 않고 내 스타일을 강요해서는 곤란하다. 인생의 모범 답안이 가끔 틀릴 때도 있는 법이다. ‘나를 아느냐’고 묻는 것은 바로 그 답안지를 다시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이제는 모범생이라는 이름의 넥타이를 조금씩 풀어보면 어떨까. 함께 산다고 해서 취향까지 같은 것은 아닐 테니까. 가까울수록 나와 다름을 더 존중해줘야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ㅣ저서 『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자기는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아 더욱 답답하다고 했다. 확실히 그는 행실이 불량한 남편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인생 사전에는 ‘일탈’이란 단어가 빠져 있다고 할 정도로 모범적인 사람이다. 단 한 가지 짐작되는 구석만 빼고는 말이다. 그 선배에게 살짝 물었다. “요즘도 새벽 일찍 일어나세요? 오전 시간은 어떻게 보내세요?”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지. 평생의 습관인걸. 그런데 퇴직하고 나니까 오전 시간이 그렇게 길 수가 없어. 점심은 약속이 있어 외출하는데, 그사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통스러울 때가 많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일단 커피머신을 들여놓았어. 새벽에 커피 만드는 게 재미있어서 와이프에게도 마셔보라고 했더니 짜증을 내는 거야. 왜 남의 성의를 무시하고 짜증부터 내는지 몰라.” 알고 보니 그의 부인은 올빼미형, 텔레비전에서 드라마를 보느라 밤늦게 잠자리에 든다. 반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을 무척 힘들어한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은 새벽형 인간과 올빼미형 인간 사이의 불가피한 라이프스타일의 충돌일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남편이 출근하고 자녀가 등교하고 나면 온전히 부인만의 공간과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공간과 시간을 비집고 남편이 들어온 것이다. 퇴직은 이처럼 본인뿐 아니라 집 안의 생태계까지 바꿔놓는다. 수십 년 동안 보이지 않게 유지되어오던 질서가 무너져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선배에게 조심스레 한 가지 더 물었다. “혹시 주무실 때 코골이 많이 하세요?” “그런가봐.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나이가 들면서 심해진 모양이야. 아, 그래서 그런가? 최근에 나보고 다른 방에서 자라고 하더라고.” 배우자의 심한 코골이에 새벽부터 커피를 만드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굉음, 양치질하는 동안 욕실에서 들려오는 온갖 기이한 소리까지 실로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불쾌함이 길어지면 견디기 힘들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수면 방해는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고 더 나아가 면역력 활동을 약화시킨다. 연인은 힘들거나 불쾌하면 헤어지지만 부부는 참고 산다. 그게 차이다. 전통적으로 성공한 남자들일수록 새벽형 인간이 많다. 조찬 모임이란 일찍 일어나는 ‘얼리버드’들의 모임이다. 반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야행성’이 많다. 시이오(CEO·최고경영자)로 재직하는 동안 엔터테인먼트 쪽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가 있었는데, 오전에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였다. 처음에 황당했지만 화급한 일이 아니라면 오전에는 서로 연락하지 않는 것이 그쪽 업계의 불문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연과 녹화, 방송 등 밤에 업무가 이뤄지는 탓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으르다’는 부정적 인상은 새벽형 인간의 편견이었다. 잠과의 전쟁은 천재들도 피해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르네상스 시대 최고 스타 미켈란젤로는 작업하는 동안 신들린 사람처럼 일하다가 옷 입은 채 잠자리에 들곤 했다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만능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우니베르살리스’라 알려져 있는데 매우 특이한 수면 방식으로도 유명하다. 4시간마다 20분씩, 모두 6차례 짧은 잠을 자는 분할 수면 사이클이다. 6차례를 모두 합한다고 해도 하루 2시간에 불과한 극단적으로 짧은 수면 시간이지만, 워낙 건강했던 탓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천재가 아니다. 잠을 잘 자야 한다. 유심히 살펴보면 퇴직 후 새벽이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새벽형 인간들이다. 일찍 출근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직장에서 환영받지만 때로는 주변을 피곤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새벽 시간이면 어김없이 감동받은 글이라며 메시지를 전하는 분들은 대부분 성실한 인간이다. 멋진 글이라 하더라도 새벽 시간에 다른 사람의 잠을 깨게 해서는 곤란하다. 내가 깨어 있으니 다른 이들도 깨어 있어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많은 남성은 사회생활을 통해 경쟁과 효율에 최적화되어 있다. 가족을 위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가정은 기업이 아니다. 효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려와 사랑이다. 만약 가정에서까지 효율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면 가족은 숨이 콱콱 막힐 것이다. 취향의 독재라 생각할 수도 있다.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배우자의 생체리듬을 고려하지 않고 내 스타일을 강요해서는 곤란하다. 인생의 모범 답안이 가끔 틀릴 때도 있는 법이다. ‘나를 아느냐’고 묻는 것은 바로 그 답안지를 다시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이제는 모범생이라는 이름의 넥타이를 조금씩 풀어보면 어떨까. 함께 산다고 해서 취향까지 같은 것은 아닐 테니까. 가까울수록 나와 다름을 더 존중해줘야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ㅣ저서 『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