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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3일 강북구 삼양동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찍은 ‘옥탑방’의 박원순 시장(사진 맨 왼쪽). 박 시장은 옥탑방을 찾은 시민들과 면담을 한 뒤, 잠시 쉬면서 더위를 쫓느라 부채질을 하고 있다. 박 시장은 <서울&>에 보내온 일기 형식의 옥탑방 생활기에서 “폭염의 역사를 갱신하는 매일, 무더위가 고달프긴 하지만, 시원한 에어컨 아래서 생활했다면 놓쳐버렸을 발견이 매일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111년 만의 무더위’ 속에서 지난 7월22일부터 진행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삼양동 옥탑방 한 달살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뜨겁다. “서울시장 최초로 시도하는 의미 있는 서민 체험”이라는 시각과 함께 “보여주기식 행보”라는 상반된 평가도 있다.
과연 박 시장은 옥탑방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정책을 구상하고 있을까? <서울&>은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박원순 시장이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옥탑방 체험기(1~2면)와 지난 8월1일 박 시장을 면담한 ‘정릉동 청수골 주민대표 박 시장 심야 면담기’(3면)를 함께 싣는다. 편집자
7월22일 일 “서울, 24년 만에 38도 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랬다. 삼양동 옥탑방에 둥지를 튼 날, 뉴스는 온통 한반도를 덮친 기록적 폭염 소식이다. 이사 신고식 한번 톡톡히 치르게 생겼다. 아내도 내심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어제까지도 별말이 없던 아내가 이삿짐 챙기는 걸 돕겠다며 옥탑방 길을 따라나선다. 삼양동 옥탑방으로 가는 언덕길을 오르는데 40년도 더 된 기억이 떠올랐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와 고등학교 재수를 하던 시절, 형과 함께 살았던 신길동 자취방. 비탈길을 한참 올라야 닿을 수 있었던 곳. 내 서울살이의 시작점이다. 앞으로 한 달간 살게 될 삼양동 옥탑방은 그때의 신길동 자취방과는 사뭇 달랐다. 그 시절 신길동 자취방은 1층이었고 볕도 잘 안 드는 자그마한 창 하나가 전부였다. 지금의 삼양동 옥탑방에서는 빛나는 별도 산도 보인다. 서울이 보인다. 오르막을 조금 올라가니 옥탑방 대문 앞에 서 있는 주민들이 보인다. 불볕더위에도 ‘새내기 삼양동 주민’을 맞겠다고 나와 계셨다. 얼른 집 평상으로 모셨다. 원래는 이사 첫날이니 상견례 겸 가볍게 인사만 드리려고 했는데, 인사를 하다보니 사는 얘기가 나오고, 사는 얘기를 나누다보니 이곳 강북살이의 고충이 연이어 터져나온다. 소방차가 다니기는커녕 소화전을 놓을 공간조차 부족한 좁은 길, 아직도 연탄으로 난방하고 있는 노후 주택, 도시가스가 설치되지 않은 산동네, 주민들의 말에서 배어나오는 삶의 애환, 이곳에서 내가 품고 해결해야 할 숙제다.
