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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10구역→노량진6구역 밀려와
백량금에 ‘이쁜넘이’ 이름 붙이고
해 따라 이리저리 옮기며 정성 쏟아
“자식이랑 매한가지, 싸매고 가야지”
송계화(왼쪽) 어르신이 지난 5월29일 오후 동작구 노량진2동 집에서 노재민 원예치료사와 함께 반려식물 ‘이쁜넘이’를 놓고 이야기 나누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에서 받은 백량금을 “아이고 이쁜 넘, 이쁜 넘”이라 부르다 ‘이쁜넘이’라 이름 지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하철 7호선 장승배기역 5번 출구를 나서면 고층 아파트단지가 나온다. 동작구 상도10구역 주택재개발사업으로 2016년 준공된 상도파크자이 아파트다. 함께 만든 근린공원을 따라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재개발을 앞둔 노량진6구역이다. 차가 드나들 수 없을 만큼 좁은 골목 좌우로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지난 5월29일 오후 이곳에서 만난 노재민 원예치료사(한국플라워디자인협회 수피아회 회장)는 “송계화(90) 어르신이 방문 약속을 잊고 근처 은행에 가셨는데, 문은 열려 있으니 우리 먼저 들어가 있으라네요”라며 어르신의 집으로 안내했다. 담은 온전치 않고 마당은 좁았지만, 언덕 끝에 있는 집이라 길 건너 아파트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전망이 좋았다. 상추, 고추, 호박 등이 자라는 마당 옆에 화분이 하나 놓여 있었다. 지난해 분양받은 백량금이었다.
서울시는 2017년부터 65살 이상 저소득 홀몸어르신에게 반려식물을 보급하고 있다. 원예치료사와 생활관리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식물 관리 방법을 안내하며 어르신들이 정서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지원한다. “백량금은 열매가 풍성해 만량금이라고도 하는데, 어르신께서 잘 키우면 좋은 일도 많이 생긴다고 말씀드려요. 이 집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하얀 별 같은 꽃이 피어 있었어요. 다음 방문에는 꽃이 지면서 열매가 맺혔고, 세 번째 방문 때는 열매가 빨갛게 익어 있었어요. 올 때마다 어머님하고 이야깃거리가 되고 키우기도 좋은 식물이죠. 식물 관리하는 방법과 제 연락처를 냉장고에 붙여드려서 어머님이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하세요.”
뒤늦게 나타난 어르신은 “열매가 다 떨어졌어. 겨울에 불 안 때는 방에 뒀더니 이상해져. 안 되겠다 싶어 햇볕 쬐라고 내놨더니 방에 있던 거라 그런가 열매가 잘 떨어져”라며 안쓰러워했다. 노 치료사가 “열매는 자연스럽게 떨어져요. 그래야 또 꽃이 피죠” 하자 “안 그래도 꽃이 하나 피었어”라며 화분에서 조그마한 꽃봉오리를 찾아 자랑스러운 듯 가리켰다. 화분에는 ‘이쁜넘이’라고 적힌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처음에 가져왔을 때 ‘아이고 이쁜 넘, 이쁜 넘’ 했더니 이쁜 넘이 돼버렸잖아. 그래서 여기 ‘이쁜넘이’라고 썼어.” 반려식물을 받은 어르신들은 식물에게 이름을 직접 붙여준다. 노 치료사는 “이름 정하는 것도 어머님마다 특징이 있다. 