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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을 기웃거린 74살 홍씨, ‘찾동’이 살렸다

등록 : 2019-01-31 15:20 수정 : 2019-01-3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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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 한강로동주민센터의 찾동 ‘내친소’ 사업서 발굴

부상·빈곤·우울증 등 3중고에 자살 결심…이웃의 제보로 구제

1월11일 용산구 한강로동, 기찻길 옆 무허가 주택에서 홀로 살고 있는 홍계운(74)씨가 예전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하려고 구해놓은 밧줄을 한강로동주민센터 복지플래너 고혜정 주무관에게 꺼내놓자 고 주무관이 압수했다. 두 번이나 집 안에서 넘어져 다리를 심하게 다쳤으나 병원비도 없고 우울증까지 앓아 극단적 선택의 갈림길에 있던 홍씨는 한강로동주민센터의 찾동 사업인 ‘내친소’를 통해 구제됐다. 지금은 기초수급자로 지정되고 병원 치료도 받고 정신적으로도 안정돼 우울증도 나았다고 한다. 정용일 기자 youngil@hani.co.kr

지난 1월11일 오후 초고층 아파트와 오피스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용산구 한강로동 뒤편. 서울의 대표적 고층 빌딩 밀집 지역 이면에 들어서자 앞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인 허름한 쪽방촌이 눈에 띈다. 철도청 터에 무허가로 지은 10평 남짓한 단칸방에서 자신의 험난했던 삶을 풀어가던 홍계운(74)씨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방 한구석에서 굵은 밧줄을 꺼내놓았다.

이날 기자와 함께 홍씨 집을 방문한 용산구 한강로동주민센터 기초복지팀의 고혜정 주무관이 의아한 눈초리로 “어르신 이게 뭐예요?”라고 물어보자 홍씨는 “내 신세가 하도 한스러워 목매달려고 준비해놓은 것”이라고 했다. 고 주무관은 “어르신, 이건 제가 가져갈게요”라며 압수를 선언했다.

사실 홀몸노인인 홍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해 5월 집 안에서 두 번째로 넘어져 대퇴부에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병원비도 없는데다 우울증과 화병까지 겹쳐 신세를 비관하던 홍씨는 친하게 지내던 이웃 주민 이원택(69)씨에게 “빨리 죽고 싶으니 제초제나 농약 좀 구해달라”고 재촉했다.

홍씨는 이혼한 부인과 자식이 여럿 있으나 관계가 악화돼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갖고 있던 패물을 팔아 수술비를 마련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충분치 않았다. 이씨는 “모든 사람은 한 꺼풀 벗기면 다 불쌍한 존재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는 살기 좋지만 자살률이 높다고 한다”며 마음 단단히 먹을 것을 당부했다.

그러던 차에 이씨는 지난해 6월 동주민센터 공무원에게 홍씨의 딱한 사연을 알렸다. 이때부터 동주민센터의 기초복지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장 서울형 긴급 의료비 100만원을 책정해 홍씨의 수술과 입원 치료를 지원했다.


2017년 말부터 동주민센터는 빈부 격차가 심한 이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이웃 주민이 취약 계층을 발굴하도록 하는 ‘내 친한 이웃을 소개합니다’(내친소) 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상당수 동주민센터가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사업의 핵심 사업인 복지 취약 계층 대상자 발굴을 통장과 직능단체 추천으로 하고 있으나, 한강로동주민센터에서는 ‘이웃사촌’의 제보가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고 주무관은 “취약 계층 사례가 발굴돼도 현장을 방문하면 문을 안 열어주는 경우가 많아 찾동 사업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내친소’ 사업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실태 조사 결과, 기초연금 25만원 이외에는 수입이 없었던 홍씨는 부양가족이 있어서 원칙적으로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이하 기초수급자) 지정이 어려웠다. 그러나 동사회보장심의위원회에서 홍씨는 가족관계가 단절된 사례라고 판단해 기초수급자로 지정했다.

이제 홍씨는 다달이 기초연금 25만원, 생계급여(기초수급) 등 58만원을 받는다. 홍씨 사례 발굴에 참여했던 고 주무관은 “지난해 7월께 어르신께서 지팡이에 의지해 퇴원하는 길에 동주민센터를 찾아와 울면서 고마워하시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홍씨도 “수급자라고 하면 거지 같다고 생각해서 안 좋게 생각했다”며 그동안 기초수급자 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한 뒤 “먹고사는 것과 치료받는 것을 해결해줘 나라에 죄인 같은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지금은 우울증도 씻은 듯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진화된 찾동 ‘내친소’, 서울시 공감·인기상

이웃사촌의 복지 사각 추천받아

응급실 실려 간 홀몸노인 김순옥씨

기초수급자 지정돼 “마음 든든”

용산구 한강로동의 ‘내친소’ 사업으로 발굴돼 기초수급자로 지정된 김순옥(71)씨가 방문 중인 고혜정 한강로동주민센터 주무관에게 “든든하다”고 말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ungil@hani.co.kr

홍씨는 정부의 복지망에서 빠진 차상위계층 이웃들에게 “나도 지원받았으니 신청해 보라”며 내친소 전도사로 적극 나서고 있다. 단순 수혜자가 아닌 ‘사회복지 선배’로, 찾동 사업 당사자로서 주체 의식을 갖게 된 것이라고 동주민센터 쪽은 밝혔다.

홍씨가 사는 집에서 100m 거리에 있는 3천만원짜리 전셋집에 사는 김순옥(71)씨도 이웃사촌의 도움으로 기초수급자로 지정됐다. 지난해 1월 신장에 물이 차는 증상으로 119 구급차에 실려 가 입원 치료를 받던 중, 김씨 집의 계량기가 터졌다. 이웃 사람이 알고 동주민센터에 연락하는 바람에 김씨의 딱한 사연이 알려졌다.

김씨는 기초연금 20만원, 중증장애인연금(2급) 10만원, 생계급여 28만원 등 97만원의 지원을 받는다. 김씨도 아들과 딸이 있으나 부양 능력을 조사하는 동의서를 받아 실사한 뒤 부양 능력이 없는 것으로 확인돼 기초수급자로 지정했다. 식당일을 하며 혼잣몸을 건사했던 김씨는 일주일에 세 번 신장 투석을 해야 하는 몸이지만 “마음만은 든든하다”고 했다.

한강로동주민센터는 내친소 사업 등에 힘입어 생계급여 수급자(기초수급자)가 지난해 말 171명으로 전년도 말에 비해 1년새 40명이나 더 발굴돼 30%의 증가율을 보였다. 차상위계층도 111명으로 42명 증가해 60% 늘어났다.

한강로 내친소 사업은 지난해 12월 초 서울시 주관 ‘2019년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공감마당’ 행사에서 공감상과 인기상을 휩쓸었다. 학계 전문가, 서울 시민, 공무원 등 1천 명이 실시한 찾동 공감마당 현장 인기투표에서 내친소 사업이 1등을 차지했다.

이창수 한강로동장은 “2019년에는 수급자나 지역사회가 제안하는 아이디어를 동특수사업으로 선정해 찾동 사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강로동주민센터는 내친소뿐 아니라 지난 4월 지역 내 어르신 돌봄기관 7곳과 용산돌봄연대를 만드는 등 고독사 예방에도 힘을 쏟고 있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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