7월23일 월 옥탑방 이틀째다. 오늘은 마을과 더 가까워지는 날로 정하고 시청 집무실이 아닌 삼양동주민센터로 출근했다. 끼니를 나눠야 정이 깊어지고 속 깊은 얘기가 나오는 법, 점심은 미동경로당에서 하기로 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분들이 바라는 삶은 일하며 사는 삶이다. 어르신들은 한목소리로 사는 날까지 일하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비단 청년에게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에게도 ‘일자리’는 생계를 넘어 인간의 존엄이 걸린 문제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이어 종합복지센터, 구립어린이집을 둘러보고 마을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일률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정해서 적용하다보니 발생하는 한계가 보인다. 서울시의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와 연계해서 추진 중인 방문간호사만 해도 그렇다. 현재 서울시의 424개 행정동에는 일률적으로 한 명의 방문간호사가 근무한다. 그런데 강북구만 하더라도 동별 어르신 인구가 3300명에서 6300명까지 천차만별이다. 방문간호사 정책 하나에도 불균형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독거 가정, 어르신 인구 등 인구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생긴 문제다. 과연 방문간호사 하나의 문제일까. 빅데이터로 지역별 인구 특성부터 다시 분석해봐야겠다. 단번에 모든 현장을 하나하나 맞춤형으로 케어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그러한 노력은 다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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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정책 전환, ‘형평성’→‘지역여건’ 장보러 갔는데 근처에 가게 없어 동네 경제 생태계 붕괴 목격 밤 10시 넘어 옥탑방에 돌아왔더니 동네 중학생들 기다려 심야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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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2일 일 “서울, 24년 만에 38도 넘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랬다. 삼양동 옥탑방에 둥지를 튼 날, 뉴스는 온통 한반도를 덮친 기록적 폭염 소식이다. 이사 신고식 한번 톡톡히 치르게 생겼다. 아내도 내심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어제까지도 별말이 없던 아내가 이삿짐 챙기는 걸 돕겠다며 옥탑방 길을 따라나선다. 삼양동 옥탑방으로 가는 언덕길을 오르는데 40년도 더 된 기억이 떠올랐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와 고등학교 재수를 하던 시절, 형과 함께 살았던 신길동 자취방. 비탈길을 한참 올라야 닿을 수 있었던 곳. 내 서울살이의 시작점이다. 앞으로 한 달간 살게 될 삼양동 옥탑방은 그때의 신길동 자취방과는 사뭇 달랐다. 그 시절 신길동 자취방은 1층이었고 볕도 잘 안 드는 자그마한 창 하나가 전부였다. 지금의 삼양동 옥탑방에서는 빛나는 별도 산도 보인다. 서울이 보인다. 오르막을 조금 올라가니 옥탑방 대문 앞에 서 있는 주민들이 보인다. 불볕더위에도 ‘새내기 삼양동 주민’을 맞겠다고 나와 계셨다. 얼른 집 평상으로 모셨다. 원래는 이사 첫날이니 상견례 겸 가볍게 인사만 드리려고 했는데, 인사를 하다보니 사는 얘기가 나오고, 사는 얘기를 나누다보니 이곳 강북살이의 고충이 연이어 터져나온다. 소방차가 다니기는커녕 소화전을 놓을 공간조차 부족한 좁은 길, 아직도 연탄으로 난방하고 있는 노후 주택, 도시가스가 설치되지 않은 산동네, 주민들의 말에서 배어나오는 삶의 애환, 이곳에서 내가 품고 해결해야 할 숙제다.
7월23일 월 옥탑방 이틀째다. 오늘은 마을과 더 가까워지는 날로 정하고 시청 집무실이 아닌 삼양동주민센터로 출근했다. 끼니를 나눠야 정이 깊어지고 속 깊은 얘기가 나오는 법, 점심은 미동경로당에서 하기로 했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분들이 바라는 삶은 일하며 사는 삶이다. 어르신들은 한목소리로 사는 날까지 일하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비단 청년에게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에게도 ‘일자리’는 생계를 넘어 인간의 존엄이 걸린 문제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이어 종합복지센터, 구립어린이집을 둘러보고 마을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역시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일률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정해서 적용하다보니 발생하는 한계가 보인다. 