제일 흔한 이름이 ‘사랑이’ ‘기쁨이’, 자식처럼 여겨 ‘막둥이’라고 부르는 어르신도 있다”며 “어머님이 진짜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이름도 예쁘게 정해주셔서 이쁜넘이도 예쁘게 잘 자란 거 같아요. 꽃대랑 싹이 올라오는 것도 보이거든요”라고 하자 어르신은 “해 뜰 때는 절로 갔다가, 해가 기울면 일로 왔다가, 방으로 데려갔다 만날 그렇게 다녀. 그렇게 안고 다닐라닝께 힘이 들어서 죽겄어”라며 뿌듯해했다. “성의가 도리야. 노력해야지 키워지고, 지가 크는 거 만큼은 키워야지. 살아 있는 동안은 물도 때맞춰 줘야 혀.” 사업 수행기관인 한국원예치료복지협회가 2017년과 2018년 반려식물 보급 사업에 참여한 홀몸어르신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90% 이상이 “우울감과 외로움 해소에 도움이 됐다”고 답변했고, 계속 참여하고 싶다고 희망한 어르신도 70%가 넘었다. 어르신이 느끼는 감정과 에너지 점수도 반려식물을 키우기 전보다 뚜렷이 좋아졌다. 송임봉 서울시 도시농업과장은 “반려식물 보급 사업은 도시농업을 통해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건강한 삶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올해 사업 규모를 3배로 늘려 어르신 6천 명에게 식물 화분을 보급할 예정이다. 송계화 어르신 마당에서 바로 보이는 옆집에도 백량금이 있다. 지난해 같이 분양받았지만 생김새가 다르다. “그 집 게 진짜 이뻐. 내 거 안 같어. 꽃대 중간에도 이파리가 있다니까.” “그분은 실내에서만 키우시잖아요. 그러니까 잎이 부드러워요. 어머님은 바깥에서 햇볕을 충분히 주기 때문에 잎이 뻣뻣한 느낌이지만 더 단단하고 튼튼한 거예요.” 노 치료사의 설명에 옆집을 향하던 할머니의 시선이 다시 이쁜넘이에게 돌아왔다. “그래, 튼튼한 게 좋은 거야. 튼튼해야 죽으려는 것도 살릴 수가 있지. 이파리가 부드러우면 죽으려는 거 못 살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송 어르신은 자녀가 넷 있지만, 얼굴 본 지가 1년이 넘었다. 충남 장항에서 남편을 여의고 홀로 10년을 살다 30년 전 서울로 왔다 “저 아파트 들어서기 전에 저기 살았는데 재개발한다고 해서 이 동네로 왔어. 그런데 3년 전 살던 집에 비가 새서 사정이 급했지. 오래 비어 있던 이 집 주인을 반장이 찾아준 덕분에 이사했다니까.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0만원인데, 이 집 고치는 데 더 들었어.” 요즘 어르신의 가장 큰 걱정은 재개발이다. “얼마 전 동네에 현수막이 붙었어. 이사 나가는 사람은 이주비 준다는데, 그 돈으로 얻을 집이 여기 말고 어딨겠어. 햇볕도 잘 들고 바람도 잘 들지. 언덕 높은 건 괜찮아.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니까.” 계속된 재개발에 밀려 더는 갈 곳이 없어졌어도 이쁜넘이는 놓을 수 없다. “빈집에 쟤를 두고 어떻게 가. 채소야 씨를 뿌리면 또 나지만, 이쁜넘이는 다르잖아. 자식이랑 매한가진데. 재개발하면 이쁜넘이 싸매고 함께 구청장한테 가야지.”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뒤늦게 나타난 어르신은 “열매가 다 떨어졌어. 겨울에 불 안 때는 방에 뒀더니 이상해져. 안 되겠다 싶어 햇볕 쬐라고 내놨더니 방에 있던 거라 그런가 열매가 잘 떨어져”라며 안쓰러워했다. 노 치료사가 “열매는 자연스럽게 떨어져요. 그래야 또 꽃이 피죠” 하자 “안 그래도 꽃이 하나 피었어”라며 화분에서 조그마한 꽃봉오리를 찾아 자랑스러운 듯 가리켰다. 