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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 취임 때 산 정장 구두
떠날 때 직원들이 선사한 캐주얼화
일주일 간격으로 망가졌지만
지금의 나로 인도해주었기에…
쇼핑에 관한 한 남자들은 극단적으로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쇼핑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쇼핑 마니아’와 정반대로 물건 고르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쇼핑 포비아’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백화점 같은 곳에 가는 것이 불편하고 쇼핑 시간이 길어지면 짜증이 나는 유형이다. 요즘 젊은 남자들은 다르지만 내 세대 남자들은 대체로 쇼핑에 서투르고 자기가 입는 양복이나 셔츠, 넥타이조차도 식구가 골라준 경우가 많다. 그렇게 얘기하면 쇼핑 마니아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는다.
“쇼핑이 얼마나 좋은데 그래요? 돈이 없어서 그렇지 쇼핑은 만병통치약이에요. 백화점이나 마음에 드는 상점에 가면 그야말로 엔도르핀이 팍팍 솟거든요.”
쇼핑 포비아족에 속한 내가 그토록 가기 싫어하는 백화점에 가야 했다. 신발 때문이다. 오랫동안 충실한 내 발 노릇을 해주었던 신발 두 켤레가 일주일 간격으로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어떻게든 다시 살려보려고 구두 수선공에게 들고 갔으나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많이 정들었던 모양이죠? 요즘 비싸지 않은 신발 좋은 것 많던데, 새것 장만하시죠, 뭐!” 그 두 켤레 말고도 다른 신발이 없던 것은 아니다. 구두 좋아하는 여성들처럼 신발장이 구두로 가득 찬 것은 아니지만, 종류나 목적이 다른 몇 켤레가 내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신발이라고 다 같은 신발은 아니다. 그 두 켤레는 내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한 켤레는 신사화로 내가 대표이사로 취임할 때 산 것이고, 다른 한 켤레는 캐주얼화로 대표이사 임기를 마칠 때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작별의 선물로 준 것이다. 신사화가 한 조직의 책임자가 된다는 책임감과 열정을 말한다면, 캐주얼화는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의미했다. 전자는 나의 화려했던 시절을 지켜보았고, 후자는 나를 출구전략으로 이끌었다. 캐주얼 신발은 직원들이 배낭과 함께 주었던 특별한 선물이기도 하다. 환송회 자리에서 들었던 인사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으니 이제 이 신발을 신고 넓은 세상을 여행하세요. 그리고 이 배낭에 새로운 에너지와 이야기를 가득 넣어와 저희에게 들려주세요.” 마치 그리스의 신들처럼 그 신발은 앞으로 다가올 운명을 예고하고 있었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해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과감히 지금의 길로 인도한 것도 바로 그 신발이다. 당시 나에게도 다른 기회나 제안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캐주얼화를 신고 다닐 분위기의 직장들은 아니었다. 반짝반짝 광택이 나는 정장 구두는 엄격한 조직 문화를 의미한다. 반면 캐주얼화나 운동화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직업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내가 정장 구두를 다시 신어야 하는 방향으로 행선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두 켤레의 신발은 일부러 내 발길을 멈추게 하거나 가지 못하게 막았다. 나지막이 이렇게 조언하는 듯했다. “30년 이상 조직생활을 했으면 이제는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해도 되지 않을까?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너만의 일을 해보면 어떨까? 맞지 않는 옷은 편치 않고, 불편한 신발을 신으면 멀리 가기 힘들어. 한 번뿐인 인생, 힘들어도 우리가 네 옆에 있어줄 테니 두려워 말고 용기를 내봐. 이제는 너만의 길을 달려가봐!” 그것은 일본어로 ‘이키가이’(삶의 보람)를 말하는 것이었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인생을 의미한다. 습관처럼 날마다 출근했다가 때가 되면 퇴근하는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나라는 주문이었다. 결국 나는 글쓰고 강연하는 ‘글로생활자’의 인생을 선택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생활도 일정하지 않고 시시각각 심한 좌절감도 찾아왔다. 무례한 사람들을 만나면 견디기 힘든 모욕감에 마음은 발효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나는 신발들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날카로운 돌부리를 차서 그들의 얼굴에 상처를 내고, 술잔에 남은 술을 쏟거나 오물을 묻히기도 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신발은 곧 그 사람을 말한다. 실내화, 운동화, 교련화, 학생화, 슬리퍼, 군화, 장화, 정장 구두, 등산화, 골프신발, 축구화, 방한화, 병원용 신발에 이르기까지 신발의 모양과 용도도 다양하다. 정성 들여 광내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먼지가 수북한 채로 그냥 다니는 사람도 없지 않다. 신발을 보면 그 사람과 직업을 알 수 있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가격에 민감하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격이 아니라 그 물건의 가치다. 나는 이제 그 가치를 말한다. 강연자로서 처음 청중들 앞에 서야 했을 때, 주저하는 내 발길을 용기를 내라며 이끌어준 것도 그들이었다. 