서울시의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와 연계해서 추진 중인 방문간호사만 해도 그렇다. 현재 서울시의 424개 행정동에는 일률적으로 한 명의 방문간호사가 근무한다. 그런데 강북구만 하더라도 동별 어르신 인구가 3300명에서 6300명까지 천차만별이다. 방문간호사 정책 하나에도 불균형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독거 가정, 어르신 인구 등 인구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생긴 문제다. 과연 방문간호사 하나의 문제일까. 빅데이터로 지역별 인구 특성부터 다시 분석해봐야겠다. 단번에 모든 현장을 하나하나 맞춤형으로 케어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그러한 노력은 다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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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강북구 삼양동에서 지난 7월22일부터 시작한 ‘옥탑방 한 달살이’는 더위와 싸우면서 정책을 구상하는 생활이다. 박 시장은 8월3일 오후 4시 옥탑방에 도착해 손수건으로 흐르는 땀을 닦은 뒤(맨 왼쪽), 책상에 앉아 옥탑방에서 경험한 서민 생활을 정리하고 있다(가운데). 박 시장은 또 8월4일 대학생 아르바이트생들과 면담을 하는 등 옥탑방을 찾는 다양한 시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7월24일 화 옥탑방살이 사흘째. 더위 때문인지 눈이 빨리 떠진다. 일찍 일어났으니 무엇이라도 해야겠다. 세수도 안 한 상태에서 나가 동네 청소를 시작했는데 주민 한 분이 오셔서 ‘삼양동살이’의 꿀팁을 하나 주신다. 이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을 빠삭하게 알고 싶다면 ‘통장회의’에 가보라는 거다. 마침 오늘 저녁에 삼양동 통장회의가 있다는 정보까지 함께 알려주셨다. 오후 6시 정각, 업무를 마치고 통장회의가 열리는 삼양동주민센터로 향했다. 고정소득이 없어 집수리를 할 수 없는 A씨네 집부터 보건소가 너무 멀어서 불편을 겪고 있는 B씨네 집 아저씨 사연까지 삼양동 주민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문제들이 모두 이곳 테이블에 올라가 있었다.
특히, 통장회의의 최대 화두는 삼양동 지역경제의 중심인 솔샘시장이었다. 솔샘시장이 중소기업기금과 같은 지원을 받으려면 전통시장으로 등록해야 하는데, 그 조건이 점포 50곳 이상이란다. 그런데 솔샘시장 내 점포는 32개뿐. 지원의 사각지대에서 상인은 물론, 주민들이 모두 불편을 겪고 있다고 했다. 올해 초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 개정으로 30개 이상 점포만 밀집해 있어도 상점가 등록이 가능한데, 이것을 몰라 지원을 못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 사실을 상점가 지정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소관 구청인 강북구청에 즉각 알렸고, 구청에서 솔샘시장 대표에게 관련 사항을 설명해 상점가로 지정받을 수 있도록 안내할 수 있었다.
7월25일 수 옥탑방살이 나흘째 되니 날것의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당장 퇴근하고 출출한데 먹을 게 없다. 아내와 함께 장을 보러 나갔는데 근처에 가게가 없다. 이웃집에 여쭈니 저 멀리 마트나 솔샘시장까지 가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사 첫날 마을 산책 할 때부터 구멍가게 하나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하긴 했다. 대형 마트가 동네 상권을 장악하면서 동네 경제의 생태계가 허물어졌던 것이다. 장거리를 아내와 나눠 들고 오는 길, 두 손에 느껴지는 무게 이상으로 마음의 짐이 무겁다.
7월26일 목 옥탑방살이 닷새째. 어느새 ‘원순네 옥탑방’은 삼양동의 아지트, 삼양동의 사랑방이 됐다. 당장 새벽 5시만 돼도 좁은 골목길이 북적인다. 그중에는 불편한 이야기를 챙겨온 분들도 있고, 안타까운 이야기, 시급한 숙제를 안고 오신 분들도 있다. 그런데 대개는 당장 답을 드릴 수 없는 문제들이다. 안타깝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곤 5분, 10분 짧은 시간을 내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뿐이다. 그럼에도 “시장님이 들어주시니 질식할 것 같은 현실에 숨통이 뚫린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곤 한다. 그분들을 배웅할 때마다 가슴이 짠해온다. 내가 이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아프게 재확인한다.
