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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 전 차관 등 15명 한국 스마트시티 시찰 투어단 동행 취재
염종순 대표가 20년째 이끄는 ‘인터넷콜럼버스’…한국의 앞선 정보화 전파
14일 오전 10시 반께 서울시청사 지하 1층에 마련된 서울시 교통정보센터를 찾은 한국 스마트시티 시찰 투어단이 버스 도착 시각, 버스 안 혼잡도 정도가 담긴 버스정보터미널(BIT) 등 첨단 교통 정보망 화면에 일제히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저기 노란선을 봐주세요. 저기가 개찰구가 있던 자리입니다.”
지난 3월14일 오전 9시30분께 서울역 KTX(고속철) 청사 탑승구 앞. 재일 정보통신 전문가인 염종순(57·메이지대학교 전문직대학원 겸임교수)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가 일본에서 온 ‘한국 스마트시티 시찰 투어’ 참가자 15명에게 한국의 정보통신 혁신 사례의 하나로 개찰구를 들면서 없어진 개찰구 자리를 가리켰다.
염 대표는 2000년 이후 일본의 정치·사회·문화 분야 각 인사를 상대로 한국의 전자정부·스마트시티 등 혁신 현장을 안내하는 ‘인터넷콜럼버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그가 최근 몇 년간 시찰단을 안내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코스가 고속철 개찰구가 있던 자리다.
고속철 운행 이후 인터넷 예매가 활성화되면서 탑승구 앞에서 일일이 티켓 검사를 할 필요가 줄어들어 코레일이 개찰구를 없앤 것이다. “개찰구 검표라는 번거로운 절차를 없애면서 손님들은 곧바로 열차 지정석까지 가게 되어 편해지고, 철도회사는 비용이 줄었습니다.”
14일 오전 9시 반께 재일 정보통신전문가인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오른쪽 두 번째)가 서울역 KTX(고속철) 역사 안에서 한국의 정보화 실태를 설명하고 있다.
개찰구를 없애면서 발생하는 무단승차 문제는 한국 국회에서도 거론됐다. 그러나 염 대표는 “그로 인한 코레일 쪽 손실액은 15억원 정도로 알고 있다”며 “1%의 무단승차 손님 때문에 99%의 손님을 용의자로 보고 점검하는 게 올바르다고 보느냐”고 되물었다. 일본은 개찰구를 없애는 대신, 그것을 고도화하는 데 애를 썼다고 하자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어떤 뜻인지 알겠다는 듯 쓴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는 이런 내용을 2012년 5월 일본 잡지 <다이아몬드>에 기고했는데, 일본 고속철 신칸센을 운행·관리하는 제이알(JR) 쪽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다. “그게 정말이냐. 한국에 한번 방문하고 싶다.” 그해 제이알 본사·자회사 임원 40명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해 현장을 안내했으나, 저녁 회식 자리에서 한 사람이 염 대표에게 조용히 다가와 명함을 건네며 “일본에 돌아가면 개찰구를 없애자는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알고봤더니 그는 제이알 본사에 개찰구 기계를 납품하는 자회사 대표였다고 한다. “개찰구의 고도화 쪽으로 방향을 택한 제이알 쪽은 한꺼번에 최대 4장의 열차표를 처리할 수 있고, 표를 아무렇게나 집어넣어도 곧바로 인식할 수 있도록 개찰구를 개량했습니다. 개찰구 한 대당 5천만원 정도 비용이 들고, 일본 열도에 1만 대 수준의 개찰구가 있다고 하면 도입 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하겠죠. 여기에다 해마다 유지·보수 비용은 보통 도입 비용의 20% 정도 들거든요. 일본에서는 모든 컴퓨터 시스템이 오히려 요금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고비용 비효율 구조를 낳고 있습니다.” 도쿄~오사카 간 신칸센 요금이 우리 돈으로 20만원이 넘는 고가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번 투어단은 지난 12일 오전 한국에 도착해 2박 3일의 짧은 일정 동안 11개 정부 부처와 공기업의 정보화 혁신 현장을 돌아보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14일 오후 2시 반께 한국 스마트시티 시찰 투어단 참가자들이 태양광과 지열 등을 이용해 에너지 자급자족을 실현한 서울 노원구 노원에너지제로주택단지를 살펴보고 있다.
