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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 ‘통일의 중심’에 서다

수색역 개발·통일박물관·제2통일로 ‘통일 3두열차’로 남북 화해 시대 대륙과 연결하는 ‘서울의 통일 관문’ 꿈꿔

등록 : 2018-09-13 15:49 수정 : 2018-09-1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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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이 한반도의 중심이다.”

김미경 은평구청장이 요즘 부쩍 자주 하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은평구 녹번동 서울혁신파크 근처의 옛 지명이 ‘양천리’였다는 것만 봐도 명확하다. 양천리는 남쪽으로는 부산, 북쪽으로 의주까지 각각 1천 리가 되는 곳이라는 뜻이다. 지리적으로 볼 때, 은평은 분명 한반도의 중심이다.

김 구청장이 ‘한반도 중심’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은 냉전적 분단 상황이 이 사실을 너무도 오래 잊게 했기 때문이다. 남북이 서로를 적대시하는 사이, 우리의 시야는 어느새 전체 한반도가 아닌 휴전선 남쪽으로 좁아졌다. 그 결과 은평구도 한반도의 중심이 아니라, 단지 서울의 서쪽 변방으로 인식될 뿐이었다.

올해 들어 이런 냉전적 지리 인식에 큰 균열이 생겼다. 지난 4·27 판문점선언과 5·26 남북 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이 몰고온 변화다. 사람들이 다시 휴전선 너머를 포함한 전체 한반도를 머릿속에 떠올리기 시작했다. 서울의 서쪽 변방 은평도 다시 ‘한반도 통일의 중심’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수색역을 통일 시대 국제화물 운송 거점역으로

그 출발점은 수색역이다. 은평구는 수색역을 통일 시대 국제화물 운송 거점·한반도 신경제 중심역으로 만들 계획이다. 김 구청장도 “남북 교류 시대에는 서울의 관문인 수색역이 경의선·유라시아철도 출발지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유라시아·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로 서울역을 언급하고 있지만, 균형발전 차원에서도 수색역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배상순 은평구 도시계획과장도 “서울역은 지금 포화 상태고 수색역은 물류까지 담당할 수 있는 터가 확보된 상태”라며 “남북을 오가는 물류는 수색역에서 풀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오는 9월18~20일 세 번째 정상회담을 평양에서 열기로 했다고 청와대가 발표한 지 나흘 뒤인 지난 10일 찾은 수색역. 평일인데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어서인지 조금은 한산했다. 하지만 오가는 사람들은 변화된 상황에 대한 기대감도 적잖게 드러냈다.

수색역 근처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박광수(70)씨는 수색역이 평화 시대 남북을 잇는 중심역이 된다면 “정말 좋은 일”이라고 반겼다. 수색역 앞에서 26년 동안 수색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권용주(58)씨는 “정치인들이 생각이 있었다면 디엠시(DMC·디지털미디어시티) 개발할 때 수색역을 묶어서 개발해야 했는데, 늦게라도 제대로 한다니 다행”이라 했다. 수색역 철길 건너편을 보니 문화방송(MBC) 건물을 비롯해 상암동의 고층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수색 쪽은 낡은 저층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과거 수색은 철도 관사가 있어 생활 수준이 높은 지역이었다. 이웃한 마포구 상암동은 땅콩밭과 홍당무밭으로 이뤄진 농토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상암동에 디지털미디어시티가 들어선 2000년대 후반부터 상황이 역전됐다. 수색 주민들은 상암동보다 열악해진 지역 환경으로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데, 수색역 일대가 개발되면 이웃 상암동과 균형이 맞춰질 것으로 기대한다. 취업준비생 김아름(23)씨도 “상암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수색도 남북관계 발전과 더불어 발전하면 좋겠다”고 했다.

은평구는 이를 위해 수색역세권 개발을 추진한다. 서울시와 코레일이 수색역의 차량기지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수색역과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일대 31만㎡(약 9만4천 평)를 업무사업시설 등의 복합단지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또한 수색변전소와 송전탑을 지하화해 지상에 아파트와 체육센터 등 복합시설을 지을 계획도 세워놓았다. 서울시는 개발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 용역을 지난달 끝냈고, 올해 안으로 개발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수색역 일대, ‘한반도 평화경제 플랫폼’으로”

남북 경협 활성화 때 물류센터 등 실질적 역할 담당 기대

이호철 문학관과 통일박물관 공동 건립 추진

은평구는 또 ‘통일 중심구’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문화 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통일문학의 거장인 이호철 선생 이름을 딴 ‘이호철 문학상’ 제정과 ‘통일박물관’ 추진이 그것이다.

소시민과 실향의 아픔을 어루만져온 이호철 작가는 통일로가 지나는 은평구에서 50년 넘게 살다 2016년 9월 타계했다. 이에 은평구는 지난해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을 제정해 2017년 첫 수상자로 제주 4·3을 다룬 대하소설 <화산도>의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을 선정했다. 은평구는 지난 13일에는 제2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 수상작가로 <유산>(1997)의 저자인 팔레스타인의 사하르 칼리파(77)를 선정했다. 사하르 칼리파는 1941년 팔레스타인 나블루스에서 태어나 여성인권과 이스라엘 지배에 있는 팔레스타인 민족 해방을 동시에 모색했다. 시상식은 14일 임진각 평화누리 비무장지대(DMZ) 생태관광지원센터에서 열린다.

은평구는 이와 함께 ‘이호철 문학관’과 ‘통일박물관’을 함께 짓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은평새길을 ‘제2통일로’로 명명

은평구는 또 통일로의 교통 정체를 풀기 위해 건설을 추진하는 ‘은평새길’을 ‘제2통일로’라 이름 지었다. 이 역시 ‘통일 중심구’라는 정체성을 한층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은평구가 계획하는 제2통일로는 은평구 불광동(통일로)에서 종로구 부암동(자하문로)까지 총 5.76㎞ 길이다.

은평구는 은평뉴타운과 고양 삼송·원흥·향동·지축 지구 등 신도시 건설로 교통 수요가 나날이 늘어 제2통일로의 필요성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제2통일로는 아직 착공을 못하고 있다. 서울시와 종로구 등의 반대 때문이다. 서울시는 도심 교통 유입 억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종로구도 자하문로와 세검정로 등 교통 정체 가중과 주거·역사·문화·자연환경 훼손을 염려한다.제2통일로는 이에 대한 대책이 세워진 뒤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은평구는 “서울 서북권에서 외곽과 도심을 연결하는 유일한 도로인 통일로가 포화상태이며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면 통일로의 차량 평균 속도는 더욱 떨어질 것”이라며 제2통일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한반도 중심을 향한 김미경 은평구청장의 꿈은 결실의 계절인 이번 가을에 더욱 커지고 있다. 오는 18~20일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10월로 예상되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수색역에서 출발하는 경의선을 타고 유럽까지 여행하는 김 구청장의 꿈’을 영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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