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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급자 출신 분식점 사장님 “잘 먹었다고 하면 힘나요”

‘밥맛나는 세상’ 금천점 대표 이경희씨

등록 : 2018-07-2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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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지역자활사업단에서 일하다

센터 권유로 지난해 분식점 창업

든든한 후원 덕분에 용기 내 도전

가게 운영 힘들지만 꿋꿋이 버텨

지난 20일 금천구 시흥동 ‘밥맛나는 세상 금천점‘ 대표 이경희씨가 갓 만든 숙주게살볶음밥을 손님에게 내놓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ungil@hani.co.kr

금천구 시흥동 ‘밥맛나는 세상 금천점’의 대표 이경희(47)씨는 자활기업의 ‘사장님’이다. 2년 전만 해도 그는 자활사업의 노동자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다. 금천지역자활센터(자활센터)의 외식자활사업단 ‘맛드림사업단’에서 일했다.

2015년 금천구의 복지 담당자가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자활사업단의 일자리를 소개해줬다. 틈틈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지내던 그에게는 고마운 기회였다. 재미있게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지난해 자활센터에서 창업을 권했다. 남편은 동주민센터의 자활 일자리에서 일하고, 아이들은 커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어 좀더 일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선뜻 응했다. 첫 프랜차이즈 형태 외식 자활기업의 대표가 되었다.

자활사업은 1996년 보건복지부 시범사업으로 시작했다. 2000년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의 시행으로 저소득층(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의 자립·자활을 돕기 위해 본격화한 사회복지사업이다. 지역자활센터는 노동 능력이 있는 취약계층에게 직업훈련과 일자리를 지원한다. 교육과 훈련 등으로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줘 빈곤에서 벗어나는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현재 서울에는 지역자활센터 30곳이 있다. 청소·간병·급식·집수리·택배 등 다양한 자활사업단이 운영된다. 자활사업단은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함께 3년 정도 사업해서 창업 자금을 모아, 매출 성과가 어느 정도 나오면 희망하는 노동자들에게 자활기업으로 독립할 기회를 준다.

금천지역자활센터의 맛드림사업단에는 2012년부터 10명이 참가해 시흥동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면서 교육과 훈련을 받고 있었다. 이씨도 조리기술과 식당 운영을 배웠다. “요리에 특별히 관심이 있거나 잘하지는 않았는데 여럿이 같이 하다 보니 재미있었어요. 조리 솜씨도 늘었죠.”

이씨가 창업에 마음을 낼 수 있었던 데는 든든한 후원군 덕분이다. “혼자라면 절대 엄두를 못 냈어요. 센터가 창업을 지원해주고, 창업지원금도 있고, 외식 전문업체가 도와준다고 하니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이 따랐죠.” 사업단에서 창업지원금 4천여만원을 받아 인테리어, 주방설비와 용품 등을 갖췄다. 가게 보증금은 자활기금에서 연 1%로 빌렸다. 개업 뒤 6개월 동안은 인건비 지원(1인 하루 4만2210원)을 받는다. 구의 심사를 받아 6개월 더 받을 수 있다.

메뉴 개발과 식당 운영에 대해서는 소디프비앤에프(B&F)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소디프는 27년 된 육가공 식품회사다. 2011년부터 소규모 영세음식점 프랜차이즈 ‘밥맛나는 세상’을 운영해 전국에 60개 매장이 있다. 2016년 서울광역자활센터와 업무 협약을 맺고 외식 자활사업의 활성화 돕기에 나섰다. 이씨도 창업 전 소디프에서 한 달 동안 교육받았다. 조리법과 매장 운영법을 배우고 시험도 쳤다.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응대하는 일에 두려움이 있었는데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드디어 지난해 1월 이씨는 분식점을 열었다. 맛드림사업단이 운영하던 음식점을 깔끔한 인테리어로 새롭게 단장했다. 메뉴 콘셉트도 한식, 일식, 동남아식, 양식으로 분류해 여러 나라의 간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김밥분식점으로 잡았다. 2천~3천원대의 김밥부터 7천~8천원대의 일품요리까지 음식이 다양하다. 이씨와 직원 한 명이 모든 일을 꾸려왔다. “소디프가 메뉴 개발을 지원해줘 맛 내기가 훨씬 수월했어요. 메뉴가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었죠. 소디프 직원이 자주 들러 식당 운영을 살펴주니 도움이 많이 돼요.”

사장님이 되었지만, 그의 수입은 아직 사업단에서 받았던 월급과 비슷하다. 매출이 예상만큼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는 목표 매출액의 70% 수준인 하루 30만원 정도다. “홍보도 하고 포장, 배달에도 좀더 신경을 쓰려 해요.”

그래도 이씨가 앞서 나가준 덕분에 서울광역자활센터와 소디프가 지난해 외식 자활기업 공동브랜드 ‘함께밥상’을 만들었다. 이달 도봉지역자활센터의 외식 자활사업단 ‘함께밥상’이 문을 열어 운영에 들어갔다.

자기 가게를 운영하는 일은 예상보다 더 힘들었다. 지난 20개월 내내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고, 일요일도 나와 냉장고와 바닥 청소를 하고 식자재 주문할 것들을 챙겼다. 함께 일하던 직원이 손목이 아파 당분간 혼자 가게를 꾸려야 해서 걱정이다. “집에 가면 축 늘어져요. 남편은 너무 힘들면 그만두라고 하지만 그럴 마음은 없어요.”

이씨는 자신이 음식점 사장님이 됐다는 게 버겁고 힘들다가도, 손님들이 잘 먹었다고 해주면 힘이 난다고 한다. 단골들 음식 취향도 기억해 챙겨준다. 일주일에 두어 번 와서 식사하는 이웃 가게 사장님에게는 밥은 적게, 채소는 많이 주면 좋아한다. “내 사업이다 생각하니 더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겨 힘들면서도 더 열심히 일하게 되고, 그래서 더 용기 내려 해요.”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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