첫날인 12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의 첨단자동화서비스 시설, 송도스마트시티를 둘러본 데 이어 둘째 날인 13일에는 한국도로공사 종합상황실, 국토교통부,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수자원공사, 세종 스마트시티 5개 정부 부처·기관을 시찰했으며, 마지막 날은 서울시 교통정보센터, 노원에너지제로주택단지, 서울시 디지털 시장실을 방문했다. 잠시 기념품 살 짬도 없을 만큼 꽉 짜인 일정이었지만 참석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참가자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감사 메일
일본 정부 전 차관 등 15명 한국 스마트시티 시찰 투어단 동행 취재
재일 정보통신 전문가인 염종순 이코퍼레이션닷제이피 대표(맨 오른쪽)가 14일 오후 한국 스마트시티 시찰 투어단을 태운 버스 안에서 다음 목적지로 이동 중 한국의 선진화된 정보화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서울시청 지하 1층에 마련된
서울교통센터의 브리핑 내용 중
버스 도착 시각·버스 안 혼잡도
나타내는 BIT에 참석자들 큰 관심
“이번 스마트시티 시찰 결과를 회사에 보고한 바, 우리 회사 회장도 한국과 수준 차이를 인식해야 함을 전사에 호소하고, 실현을 위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발언했습니다. 구체적으로 회사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스마트시티 분야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이번 시찰단에 참가한 정보통신 기업의 한 간부는 일본에 귀국한 다음날인 15일 염대표에게 메일을 보내 “많은 공부가 됐다”며 감사함을 나타냈다.
이 참가자의 메일은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님을 기자가 14일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20분까지 동행 취재한 서울시교통정보센터, 노원구 노원에너지제로주택단지, 서울시 디지털 시장실 등 서울시의 정보화 혁신 현장에서도 확인됐다.
14일 오전 10시께 서울시청 지하 1층 서울의 교통 상황을 총괄 운영·관리하는 ‘서울시교통관리센터’, 참석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나타낸 분야는 버스정류장 4천 곳의 버스 도착 시각, 버스 안의 혼잡도를 알려주는 서울시 버스정보터미널(BIT)이었다.
“내가 원하는 버스가 언제 오는지, 앉을 수 있는지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버스 안에는 자리가 25개 있는데, 아이시(IC)카드로 몇 명이 탔는지 계산되기 때문에 혼잡도를 금방 알 수 있죠. 현재 4천 곳 중 14곳에 문제가 있다고 나타나는데, 이 정도면 큰 문제 없겠죠.” 브리핑을 맡은 양윤계 도시교통본부 교통정보과 주무관은 이어서 화면에서 특정 버스 노선을 보여주었다.
“버스 간 간격이 긴 곳이 보이시죠.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은 불편하겠죠. 다른 곳은 버스가 붙어서 오는데. 이것 역시 잘못된 것입니다. 노선버스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지 않으면 시에서는 버스회사에 페널티(불이익)를 줘 조정합니다.”
교통 정보 빅데이터의 이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설명이 이어졌다. 서울 시내에 버스정류장이 8천 곳 있고, 강남역은 하루 1만2천 명이 이용하는 데 비해 어느 정거장은 하루 이용객이 1명인 곳도 있다는 것이다. “하루 1명 이용한 곳에 빵 가게를 차리면 곧 망하겠죠? 서울시는 가게 창업할 때 필요한 최근 5년간의 (버스정류장) 혼잡도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야간버스인 올빼미버스 노선을 결정할 때도 민간 기업의 휴대전화 빅데이터 정보를 받아 활용했다고 양 주무관은 전했다. 브리핑 뒤 질문이 쏟아졌다.
“버스와 택시는 민간 업체인데 서울시가 어떻게 연계해서 교통 정보를 얻고 있는가?”
“현재 한국은 버스를 준공영제로 운영해 우리의 장비를 장착하는 데 문제가 없다. 모든 정보가 센터로 들어온다. 택시도 요금 미터기에 자동항법장치(GPS)가 있어 모든 운행 정보가 들어온다.”
