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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상현서림의 이응민 사장이 면목동에 있는 서고에서 주문 받은 책을 꺼내다가 헌책방과 관련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5월21일 청계천 오간수교 밑, 시민들의 보행로에 책장이 하나 보인다. 그늘 아래 조명을 받은 책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끈다. “어, 나 이거 옛날에 진짜 좋아했던 얘긴데.” “아니 이 작가가 소설도 썼어?” 책 하나로도 옛 추억에 대한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큰 도서관은 인류의 일기장과 같다’는 옛말이 생각나는 장면이다.
청계천 거리에 ‘헌책’이 떴다. 서울도서관은 연세대 동아리 ‘책잇아웃’ 팀과 공정무역 카페 ‘지구마을’, 그리고 평화시장서점연합회와 함께 5월18~21일 이곳에서 ‘무지개를 파는 헌책다방’ 행사를 열었다. 점점 활기를 잃어 가는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자고 지난해 가을 처음 시작한 행사다. 책 두 권을 산 사람에겐 공정무역 커피가 덤이다.
청계천에서 2대째 상현서림을 운영하고 있는 이응민(52) 사장은 행사에 책 120권을 내놨다. 그중에서 70권이 팔렸으니 제법 쏠쏠하게 장사를 한 셈이다. 청계천의 중고서점 22곳에서 1500권의 책을 내놓아 620권을 팔았다.
“서점에서는 하루에 책을 한두 권밖에 못 팔 때도 있어요. ‘헌책 하면 청계천’은 다 옛날얘기예요.”
손님의 발길이 끊긴 것은 상현서림뿐만이 아니다. 청계천의 서점 22곳 모두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청계천 헌책방의 역사는 19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화시장 1층에 하나둘 헌책방이 모이기 시작해 지금의 헌책방 거리가 됐다. 이 사장은 “아버지가 처음 온 1977년만 해도 이 일대에 서점이 170~180개 있었어요. 수풀 림(林)자를 써서 서점이 아닌 서림이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죠. 이름 그대로 책의 숲이었어요”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환경의 변화를 버텨내기란 쉽지 않았다. 인터넷 문화가 대세를 이루면서 종이책을 읽는 사람의 수가 줄어든데다, 청계천 복원 공사 이후 청계천로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헌책방 거리를 지나는 발길이 줄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2011년이 제일 힘들었어요. 손님뿐 아니라 물건도 없었지요. 책을 잘 사는 것도 중요한데, 좋은 책들이 나오지 않았어요. 대형 인터넷서점이 오프라인 매장을 내면서 헌책들이 흘러들어가더라고요. 내 창고에도 책이 3만 권가량 있지만, 거기는 하루에 왔다갔다 하는 책이 수만 권이니까요.”
왜 하필 헌책일까?
“이미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았으니, 일종의 검증을 거친 책이잖아요. 헌책방에는 아무 책이나 꽂을 수 없어요. 독자들이 찾을 만한 책을 골라요.” 헌책방이 단순히 낡은 책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그 국가와 도시의 문화가 축적된 공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헌책방에 모인 책들은 누군가 많이 읽었던 책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세계 여러 나라들이 헌책방을 보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일본 도쿄에선 해마다 10월 수도권의 36개 고서점이 모이는 ‘이케부쿠로 헌책 축제’가 열린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비탈 카르티에’(생기 있는 거리)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시가 보유한 상가 건물에 중고서점이 싸게 들어올 수 있도록 한다. 헌책방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풍경 하나. 책방 앞을 지날 때 어떤 책을 찾는지 묻는 주인들을 종종 만난다. 이 사장은 “그거 호객행위 아니에요. 끊임없이 트렌드를 읽는 거예요. 요즘은 어떤 책들을 많이 읽는지 알아야 하니까”라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책과 관련된 대화에서 그는 막힘이 없다. ‘우리 문장 쓰기’와 관련된 책을 찾는다고 하자, 바로 “이오덕 선생님이요?”라는 대답이 나온다. 찾는 책이 없어 아쉬워하면 글쓴이의 다른 책들을 줄줄 읊어 준다. 일반 대형 서점들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서비스다. 헌책방 주인들의 이런 ‘내공’은 청계천을 찾아가는 또 다른 재미다. 수십 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의 입맛에 맞는 책을 족집게처럼 골라 준다. “대화를 몇 마디 나눠 보면 어떤 쪽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파악이 돼요. 책 내용까지는 완벽히 모르더라도 워낙 귀동냥해 온 게 있어서….” 헌책다방 행사에 참여한 연세대 동아리 책잇아웃에서는 이들의 장기를 살려 평소에도 ‘설레어함’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책잇아웃의 누리집을 통해 독자가 6가지 테마 중 세 개를 고르면 헌책방 주인들이 그 테마에 맞는 책을 세 권 골라 박스로 보내 주는 방식이다. 전체적인 책의 내용과 트렌드를 모르면 선뜻 실행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다. 트렌드를 읽기 위해 시사 뉴스도 꾸준히 챙긴다. “요즘엔 당연히 ‘한강’이지요. 