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 : 자네는 주변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종종 같은 부서원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야!”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제 직속 상사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얼굴이 후끈거렸습니다. 저는 윗사람뿐 아니라 동료들 가운데서도 딱히 마음 터놓고 지내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30대 후반의 직장 여성인데, 업무 관련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도 가장 많이 지적받는 것이 공감이 약하고 ‘건조하다’는 말입니다. 이러는 제 성격이 저 역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변화를 주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바꿔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A : 제 경험부터 말씀 드리고 싶군요. 오랫동안 방송사 기자로 일했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남 앞에서 말 잘하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절반만 진실입니다. 기자란 직업은 타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3인칭 인생’인 데 반해,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제2의 인생은 ‘1인칭 인생’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의 얘기를 전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지만, 나와 내 인생을 설명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나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습니다. 온몸의 피부가 가려울 정도로 어색합니다. 객관성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오랜 직업적 태도 때문에 어려울 때가 더 많습니다. 언론인 출신들이 오히려 더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제2의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무조건 ‘나’를 주어로 살아야 합니다. 당연히 내 색깔과 역량, 스타일이 드러나야 합니다. 상담을 청하신 분 말씀을 듣고 보니 ‘스토리텔링’ 강의 시간이 떠오릅니다. 저는 종종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수강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제목의 과제를 내주곤 합니다. “가방과 나: 자기 자신을 5분 피치하라!”
여기서 말하는 ‘피치’(Pitch)는 할리우드의 작가들이 영화 제작자나 방송사 임원, 유명 프로듀서 등을 대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투자 유치 목적의 프레젠테이션입니다. 요즘은 확대되어 실리콘밸리나 뉴욕의 월스트리트 같은 곳에서 펀딩을 위한 짧은 프레젠테이션을 피치라고 합니다. 피치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투자 여부가 결정되기에 미국에서는 성공적인 피치를 위한 스토리텔링 강좌가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강의를 통해 저는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객관적 업무를 프레젠테이션할 때는 탁월한 구성과 시연 능력을 보여 주던 사람들도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데는 서투르고 어색해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과제물에서 말하는 가방은 단순히 짐을 넣어 다니는 물건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추억과 경험, 사람들을 담은 하나의 메타포입니다. 독일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해져 내려오는 말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당신의 가방을 내게 보여 다오! 그러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소!” 훌륭한 피치를 하려면 프로젝트 그 자체에 함몰되지 말고, 발표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자기 자신을 피치하라’고 전문가들은 충고합니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쓰기에서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글 속에 자기 얼굴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알고 보면 매력적이고 멋진 성품의 소유자인데도 글 속에 그 사람 고유의 색깔이 묻어나지 않습니다. 그러해서는 곤란합니다. 자기 자신을 피치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섞고, 주장보다는 구체적인 상황을 묘사하며, 무엇보다 솔직하게 전달해야 합다. 남의 이론만을 그대로 옮겨 적은 프레젠테이션은 얼마나 공허하던가요? 자신이 겪었던 힘들었거나 어려웠던 일, 즉 취약점을 드러낼 때 비로소 그 얘기를 듣는 사람들이 공감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역경을 이겨내는 이야기가 최고의 스토리텔링입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겸 심리학자인 폴 잭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공감이 되는 스토리를 들으면 뇌에서 옥시토신이라는 물질이 분비되고 이것이 마음을 움직여 기부나 자선 행위로 연결된다고 합니다. 진정한 소통이란 결국 공감에서 비롯되니까요. 저는 올해 5월 미국의 버클리 대학 졸업식에서 있었던 셰릴 샌드버그의 감동적 연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가운데 한명입니다. 하버드 대학을 나와서 미국 행정부의 요직에서 일했으며 구글 부사장을 거쳐 페이스북을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주역입니다. 그녀가 쓴 <린 인>이란 책은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양성평등, 성공을 상징하는 베스트셀러였습니다. 그런 성공 스토리뿐이라면 태평양 건너 남의 얘기일 뿐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1년 전 휴양지에서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었습니다. 실패를 모르던 그녀에게는 날벼락 같은 사고였습니다. 오랫동안 칩거 상태에 들어가 있던 그녀가 불행을 겪은 뒤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이야기한 것이 버클리 대학 졸업식 연설이었습니다. 그녀는 대학문을 나서는 학생들에게 색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가슴 아픈 사연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것이 ‘Resilience’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어로는 복원 능력, 회복 탄력성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피하고 싶지만 누구에게나 슬픔과 역경 같은 순간이 다가오기 마련인데, 그때 중요한 것이 바로 그 회복 탄력성이라는 겁니다.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영어로 ‘three p’, 즉 세 가지 P로 시작되는 개념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남편의 죽음이 ‘내 탓’이라는 도덕적 개인화(Personalization), 그리고 그 개인적 슬픔이 내 직장과 일에 침투하는 것(Pervasiveness), 그리고 슬픔이 영원히 계속되는 영속성(Permanence)입니다. 샌드버그의 연설은 이웃 스탠퍼드 대학에서 있었던 스티브 잡스의 연설만큼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기의 약점과 어려운 상황을 솔직히 드러낸 데 있었습니다. ‘그들도 인간이다’라는 공감대가 생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감 스토리텔링입니다.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내 모습을 드러내 보면 어떨까요. 솔직한 얼굴만큼 매력적인 자산은 없으니까요. 직장 생활, 프레젠테이션,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얼굴을 감추지 마세요! 상담을 원하시는 독자는 손 교수 이메일(ceonomad@gmail.com)로 연락해 주세요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전대표이사· 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A : 제 경험부터 말씀 드리고 싶군요. 오랫동안 방송사 기자로 일했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남 앞에서 말 잘하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절반만 진실입니다. 기자란 직업은 타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3인칭 인생’인 데 반해,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제2의 인생은 ‘1인칭 인생’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의 얘기를 전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지만, 나와 내 인생을 설명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나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습니다. 온몸의 피부가 가려울 정도로 어색합니다. 객관성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오랜 직업적 태도 때문에 어려울 때가 더 많습니다. 언론인 출신들이 오히려 더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제2의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무조건 ‘나’를 주어로 살아야 합니다. 당연히 내 색깔과 역량, 스타일이 드러나야 합니다. 상담을 청하신 분 말씀을 듣고 보니 ‘스토리텔링’ 강의 시간이 떠오릅니다. 저는 종종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수강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제목의 과제를 내주곤 합니다. “가방과 나: 자기 자신을 5분 피치하라!”
