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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정, 보좌 인력 없이 파악 어려워”

은퇴 앞둔 서울시의회 지킴이 박노수 수석전문위원

등록 : 2019-04-1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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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지방의회 부활 때 합류

28년간 지방의회 지킨 유일한 사람

청와대 등 중앙부처 제안도 뿌리쳐

“2006년 의원 유급화 이후 기능 향상”

박노수 서울시의회 운영위 수석전문위원이 지난 5일 중구 서울시의회 집무실에서 뜻을 같이하는 대학교수·전문가들과 함께 쓴 <신지방의회론>(박영사)을 들어 보였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서울시의회의 살아 있는 역사.’

오는 6월 정년퇴임하는 박노수(60) 서울시의회 운영위 수석전문위원에게 붙은 별명이다. 박 수석은 1991년 의회직 공무원으로 서울시의회와 인연을 맺은 뒤 올해까지 28년 동안 시의회를 지켜왔다. 1991년은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중단됐던 지방의회 선거가 30년 만에 부활한 해였다. 박 수석은 서울시의회가 ‘갓난쟁이’일 때 시의회에 들어와 ‘청년’이 된 모습을 지켜보면서 물러나는 것이다.

그사이 그는 정책연구실장, 시의회 교섭단체 지원실장, 두 차례 정파가 다른 정당 출신 의장 비서실장을 맡는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마지막 보직인 서울시의회 수석전문위원은 의원들이나 시장이 발의한 조례안이나 의회 운영 관련 의안을 연구 분석하고 검토 의견을 내는 역할을 총괄하는 중요한 자리다.


시의회 관계자 얘기를 들어보면, 그 28년 동안 중앙정부나 청와대 등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그에게 꽤 왔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서울 시민의 민의의 대변인인 서울시의회를 떠나지 않았다. ‘갓난쟁이 의회’가 커가는 것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아빠의 마음’ 같은 것이었을까?

“1991년 서울시의회가 부활했을 때, 너무도 열악한 상황이었다. 저 나름대로 공부해가면서 깨달은 것은 시의회가 시 집행부(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해서는 능력과 권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멀고 험한 과제지만, 한번 해보자. 의회가 집행부와 균형을 맞추는 데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보자’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그의 ‘외길 인생’은 그런 바람이 점차 현실화하는 것을 보아온 시간이었다. 그는 차츰차츰 역할이 높아지던 서울시의회가 가장 크게 바뀐 시점으로 2006년 제4기 시의회 때를 꼽는다. “그 이전까지 명예직이었던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이때 유급화되면서 의원 구성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박 수석은 “2002년 3기까지는 예식장·작은 호텔·대형 목욕탕 주인 등 지역 유지들이 주로 시의원이 됐는데, 2006년 이후에는 국회의원 보좌관, 대학교수, 법조인 등으로 의원 직업이 많이 변했다”고 한다. 그 결과 “시민들에게 그 이전보다 한결 질 높은 의정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다.”

하지만 박 수석은 앞으로도 시의회가 시민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다고 말한다. 그는 무엇보다 시의원들을 보좌할 수 있는 보좌 인력을 두는 것과 시의회 사무처 인력을 독립적으로 운용하게 하는 것을 대표 과제로 꼽았다. “사실 인구 1천만 거대도시 서울의 여러 가지 일을 110명의 시의원이 보좌 인력 없이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는 또 “의회 사무처 직원의 인사권이 시장에게서 독립돼야 시의회와 시 집행부의 관계가 좀더 대등해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회 관계자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시스템 도입도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박 수석은 이렇게 의회 발전을 위한 과제가 많은 상황에서 퇴직 뒤 자신의 진로를 고민 중이다. 서울시의회는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보더라도 그는 1991년 지방의회 부활 때부터 지금까지 지방의회를 지킨 ‘유일한 인물’이라고 한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경험을 학문적으로 발전시켜, 2011년에는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에서 <대도시의회 입법활동에의 영향 요인 연구>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지방자치학회에서 2017년부터 현재까지 거푸 지방의회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서울대와 경희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각종 심포지엄에 참가하는 등 그에 대한 사회적 요청도 크게 늘어난 상태다.

그는 자신이 가진 지방의회 관련 지식은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역사가 만들어낸 공적 자산”이라고 생각하는데다 “퇴직 뒤에 아무것도 안 하면 우리 사회에 직무유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후배도 많아, 그간의 경험과 연구를 담아 <신지방의회론>이란 저서를 지난 3월 생각을 같이하는 대학교수·전문가들과 함께 펴냈다.

박 수석 자신도 갓난쟁이에서 출발해 이제 청년으로 성장한 의회가 더욱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에 따라 우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의회 관계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일은 손을 놓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퇴직 뒤 학회 등과 같이 지방의정연구(연수)원 등을 만드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가칭 서울의정연구(연수)원은 지방의회 발전에 필수인 의회 관계자 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 기능과 연구 기능을 가진 곳이다.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아직 어떤 지방정부도 본격적으로 나서지 못한 영역이다.

사랑이 깊어지면 마음은 다시 젊어지는 걸까. 인터뷰 내내 정년을 3개월 앞둔 박 수석의 서울시의회를 향한 ‘청춘 같은 사랑’이 느껴졌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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