“나는 디지털 봉이 김선달, 한일 간 협업 중요”
2000년 이후 20년째 한국의 혁신 현장 방문단 ‘인터넷콜럼버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염 대표는 외국인에게 만만찮은 일본에서 뿌리내린 정보통신 기업가로 꼽힌다. 그는 1993년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벤처기업을 창업했으나, 1998년 외환위기(IMF)사태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 뒤 단돈 50만엔(당시 약 720만원)을 들고 일본에 건너가 정보통신 기업을 창업하고, 직원 12명의 중견 기업으로 키웠다. 또한 현 총무성전자정부추진원(2010~) 전 아오모리현 아오모리시 CIO보좌관(2005~2017년) 등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일본 중앙·자치 정부의 직책을 맡아 한국의 전자정부·정보화 모델을 일본 안 확산에 기여해왔다.
염 대표가 2000년 이후 인터넷콜럼버스 프로그램을 통해 공공·의료·교육·금융 등 공공 정보화와 민간 분야 정보화를 일본에 전파하려는 것도,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이 적어도 이 분야에서는 일본에 앞섰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으로 일본에서 강연을 해도 믿지 않거나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아 이들에게 직접 현장을 보여주자는 생각에서 인터넷콜럼버스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사업상의 목적도 있지만, 한국과 일본은 대체재가 아니고, 보완재이기 때문에 한일 간 대립과 반목이 아니라 협업이 무척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한국의 정보화 선진 기술이 일본의 혁신에 도움이 된다고 염 대표는 확신한다.
20년째 이어온 한국 방문 결과, 일본 정부의 장·차관 4명을 포함해 국회의원 등 정계 인사, 금융, 의료, 건축, 정보통신기업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 5천여 명이 참여했다. 참가자 중에는 여러 번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참여해본 임원이 다른 직원들에게 참여를 권하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어디서나 호적등본 등 신상 정보 기록을 뗄 수 있는 현실에 일본 참석자들은 놀란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호적등본을 떼려면 본적지를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2박 3일 한국 스마트시티 시찰 투어단에는 후쿠다 미네유키 전 중의원을 비롯해 일본정보서비스협회 요코쓰카 히로시 회장, 건축설계 전문, 가스 공급, 정보통신, 인쇄 회사의 간부 등 다양한 인사가 참여했다.
일본의 공영방송 NHK에서도 염 대표의 인터넷콜럼버스 등 한-일 양국을 잇는 가교 활동에 대해 주목해 여러 차례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했다. 간판 프로그램< NHK 스페셜 >에서는 ‘IT로 한일 간을 잇는 사람’(2002년)을 방송하고, 사가현 정부에서 정보통신 어드바이저로 활동하던 2009년에는 ‘사가이즘’이라는 제목으로 염 대표의 개인 다큐멘터리를 내보내기도 했다.
한국어판 저서는 한 권도 없지만, 일본어판으로 강연 경험을 바탕으로 정보화 관련 책을 3권이나 출판했다. 또한 전문대학을 졸업했지만 정규대학 졸업학력 동등 이상의 학력 소지자로 인정받아 일본 와세다 대학원에 입학해 47살에 석사 학위를 받고, 내친김에 국립 사가 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해 53살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염 대표는 “대동강 물을 팔아서 돈을 벌었다는 봉이 김선달처럼 한국의 선진 사례와 선진 기술을 일본에 소개하는 비즈니스를하며 일본 내 사업 기반을 다지게 됐다”면서 “그래서 나는 자신을 디지털 봉이 김선달”이라고 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점에서 ‘봉이 김선달’이라고 자평했지만 어쩌면 한국의 혁신 현장을 일본에 이식시키려는 점에서는 오히려 21세기 조선 통신사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염 대표는 “이들과는 단지 기술적인 교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한국의 역사를 모르는 일본인들에게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알려주고, 한-일 간 문제에서도 한국 입장을 전달해 한국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역할도 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간 외교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페이스북에서 한국 사정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런 신뢰 분위기 속에 염 대표의 소개로 일본의 중견 기업에 한국 건설회사를 소개해 필리핀에서 일본 정부의 ‘오디에이’(ODA·개발도상국의 개발을 주목적으로 하는 재원) 사업에 두 기업이 함께 일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글·사진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