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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숲길이 내려다보이는 빌딩 옥상에서 마포의 미래를 설명하는 박홍섭 마포구청장. 박 구청장은 마포가 지속가능한 도시가 되려면 현재의 소비문화보다는 교육문화가 더 확장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종심(從心). 나이 70을 이르는 말이다. ‘70세가 되어 뜻대로 행하여도 도(道)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뜻으로, <논어>의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에서 유래했다. 박홍섭 마포구청장은 1942년 생이다. 3시간여에 걸쳐 자리를 세 번이나 옮기며 진행한 인터뷰 내내 ‘종심’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거침이 없었다. 말은 끊이지 않았고 장소를 옮길 때마다 걸음걸이는 따르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게다가 시선은 늘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첫 인터뷰 장소인 ‘미디어카페 후’에 들어서자마자 구석구석을 살피던 박 구청장의 시선이 테이블에 놓인 <서울&> 13호에서 멈췄다. 박 구청장은 동석한 공무원들에게 한마디 했다. “이 신문 좀 동장님들 이상 간부들이 다 읽게 하세요.” 13호 커버 사진은 도서관처럼 바뀐 성수1가1동 주민센터였다. “7월부터 시작하는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는 기존 지방행정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그런데 공무원도 그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박 구청장은 현재의 지방자치제도에 대해 할 말이 많았다. “헌법부터 바꿔야 해요.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 정도로는 안 돼요. 권한을 좀 더 확실하게 규정해야 합니다.” 헌법은 지방자치단체의 업무를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복지를 비롯해 확대되는 중앙정부의 사업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일이 늘고 있어요. 그러면서 예산은 안 줘요. 그러니 자치단체는 꼭 필요한 사업 예산까지도 부족해지죠.” 박 구청장이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에 주목하고,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까닭은 자치 행정에 대한 뚜렷한 소신 때문이다. 자치 행정의 중심이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교육’에 두어야 한다는 박 구청장의 소신은 격정의 한국 현대사를 정면으로 걸어온 박 구청장의 이력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노총에서 일하면 삶의 질에 관심 1970년 전태일의 분신에 영향을 받아 시작한 야학과 노동운동이 인연이 돼 한국노총에서 조직부장까지 지냈다. “한국노총에서 일하면 노동조합 만드는 일이라도 도울 수 있으니까….” 그러나 한국노총과 인연은 1985년 해직으로 끝났다. 1980년 ‘사북민주항쟁’과 이후 계속된 민주화 운동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였다. 해직 후에도 노동운동을 멈추지 않았던 “박 구청장은 제대로 일을 하려면 정치를 해야 한다”는 권유를 받아들여 통일민주당 창당에 참여했다. 통일민주당에서 노동국장으로 일하며 정치와 맺은 인연은 2002년 마포구청장 선출로 이어졌다. 2006년 일반 국민이 뽑는 민선 4기 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낙선했지만 5기, 6기 때는 연이어 당선됐다. 박 구청장은 민선 3기 때는 당장의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한 성장에, 5기 때는 서로가 잘사는 마포를 위한 복지 분야에 주력했다. “내가 나이가 얼마인데… 더 하겠어.” 스스로 마지막 임기라고 생각하는 6기. 박 구청장은 미래를 생각한다. 마포구는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집값 상승률이 1위다. 개발 시대의 그림자가 여전한 요즈음, 자랑할 만한 치적일 수도 있지만 박 구청장은 오히려 마포구 발전의 원동력으로 전임 구청장의 월드컵 경기장 유치를 꼽았다. 임기 동안 가장 잘한 일을 꼽아 달라는 부탁에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짓도록 땅을 내준 거지” 한다. 어린이 재활병원 건립은 중앙정부도 나 몰라라 했던 일이다. 기피시설이기도 한 탓에 선거 때 표를 까먹는 일일 수도 있었지만 박구청장은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어린이 재활전문 병원이 한 개도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생각으로 반대자들을 설득하며 구유지를 내줬다.