오늘은 일정이 많아 퇴근이 늦었다. 10시가 넘어서야 옥탑방 집에 도착했는데 이 동네 사는 중학생들이 무작정 찾아와 기다린 모양이었다. 복싱 선수가 되고 싶은 태수, 승무원이 되고 싶은 대환이, 공무원이 되고 싶은 호진이, 경찰이 되고 싶은 강현이,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종현이. 약속도 없이 한밤중에 서울시장 집에 쳐들어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아이들. 여기에 못 온 친구들도 궁금해할 거라며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까지 한다. 이 정도 패기면 뭐가 돼도 될 아이들이다 싶다. ‘도전’이라는 문구를 손글씨로 써줬다. 그렇다. 원순씨네 옥탑방은 두드리면 열린다. 밤이든 낮이든 상관없다. 동네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시간이 아니라면 언제든 두드리시라. 그럼 열릴 것이다.
지난 7월22일 간단한 이삿짐을 들고 강북구 삼양동 옥탑방을 찾는 박원순 서울시장(왼쪽 넷째)과 강난희 여사(왼쪽 다섯째)에게 한 마을 주민이 옥탑방 가는 길을 가르쳐주고 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왼쪽 둘째)이 동행했다. 서울시 제공
7월27일 금 옥탑방에서 맞는 첫 번째 ‘불금’. 깜짝 선물이 도착했다. 찬물로 샤워해도 땀이 흐르는 옥탑방 사정을 걱정한 문재인 대통령의 깜짝 배려다. 선풍기 두 대가 열심히 돌아가니 조금 전까지 찜통 같던 방이 제법 선선하게 느껴진다. 이게 바로 ‘소확행’인가보다.
7월29일 일 옥탑방에서 맞는 첫 주말. 우이령 고개와 주변 지역 탐방, 교회와 사찰, 소방서와 파출소, 재래시장과 골목길 여기저기를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제대로 집들이를 못 했다. 주민들을 다 모시기에 옥탑방은 너무 좁을 듯싶어 일요일 밤 솔샘시장에 평상을 폈다. 12시까지 이어진 삼겹살 파티에는 주민들뿐 아니라 근처 재개발 현장의 노동자 분들도 찾아주셨다. 안 그래도 땡볕 아래 일해야 하는 이분들이 가장 마음 쓰이던 차였다. 얼마 전 경북에선 새벽 4시부터 한낮까지 태양광 패널 공사를 하던 30대 청년이 목숨을 잃는 가슴 아픈 사고도 있지 않았나. 올해 폭염은 사실상 재난이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역시 한낮의 공사는 무리인 듯싶다. 철근은 손을 댈 수 없이 뜨겁고, 제빙기의 얼음도 충분치 않다는 얘기도 하셨다. 아무리 공정이 중요하다 해도 사람을 지키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7월30일 월 바로 그 현장을 찾았다. 휴식 상황, 무더위 쉼터 운영 상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니 이것만으로는 건설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을 지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폭염 대책회의를 열어 긴급조치를 결정했다. 특히, 건설 공사 현장 노동자들을 위해 서울시는 본청과 산하기관 발주 공사 현장에서 폭염이 심한 경우 오후 작업은 중지하되 하루 수당을 온전히 지급하기로 했다. 그 무엇도 안전에 우선할 수 없다.
7월31일 화 옥탑방살이 열흘째, 이웃 동네인 번동에 들렀다. 시민이 만든 월 10만원짜리 청년주택이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다. 7명의 청년이 함께 살고 있는 ‘터무늬 있는 집’은 청년들의 작은 꿈에서 시작됐다. 혼자선 해결할 수 없지만 함께라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바람에서 2014년 공동 거주를 시작했다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청년들은 저렴하고 안정된 주거를 넘어 건강한 사회적 관계, 나아가 지역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끊임없이 주창해온 공동체적 삶에 기반한 사회적 우정의 모델이 여기에 있었다. ‘터무늬 있는 집’은 빈집은 늘고 청년주택은 부족한 역설적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었다. 이들에게 서울시가 벌이는 각종 지역재생, 주거개선 사업을 직접 맡겨보아야겠다.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만큼 이 지역에 배정된 주거정비 예산(61억)을 지역에 재투자하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사라진 구멍가게, 전파상, 양장점이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역시 시민이 혁신의 에너지다. 청년이 일으킨 변화의 에너지를 강북, 나아가 서울 전체로 확산시키는 것, 서울에 주어진 숙제다.