가끔 내 신발과 배낭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 비밀을 지켜본 친구들이기에 가능한 스토리 텔링이었다. 새로운 신발을 샀지만, 두 켤레의 옛 친구들은 여전히 내 곁에 있다. 이제 나는 알 것 같다. 정든다는 것이 반드시 사람 사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래 키우던 반려견이나 고양이를 쉽게 떠나보낼 수 없듯이 내 곁을 지키던 소중한 물건과의 인연 역시 쉽게 뗄 수는 없다. 그러니 어찌 함부로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겠는가. 그들이 옆에 있는 한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뜨게 된다. 어제의 지겨운 반복이 아니라, 두근거리는 새벽을 맞고 싶은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ㅣ저서 『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많이 정들었던 모양이죠? 요즘 비싸지 않은 신발 좋은 것 많던데, 새것 장만하시죠, 뭐!” 그 두 켤레 말고도 다른 신발이 없던 것은 아니다. 구두 좋아하는 여성들처럼 신발장이 구두로 가득 찬 것은 아니지만, 종류나 목적이 다른 몇 켤레가 내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신발이라고 다 같은 신발은 아니다. 그 두 켤레는 내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한 켤레는 신사화로 내가 대표이사로 취임할 때 산 것이고, 다른 한 켤레는 캐주얼화로 대표이사 임기를 마칠 때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작별의 선물로 준 것이다. 신사화가 한 조직의 책임자가 된다는 책임감과 열정을 말한다면, 캐주얼화는 퇴직 후 제2의 인생을 의미했다. 전자는 나의 화려했던 시절을 지켜보았고, 후자는 나를 출구전략으로 이끌었다. 캐주얼 신발은 직원들이 배낭과 함께 주었던 특별한 선물이기도 하다. 환송회 자리에서 들었던 인사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으니 이제 이 신발을 신고 넓은 세상을 여행하세요. 그리고 이 배낭에 새로운 에너지와 이야기를 가득 넣어와 저희에게 들려주세요.” 마치 그리스의 신들처럼 그 신발은 앞으로 다가올 운명을 예고하고 있었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해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과감히 지금의 길로 인도한 것도 바로 그 신발이다. 당시 나에게도 다른 기회나 제안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캐주얼화를 신고 다닐 분위기의 직장들은 아니었다. 반짝반짝 광택이 나는 정장 구두는 엄격한 조직 문화를 의미한다. 반면 캐주얼화나 운동화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직업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내가 정장 구두를 다시 신어야 하는 방향으로 행선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두 켤레의 신발은 일부러 내 발길을 멈추게 하거나 가지 못하게 막았다. 나지막이 이렇게 조언하는 듯했다. “30년 이상 조직생활을 했으면 이제는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해도 되지 않을까?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너만의 일을 해보면 어떨까? 맞지 않는 옷은 편치 않고, 불편한 신발을 신으면 멀리 가기 힘들어. 한 번뿐인 인생, 힘들어도 우리가 네 옆에 있어줄 테니 두려워 말고 용기를 내봐. 이제는 너만의 길을 달려가봐!” 그것은 일본어로 ‘이키가이’(삶의 보람)를 말하는 것이었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인생을 의미한다. 습관처럼 날마다 출근했다가 때가 되면 퇴근하는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나라는 주문이었다. 결국 나는 글쓰고 강연하는 ‘글로생활자’의 인생을 선택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생활도 일정하지 않고 시시각각 심한 좌절감도 찾아왔다. 무례한 사람들을 만나면 견디기 힘든 모욕감에 마음은 발효하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나는 신발들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날카로운 돌부리를 차서 그들의 얼굴에 상처를 내고, 술잔에 남은 술을 쏟거나 오물을 묻히기도 하였다. 어떤 의미에서 신발은 곧 그 사람을 말한다. 실내화, 운동화, 교련화, 학생화, 슬리퍼, 군화, 장화, 정장 구두, 등산화, 골프신발, 축구화, 방한화, 병원용 신발에 이르기까지 신발의 모양과 용도도 다양하다. 정성 들여 광내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먼지가 수북한 채로 그냥 다니는 사람도 없지 않다. 신발을 보면 그 사람과 직업을 알 수 있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가격에 민감하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격이 아니라 그 물건의 가치다. 나는 이제 그 가치를 말한다. 강연자로서 처음 청중들 앞에 서야 했을 때, 주저하는 내 발길을 용기를 내라며 이끌어준 것도 그들이었다. 가끔 내 신발과 배낭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 비밀을 지켜본 친구들이기에 가능한 스토리 텔링이었다. 새로운 신발을 샀지만, 두 켤레의 옛 친구들은 여전히 내 곁에 있다. 이제 나는 알 것 같다. 정든다는 것이 반드시 사람 사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래 키우던 반려견이나 고양이를 쉽게 떠나보낼 수 없듯이 내 곁을 지키던 소중한 물건과의 인연 역시 쉽게 뗄 수는 없다. 그러니 어찌 함부로 쓰레기통에 버릴 수 있겠는가. 그들이 옆에 있는 한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뜨게 된다. 어제의 지겨운 반복이 아니라, 두근거리는 새벽을 맞고 싶은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ㅣ저서 『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