박 구청장은 2014년 민선 6기를 시작하며, 이제는 교육 분야가 구정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며 ‘함께 꿈꾸는 마포 교육문화도시로 가자’를 구정 목표로 세웠다. 마포중앙도서관과 청소년센터 건립, 경의선 숲길에 책의 거리 조성 등이 박 구청장이 꿈꾸는 마포를 현실화할 핵심 사업들이다. 마포구는 서울 자치구 가운데 공공도서관 규모가 23위로 최하위다. 옛 마포구청사 터에 지하 3층, 지상 5층, 연면적 2만153㎡(약 6100평) 규모로 건설 중인 마포중앙도서관·청소년교육센터가 2017년 8월 개관을 앞두고 있다. 도서관이 다 지어지면 마포구는 공공도서관 규모 14위가 된다. “중앙도서관은 다양한 사람이 만나 정보를 얻고, 서로를 배우는 교류의 장소로 만들어가고 있어요. 모자 열람실, 북카페, 탁아방, 다문화 존 등이 준비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책을 만드는 시설도 필요하다고 해서 알아보는 중입니다.” 박구청장은 다문화 존을 강조했다. “우리는 다문화가정에 한국 문화를 배우라고만 하고 배우려고는 안 한다. 그건 다문화가 아니다. 열람실에 이주민의 언어로 된 책을 많이 구비하려 한다.” 박 구청장의 생각에는 글로벌 시대라 말하면서도 한국화를 강요하는 다문화 정책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최근 전 구간 개장 이후 사람들로 붐비는 경의선 숲길은 사실 박 구청장이 시금석을 놓은 사업이다. “2002년 구청장에 당선된 뒤 처음 맞닥뜨린 일이 ‘경의선 지상구간 복선화 반대’ 시위예요. 애초 계획이 경의선 철도를 지상에 10m 높이로 고가화한다는 거였어요. 말이 안 되는 거지요. 주민들과 함께 대전 철도청까지 방문해 시위하고, 국회로 진출한 선배들 만나고… 철도법이 특별법이라며 철도청은 들은 척도 안 하고….” 박 구청장은 결국 경의선 지하화를 이뤄냈다. 공원화 계획도 2004년 당시 이명박 시장과 담판 지어 얻어냈다. 시위까지 하며 경의선 공원화 관철 “대흥동 구간을 제일 먼저 열었는데… 지금은 봄이면 벚꽃이 장관이에요. 주민들도 좋아하고….” 경의선 숲길 공원은 최근 전 구간을 시민들에게 선보였다. 이후 연남동 일대는 ‘연트럴파크’로 소문이 나며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한가했던 주변은 날마다 풍경이 바뀔 정도로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선다. 유명했던 기사식당 거리는 사라지고 쓰레기, 소음 문제 등 민원도 늘고 있다. 박 구청장에게는 또 다른 숙제가 생긴 셈이다. 경의선 숲길 공원에 대한 박 구청장의 애초 생각은 어쩌면 ‘책의 거리’와 같은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책의 거리는 경의선 숲길 공원 홍대입구역과 와우교 사이 250m 구간에 10월 개장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객차 모양의 14개 부스와 한글을 상징화한 조형물, ‘시민이 사랑하는 책 100선’ 등이 들어섭니다. 시민들이 ‘내가 저 책을 읽었나? 저 책을 한번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책의 거리 조성 사업은 소비 중심의 홍대 앞 현재 분위기를 바꿔 보겠다는 의지와 관내 3684개 출판 관련 업체들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박 구청장의 마음이 담겨 있다. 박 구청장은 홍대에 광장이 필요하다는 말을 끝내 털어놓았다. “100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해요. 이미 국공유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사유지가 있거든요. 건물 소유주가 이 사업에 참여해 광장을 만들면 주차장 문제도 해결되고 홍대 문화 개선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임대료를 잡는 방법도 공공건물로 상가를 짓고 임대료를 싸게 해 주면 돼요.” 박 구청장은 정치인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내가 나이가 몇인데… 다음을 생각하면 해야 할 일을 못 해요.” 마포 중앙도서관 건립도 예산을 고민했으면 시작도 못 했을 일이다. 박 구청장은 공직 생활 마지막으로 해 보고 싶은 일로 광장 조성을 꼽았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핑계가 생기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방법이 찾아진다’는 말이 마치 박 구청장이 한 말처럼 생각되는 까닭은 뭘까? 김정엽 기자 pkjy@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