화분에는 ‘이쁜넘이’라고 적힌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처음에 가져왔을 때 ‘아이고 이쁜 넘, 이쁜 넘’ 했더니 이쁜 넘이 돼버렸잖아. 그래서 여기 ‘이쁜넘이’라고 썼어.” 반려식물을 받은 어르신들은 식물에게 이름을 직접 붙여준다. 노 치료사는 “이름 정하는 것도 어머님마다 특징이 있다. 제일 흔한 이름이 ‘사랑이’ ‘기쁨이’, 자식처럼 여겨 ‘막둥이’라고 부르는 어르신도 있다”며 “어머님이 진짜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이름도 예쁘게 정해주셔서 이쁜넘이도 예쁘게 잘 자란 거 같아요. 꽃대랑 싹이 올라오는 것도 보이거든요”라고 하자 어르신은 “해 뜰 때는 절로 갔다가, 해가 기울면 일로 왔다가, 방으로 데려갔다 만날 그렇게 다녀. 그렇게 안고 다닐라닝께 힘이 들어서 죽겄어”라며 뿌듯해했다. “성의가 도리야. 노력해야지 키워지고, 지가 크는 거 만큼은 키워야지. 살아 있는 동안은 물도 때맞춰 줘야 혀.” 사업 수행기관인 한국원예치료복지협회가 2017년과 2018년 반려식물 보급 사업에 참여한 홀몸어르신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90% 이상이 “우울감과 외로움 해소에 도움이 됐다”고 답변했고, 계속 참여하고 싶다고 희망한 어르신도 70%가 넘었다. 어르신이 느끼는 감정과 에너지 점수도 반려식물을 키우기 전보다 뚜렷이 좋아졌다. 송임봉 서울시 도시농업과장은 “반려식물 보급 사업은 도시농업을 통해 사회적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건강한 삶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올해 사업 규모를 3배로 늘려 어르신 6천 명에게 식물 화분을 보급할 예정이다. 송계화 어르신 마당에서 바로 보이는 옆집에도 백량금이 있다. 지난해 같이 분양받았지만 생김새가 다르다. “그 집 게 진짜 이뻐. 내 거 안 같어. 꽃대 중간에도 이파리가 있다니까.” “그분은 실내에서만 키우시잖아요. 그러니까 잎이 부드러워요. 어머님은 바깥에서 햇볕을 충분히 주기 때문에 잎이 뻣뻣한 느낌이지만 더 단단하고 튼튼한 거예요.” 노 치료사의 설명에 옆집을 향하던 할머니의 시선이 다시 이쁜넘이에게 돌아왔다. “그래, 튼튼한 게 좋은 거야. 튼튼해야 죽으려는 것도 살릴 수가 있지. 이파리가 부드러우면 죽으려는 거 못 살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송 어르신은 자녀가 넷 있지만, 얼굴 본 지가 1년이 넘었다. 충남 장항에서 남편을 여의고 홀로 10년을 살다 30년 전 서울로 왔다 “저 아파트 들어서기 전에 저기 살았는데 재개발한다고 해서 이 동네로 왔어. 그런데 3년 전 살던 집에 비가 새서 사정이 급했지. 오래 비어 있던 이 집 주인을 반장이 찾아준 덕분에 이사했다니까.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0만원인데, 이 집 고치는 데 더 들었어.” 요즘 어르신의 가장 큰 걱정은 재개발이다. “얼마 전 동네에 현수막이 붙었어. 이사 나가는 사람은 이주비 준다는데, 그 돈으로 얻을 집이 여기 말고 어딨겠어. 햇볕도 잘 들고 바람도 잘 들지. 언덕 높은 건 괜찮아.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니까.” 계속된 재개발에 밀려 더는 갈 곳이 없어졌어도 이쁜넘이는 놓을 수 없다. “빈집에 쟤를 두고 어떻게 가. 채소야 씨를 뿌리면 또 나지만, 이쁜넘이는 다르잖아. 자식이랑 매한가진데. 재개발하면 이쁜넘이 싸매고 함께 구청장한테 가야지.”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