한강 작가의 책이 나오면 무조건 사 놓아야 해요.” 그렇다 해도 꾸준히 나가는 책은 역시 고전이다. “당장의 베스트셀러보다는 생명력이 긴 책들이 중요해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이 대표적이에요. 베스트셀러기도 하지만 명저잖아요. 여전히 찾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헌책방의 매력은 ‘착한 가격’이다. <앵무새 죽이기> 같은 인기 책도 3000원이면 살 수 있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 사장이 찾은 출구는 역설적으로 인터넷이다. 그는 한 대형 서점의 인터넷 중고장터를 통해 헌책을 팔고 있다. “인터넷 고객이지만 좀 더 친절하게 서비스하고 값도 낮췄더니 우수판매자 1위가 되더라고요. 청계천 헌책방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는 게 물론 더 좋은 일이긴 하지만, 변화에 대응해야지요.” 아버지 때부터 40년 동안 헌책을 팔아 온 이 사장의 소망은 무엇일까? “도서관에 꽂혀 있는 책들을 헌책이라고 손가락질하지는 않잖아요. 헌책은 중고물품이라는 의미를 넘어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어요. 밤을 새워 읽게 만드는, 그런 좋은 책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해요.” 최아리 인턴기자 usimjo33@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이미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았으니, 일종의 검증을 거친 책이잖아요. 헌책방에는 아무 책이나 꽂을 수 없어요. 독자들이 찾을 만한 책을 골라요.” 헌책방이 단순히 낡은 책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그 국가와 도시의 문화가 축적된 공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헌책방에 모인 책들은 누군가 많이 읽었던 책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세계 여러 나라들이 헌책방을 보존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일본 도쿄에선 해마다 10월 수도권의 36개 고서점이 모이는 ‘이케부쿠로 헌책 축제’가 열린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비탈 카르티에’(생기 있는 거리)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시가 보유한 상가 건물에 중고서점이 싸게 들어올 수 있도록 한다. 헌책방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풍경 하나. 책방 앞을 지날 때 어떤 책을 찾는지 묻는 주인들을 종종 만난다. 이 사장은 “그거 호객행위 아니에요. 끊임없이 트렌드를 읽는 거예요. 요즘은 어떤 책들을 많이 읽는지 알아야 하니까”라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책과 관련된 대화에서 그는 막힘이 없다. ‘우리 문장 쓰기’와 관련된 책을 찾는다고 하자, 바로 “이오덕 선생님이요?”라는 대답이 나온다. 찾는 책이 없어 아쉬워하면 글쓴이의 다른 책들을 줄줄 읊어 준다. 일반 대형 서점들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서비스다. 헌책방 주인들의 이런 ‘내공’은 청계천을 찾아가는 또 다른 재미다. 수십 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의 입맛에 맞는 책을 족집게처럼 골라 준다. “대화를 몇 마디 나눠 보면 어떤 쪽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파악이 돼요. 책 내용까지는 완벽히 모르더라도 워낙 귀동냥해 온 게 있어서….” 헌책다방 행사에 참여한 연세대 동아리 책잇아웃에서는 이들의 장기를 살려 평소에도 ‘설레어함’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책잇아웃의 누리집을 통해 독자가 6가지 테마 중 세 개를 고르면 헌책방 주인들이 그 테마에 맞는 책을 세 권 골라 박스로 보내 주는 방식이다. 전체적인 책의 내용과 트렌드를 모르면 선뜻 실행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다. 트렌드를 읽기 위해 시사 뉴스도 꾸준히 챙긴다. “요즘엔 당연히 ‘한강’이지요. 한강 작가의 책이 나오면 무조건 사 놓아야 해요.” 그렇다 해도 꾸준히 나가는 책은 역시 고전이다. “당장의 베스트셀러보다는 생명력이 긴 책들이 중요해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이 대표적이에요. 베스트셀러기도 하지만 명저잖아요. 여전히 찾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헌책방의 매력은 ‘착한 가격’이다. <앵무새 죽이기> 같은 인기 책도 3000원이면 살 수 있다.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 사장이 찾은 출구는 역설적으로 인터넷이다. 그는 한 대형 서점의 인터넷 중고장터를 통해 헌책을 팔고 있다. “인터넷 고객이지만 좀 더 친절하게 서비스하고 값도 낮췄더니 우수판매자 1위가 되더라고요. 청계천 헌책방을 찾는 이들이 많아지는 게 물론 더 좋은 일이긴 하지만, 변화에 대응해야지요.” 아버지 때부터 40년 동안 헌책을 팔아 온 이 사장의 소망은 무엇일까? “도서관에 꽂혀 있는 책들을 헌책이라고 손가락질하지는 않잖아요. 헌책은 중고물품이라는 의미를 넘어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어요. 밤을 새워 읽게 만드는, 그런 좋은 책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해요.” 최아리 인턴기자 usimjo33@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