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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안에서 3년째 주민축제, “행복한 공동체에 가치 매기는 세상을”

동대표 맡아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사업 이끈 40대 주민 송수연씨

등록 : 2018-11-0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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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구 이화우성아파트

경비원에게 감사 손편지, 벼룩시장 등

아이들 시설 너무 부족한 것 깨닫고

뜻 맞는 주민과 동대표 돼 변화 주도

10월21일 낮 구로구 구로동 이화우성아파트 놀이터에서 열린 주민축제 ‘이웃사랑 한마당’에서 축제추진단을 이끈 송수연씨가 웃고 있다. 이기태 제공

지난달 21일 일요일 낮 한가한 이웃 아파트와 달리 구로구 구로동 이화우성아파트는 왁자지껄 활기찼다. 101동 뒤 놀이터에서 주민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올해로 세 번째다. 주민 200여 명이 오가며 벼룩시장, 가족사진 나누기, 아파트 올림픽, 감사 편지쓰기, 음식 나누기를 한다. 아이들이 직접 물건을 가지고 나와 파는 벼룩시장은 아기자기한 재미를 준다. 놀이터 중앙에서는 가족들이 제기차기, 밤송이 농구 등을 하며 함께 게임을 즐긴다. 김치전, 떡볶이, 어묵탕은 온 가족에게 인기다.

주민축제 펼침막 아래 주렁주렁 걸려 있는 손편지가 눈길을 끈다. 아이들이 경비 아저씨들에게 쓴 편지다. “아파트를 안전하게 지켜주셔서 감사해요.” “늘 밝게 인사해줘 좋아요.” 비뚤비뚤한 글씨지만 고마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축제추진단 대표인 송수연(45)씨가 경비원 8명과 미화원 5명에게 감사편지와 함께 겨울나기 선물(기모 스카프, 등산 양말)을 전했다. 송씨는 3년 전부터 아파트 동대표와 입주자대표회의 총무를 맡아왔다.

11년 전 결혼하면서 이곳으로 이사 왔지만, 한동안 그도 여느 주민처럼 아파트 일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면서 아파트에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이터의 운동기구들은 대개 망가져 아이들이 제대로 놀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바뀔 수 있을까 수소문했고, 그 의결권이 입주자대표회의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자신이 사는 동에 입주자대표가 한동안 없었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이 기회에 내가 사는 곳을 스스로 바꿔가야겠다는 생각에 많은 주민이 귀찮아하는 동대표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뜻 맞는 이웃 2명과 함께 송씨는 2016년 동대표가 되었다. “비슷한 욕구를 가진 이웃이 모여 의견을 나누다 행동으로 옮기는 데 필요한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5개 동 대표가 모인 입주자대표회의엔 50~70대 주민이 오랫동안 활동해오고 있었다. “처음 입주자대표회의에 나갈 때 좀 떨렸어요. 세대 차이로 소통이 잘 안 될 것 같아서 걱정도 했어요. 하지만 격의 없이 대해주셨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지지해줘 금세 걱정이 가셨어요.”

주민 20여 명이 참여하는 모임 ‘이화우성사랑회’도 만들었다. 입주자대표회의와 주민모임이 함께 아파트 공간을 바꿔 나갔다. 서울시와 자치구의 공동주택 공동체 활성화 지원사업도 곁들였다. 먼저 놀이터를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게 고쳤다. 놀이터에서 해마다 주민축제를 열고 여름방학에는 휴가를 못 간 가족들을 위한 ‘놀이터 워터파크’ 행사를 열었다. 경로당 시설을 고쳐 주민 커뮤니티 공간을 마련했다. 노인들이 이용하지 않는 저녁 시간과 주말에 아이들, 어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열었다. 가정용 공구와 재활용 도서를 모아 공유도서관 사업도 펼쳤다.

송씨가 지원사업을 적극적으로 이끈 데에는 개인적인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대학 시간강사(교육학)인 그는 예비 사회적기업가다. 2012년 또래 엄마 10여 명을 모아 자연에서 아이 키우기 실험에 나섰다. 유아교육을 오감체험의 놀이 중심으로 바꾸고 싶어서였다. 2015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참여해 다음해 관악구에서 자연인성을 키우는 숲학교를 창업했다. 올해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아 관악구 낙성대 유아숲 체험장을 위탁 운영하고 있다. “개인적인 바람으로 시작해 사회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경험으로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지원 사업에도 두려움 없이 나설 수 있었어요.”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활동은 재미도 있고 보람도 있지만 걱정도 있다. 주민 참여가 늘 부족하다는 아쉬움이다. ‘잘한다’고 격려는 하지만 막상 의견이나 참여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히는 주민은 많지 않다. “올여름 파자마 파티 때 사전 참가 신청은 두 명밖에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막상 행사 당일에 30명 넘게 와서 좀 당황했어요.”

하지만 소리 없이 지지해주고 도와주는 주민들과 격려해주는 이웃과 아이들 웃음은 그에게 큰 힘이 된다. “주민들이 “잘 놀았어요” “고마워요”라고 말해줄 때, 동네 아이들이 밝게 웃는 모습을 볼 때, 힘든 게 싹 가셔요.”

서울시와 자치구의 지원 사업은 올해로 끝난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자체적으로 주민축제 등 공동체 활동을 이어가자는 의견이 모였다. 송씨는 공동체 공간에서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동대표는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을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다.

“작은 힘이 모여 공동체를 만들어 활성화해갈 때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만든 작은 변화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경험을 만들고 싶어요. 평당 얼마짜리인지보다는 사는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지가 아파트 가치를 매기는 기준이 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면서 말입니다.”

행복한 아파트 공동체를 꿈꾸며 밝게 말하는 송씨의 머리를 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쓰다듬는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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