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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서관 앞 글판에 7년 수놓았던
시민공모 당선작에 사연까지 보태져
도시 콘텐츠 전략 업체 ‘어반북스’ 제작
문장마다 폰트 달리해 감정 생생 전달
‘힘든 상황 속 희망 잃지 말자’ 응원에
‘도시 변화의 주체는 시민’ 다시금 확인
서울의 문장들
"냇가의 돌들은 서로 거리를 두었음에도 이어져 징검다리가 된다" ‘징검다리’로 연결되는 희망과 위로를 표현한 이 문장은 제28회 ‘서울꿈새김판’ 당선작이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소외되고 외로워진 현대인을 위로하기 위해 권선우씨가 창작한 이 문장은 공모 당시 서울꿈새김판 심사위원들로부터 ‘힘든 상황을 담담히 이겨내는 용기를 줬다’는 호평을 받았다. 서울꿈새김판은 서울도서관 정면 외벽에 설치된 대형 글판이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7년간 서울꿈새김판을 통해 각박하고 바쁜 일상을 보내는 시민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이번에 발간되는 책 <서울의 문장들>에는 그 따스한 감동이 그대로 담겨 있다. 2013년부터 2020년 초까지 서울꿈새김판 공모전에 당선된 153개 문장이 담겼다. 목차 구성도 독특하다. 눈부신 마음, 봄 행복한 순간, 여름 따뜻한 위로, 가을 기대의 날들, 신년으로 구성됐다. 독자에게 계절별로 흐르는 감성을 선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박진영 서울시 시민소통기획관은 “힘든 상황일수록 서울꿈새김판 공모전을 통해 희망을 잃지 말라는 응원의 목소리들이 한데 모였고, 덕분에 서울이 참 감동적이고 따뜻한 도시로 유지될 수 있었다. 이 책자에는 그 따스한 마음들에 대한 감사와 새로운 희망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기획관은 “독자들이 이 책자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문안 속에 담긴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과 그들이 전하고자 한 희망의 메시지를 음미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책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당선자들의 창작 사연까지 수록돼 눈길을 끈다. 각각의 문장 밑에 문장을 창작하게 된 사연을 덧붙였다. 한 예로 <서울의 문장들>의 여름 편 중 한 구절인 ‘태양에 맞서는 그대, 누군가의 그늘입니다’에 대한 창작 사연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태양이 뜨거운 날, 그늘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때 제 뒤로 비친 그림자가 보였습니다. 비록 나는 햇빛을 온전하게 받으며 서 있지만 내가 만든 그늘로 인해 그 안의 풀과 민들레꽃은 잠시나마 안락할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렇듯, 인생에서도 맹렬한 열기에 맞서 싸우고 있을지라도 그런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는 그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아보았습니다.” 문예빈 서울시 시민소통담당관에 따르면, 문장마다 창작자의 사연을 덧붙임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감동을 두 배로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문 담당관은 “최대호 시인이 꿈새김판 당선작을 보고 창작한 단편시와, 백가흠·손보미 작가의 에세이도 함께 실어 읽을거리를 다채롭게 구성하고 소장가치를 더욱 높였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곧 다가올 가을에 걸맞은 서울의 문장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문 담당관은 ‘저물어 가는 게 아니라 여물어 가는 겁니다’(제16회 서울꿈새김판 당선작)를 추천했다. 흔히 ‘가을’이라고 하면 한 해를 정리하거나 붉은 태양이 저무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가을은 수확과 풍요의 계절이기도 하다. 문 담당관은 “가을에 대한 상반된 이미지를 위트 있게 엮어서 표현한 참신한 문장이기 때문에 가을에 읽기에 제격”이라며 “특히 가까운 이들에게 한 해 동안 고생했고 큰 결실이 있을 거라는 위로를 건네기 좋은 문장”이라고 덧붙였다.
‘이름 없는 날도 봄이 되더라. 이름 없는 꽃도 향기롭더라.’(제23회 서울꿈새김판 당선작)의 경우 ‘우연’이 만들어 낸 특별한 문장이라고 한다. 지난해 하정윤·홍종찬씨가 각각 응모한 두 문장이 합쳐져 공동 당선으로 만들어진 문장이기 때문이다. 서울꿈새김판 문안선정위원회에 따르면 당시 응모 문안 901편 중에서 ‘이름 없는 날’ ‘이름 없는 꽃’이라는 비슷한 구절이 심사위원들 눈에 띄었다. 각각의 시민이 응모한 두 문장을 하나로 합쳐보니 봄에 어울리는 더 아름다운 문장이 됐다고 한다.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두 마음이 더해졌기에 그해 서울의 봄은 더욱 따스하고 포근할 수 있었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더 있다. 각각의 문장이 담고 있는 감성을 최대한 살려서 독자에게 감동이 생생히 전달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한 예로 문장마다 글자체(폰트)와 배경색이 다양하게 사용됐다. 이 책의 총괄기획은 감성 콘텐츠를 4P 플랫폼(종이 Paper, 공간 Place, 사람 People, 제품 Product)을 통해 제안하는 도시 콘텐츠 전략 업체 ‘어반북스’(Urbanbooks)가 맡았다.
어반북스의 김태경 편집장이 장마다 세심하게 문장에 어울리는 폰트와 배경색을 골랐다고 한다. 한 쪽당 한 문장이 큼지막하게 게재됐고, 문장을 만들게 된 배경 설명이 그 밑에 자그맣게 적혀 있다.
김 편집장은 “책의 기능이 ‘읽기’에만 치우친 시대는 지났다”며 “책이 가진 고유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모바일 등 디바이스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에게 어필하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 문구마다 독특한 문자체와 색감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책의 디자인 구성과 색감이 다양하다 보니, 마음에 드는 문장이 있는 쪽을 실제로 휴대폰으로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이도 적지 않다고 한다.
“수년간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꿈새김판에 실린 문장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아내는 작업은 그야말로 서울시민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았다.” 서울 홍보대사이자이 책을 공동 기획한 어반스페이스오디세이(USO) 박지호 대표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살거나, 머무르거나, 이동하는 모든 사람에게 의미가 깊은 문장들을 이렇게 멋진 책 형태로 만들 수 있게 되어서 의미 깊었다”고 소감을 표시했다. “따뜻한 말 한마디, 한 문장이 그 어떤 위로보다 크다는 걸 이번 작업을 통해 다시 한 번 경험할 수 있었다”는 그는 “‘도시’ 변화의 주체는 나라도, 기업도, 특정한 누군가도 아닌, 그 도시에 터를 두고 살아가는 ‘시민’이라는 걸 이번 작업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강조한다. 서울 시민 한 명 한 명의 진솔한 메시지가 담긴 책 <서울의 문장들>이 그 자체만으로도 소장 가치가 있는 이유다.
<서울의 문장들>은 서울시에서 직접 운영하는 ‘서울책방’을 포함해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으로 조성돼 화제를 모은 복합문화공간 ‘중림창고’ 내 도시서점, 그리고 교보문고·알라딘 등 일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