8월1일 수 옥탑방살이 열하루째, 따릉이+지하철+버스 트리플 출근을 시작했다. 옥탑방살이를 결정하고 가장 먼저 대중교통 출근 계획부터 세웠다. 교통은 강남·북 균형발전의 핵심 과제다.
따릉이가 왜 시민이 뽑은 서울시 정책 1위인지는 따릉이를 타보면 안다. 그런데 출근길뿐 아니라 삼양동 곳곳을 다닐 때 따릉이를 타려고보니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삼양동의 언덕. 따릉이의 확산, 자전거 도로를 넓히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삼양동처럼 비탈진 지역에서도 따릉이를 탈 수 있도록 전기자전거 따릉이를 도입하는 건 어떨까? 정책의 유연성도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미국의 방송 이 ‘세계 10대 기적’ 중 하나라고 극찬할 정도로 세계적 품질과 경쟁력을 갖춘 서울의 지하철. 그러나 아직까지도 도시철도망이 닿지 않는 지역이 서울 곳곳에 있다. 계획된 면목선, 서부선, 신림선의 착공 속도를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겠다. 아울러 도시철도 노선의 빈틈을 채울 버스 노선 조정 연구도 필요할 것 같다.
8월3일 금 옥탑방살이 열사흘째, 삼양동의 한 버스회사를 찾았다. 며칠 전부터 주민들과 버스 노동자들이 옥탑방을 찾아와 어려움을 호소하신 터였다. 현장에 가보니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차고지 문제는 삼양동 한 곳을 넘어 서울 전역의 시내버스, 마을버스, 택시 차고지까지 종합적 고민이 필요했다. 운영비용, 행정 수요를 생각할 때 주차장 확충 차원을 넘어 커뮤니티 시설 등이 포함된 복합시설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역시 하나를 보면 열 가지 문제가 보인다. 역시 모든 문제는 연결돼 있다.
반환점을 돌며 뜨거운 옥탑방 생활도 어느새 반환점을 돌았다. 주민들이 폐자재를 이용해 만들어주신 옥탑방 평상도 제법 사람 때가 묻었다. 폭염의 역사를 갱신하는 매일, 무더위가 고달프긴 하지만, 시원한 에어컨 아래서 생활했다면 놓쳐버렸을 발견이 매일 나를 기다리고 있다. ‘보는 것’과 ‘사는 것’, 문제를 대하는 접근법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매순간 실감한다. 이제는 언덕길 하나를 봐도, 어르신들이 언덕을 오를 때의 고통을 생각하고 그 고통을 덜어줄 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따릉이로 이 언덕을 오를 수 있을지, 소방차가 이 언덕길을 진입할 수 있을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여기에 매일 아침 출근길을 반겨주는(!) 바둑이, 주민들이 직접 새 단장한 전봇대, 쓰레기 대신 비치된 화분과 마주치는 것도 이곳에 와서 발견한 작지만 큰 행복이다.
아울러 이번 한 달 생활을 통해서 ‘삼양동’으로 대표되는 강북 지역의 발전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기계적 형평성을 기준으로 삼았던 재정투자 패러다임을 지역의 발전 정도나 수혜자 집단의 특성,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큰 틀의 방향도 세웠다.
여전히 ‘쇼’라는 정치권의 공세가 들린다. 어차피 평가는 시민들이 하는 것이고, 변화의 결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무르익는다. 그리고 쇼면 어떤가. 나는 삶에서 피어나는 선한 영향력을 믿는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쇼. 그런 쇼라면 얼마든지 계속돼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