여기서 말하는 ‘피치’(Pitch)는 할리우드의 작가들이 영화 제작자나 방송사 임원, 유명 프로듀서 등을 대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투자 유치 목적의 프레젠테이션입니다. 요즘은 확대되어 실리콘밸리나 뉴욕의 월스트리트 같은 곳에서 펀딩을 위한 짧은 프레젠테이션을 피치라고 합니다. 피치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투자 여부가 결정되기에 미국에서는 성공적인 피치를 위한 스토리텔링 강좌가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강의를 통해 저는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객관적 업무를 프레젠테이션할 때는 탁월한 구성과 시연 능력을 보여 주던 사람들도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데는 서투르고 어색해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과제물에서 말하는 가방은 단순히 짐을 넣어 다니는 물건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추억과 경험, 사람들을 담은 하나의 메타포입니다. 독일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해져 내려오는 말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당신의 가방을 내게 보여 다오! 그러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소!” 훌륭한 피치를 하려면 프로젝트 그 자체에 함몰되지 말고, 발표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자기 자신을 피치하라’고 전문가들은 충고합니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쓰기에서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글 속에 자기 얼굴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알고 보면 매력적이고 멋진 성품의 소유자인데도 글 속에 그 사람 고유의 색깔이 묻어나지 않습니다. 그러해서는 곤란합니다. 자기 자신을 피치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섞고, 주장보다는 구체적인 상황을 묘사하며, 무엇보다 솔직하게 전달해야 합다. 남의 이론만을 그대로 옮겨 적은 프레젠테이션은 얼마나 공허하던가요? 자신이 겪었던 힘들었거나 어려웠던 일, 즉 취약점을 드러낼 때 비로소 그 얘기를 듣는 사람들이 공감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역경을 이겨내는 이야기가 최고의 스토리텔링입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겸 심리학자인 폴 잭 교수의 실험에 따르면, 공감이 되는 스토리를 들으면 뇌에서 옥시토신이라는 물질이 분비되고 이것이 마음을 움직여 기부나 자선 행위로 연결된다고 합니다. 진정한 소통이란 결국 공감에서 비롯되니까요. 저는 올해 5월 미국의 버클리 대학 졸업식에서 있었던 셰릴 샌드버그의 감동적 연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가운데 한명입니다. 하버드 대학을 나와서 미국 행정부의 요직에서 일했으며 구글 부사장을 거쳐 페이스북을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주역입니다. 그녀가 쓴 <린 인>이란 책은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양성평등, 성공을 상징하는 베스트셀러였습니다. 그런 성공 스토리뿐이라면 태평양 건너 남의 얘기일 뿐이라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1년 전 휴양지에서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었습니다. 실패를 모르던 그녀에게는 날벼락 같은 사고였습니다. 오랫동안 칩거 상태에 들어가 있던 그녀가 불행을 겪은 뒤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이야기한 것이 버클리 대학 졸업식 연설이었습니다. 그녀는 대학문을 나서는 학생들에게 색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가슴 아픈 사연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것이 ‘Resilience’라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어로는 복원 능력, 회복 탄력성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피하고 싶지만 누구에게나 슬픔과 역경 같은 순간이 다가오기 마련인데, 그때 중요한 것이 바로 그 회복 탄력성이라는 겁니다.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는 영어로 ‘three p’, 즉 세 가지 P로 시작되는 개념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남편의 죽음이 ‘내 탓’이라는 도덕적 개인화(Personalization), 그리고 그 개인적 슬픔이 내 직장과 일에 침투하는 것(Pervasiveness), 그리고 슬픔이 영원히 계속되는 영속성(Permanence)입니다. 샌드버그의 연설은 이웃 스탠퍼드 대학에서 있었던 스티브 잡스의 연설만큼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기의 약점과 어려운 상황을 솔직히 드러낸 데 있었습니다. ‘그들도 인간이다’라는 공감대가 생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감 스토리텔링입니다.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내 모습을 드러내 보면 어떨까요. 솔직한 얼굴만큼 매력적인 자산은 없으니까요. 직장 생활, 프레젠테이션,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얼굴을 감추지 마세요! 상담을 원하시는 독자는 손 교수 이메일(ceonomad@gmail.com)로 연락해 주세요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