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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구두닦이’로 1억2천만원 기부

구두 닦아 31년간 기부 이어온 ‘관악녹지회’ 강규홍 회장

등록 : 2020-12-3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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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구두닦이 행사 통해 성금 마련

형편 어려운 아동과 노인 등 도움 줘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수입 줄었어도

“죽기 전까지 봉사하면서 살겠습니다”

관악구 관악구청 앞 삼거리에서 길거리 구두수선대를 운영하는 강규홍씨와 부인 김성자씨가 나란히 앉아 밝게 웃으며 구두를 닦고 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한 12월16일 오후, 관악구청 앞 삼거리 보도 가에 있는 길거리 구두수선대를 찾았다. 1평 남짓한 ‘가게’ 안에는 강규홍(64)씨와 부인 김성자(56)씨가 예사롭지 않은 손놀림으로 구두를 닦고 있었다.

“남을 돕고 살 수 있어 뿌듯합니다. 죽기 전까지는 봉사하며 살아야죠.”

강씨는 손으로 열심히 구두를 닦으면서 툭 던지듯 한마디 했다. 이곳에서 31년째 구두를 닦고 있는 그는 1990년 겨울부터 관악구 내 구두수선대를 운영하는 동료들과 관악녹지회를 만들어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관악녹지회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해마다 ‘사랑의 구두닦이’ 행사로 마련한 수익금을 사회단체에 기부해왔다. 지난 11월에도 210만원을 소년소녀가장, 무의탁 노인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해달라며 ‘희망온돌 따뜻한 겨울나기’ 성금으로 기부했다. 하지만 2020년 성금은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조금씩 모아 마련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사랑의 구두닦이’ 행사를 하지 못한 탓이다.

2020년 모금액 210만원을 합치면 지금까지 총기부금은 1억2770만원이 됐다. 관악구도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인 만큼 나눔 문화 확산을 위해 적극 지원하고 있다.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31년 동안 한결같이 이웃을 향한 따뜻한 사랑을 실천한 관악녹지회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옛날에는 비가 오는 날이면 동료들끼리 모여서 술 먹고 고스톱 치면서 하루를 보냈죠.”

강씨는 날이 궂으면 구두를 닦는 손님이 없어 모든 구두닦이가 일손을 놓았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술만 먹고 놀지 말고 보람있는 일을 해보자는 동료들의 뜻을 모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관악녹지회는 ‘사랑의 구두닦이’ 행사와 함께 관악구에 있는 보육원과 아동센터 등도 해마다 두 차례씩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주위 어려운 가정에 연탄도 사서 날라주고, 전기밥솥이나 전기장판도 사줬죠. 어르신들에게 식당에서 음식도 대접해드립니다.”

강씨는 1993년부터 몇 년 정도를 제외하고 관악녹지회 회장을 맡고 있다. 강씨는 “하다 보니 이렇게 오래 회장을 맡게 됐다”며 “남 돕는 일이 좋아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부인 김씨도 “남편이 봉사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남의 도움을 받는 것보다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좋다”고 했다.

강씨가 구두닦이를 시작한 것은 1990년 가을이다. 이전까지 종업원 2명과 함께 슈퍼에 물건을 납품하는 도매업을 했다. 하지만 1990년 봄에 파산한 뒤 구두닦이를 시작했다. 당시 그의 나이 30대 중반이었다.

“그동안 모았던 돈도 다 까먹고, 거리에 간판 보고 다니면서 뭘 하면 좋을지 고민했죠. 오토바이센터가 괜찮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가는 곳마다 나이가 많다며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술이나 한잔하자’는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가 구두닦이를 시작했다. “친구가 술 사준다고 해서 영등포에서 만났죠. 당시 영등포구청 담벼락에 구두 박스가 있길래 물어보니 수입이 괜찮다더라고요. 그래서 배울 수 있냐 했더니 ‘그러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쉬운 일은 없었다. 강씨가 구두닦이를 시작한 첫날, 구두 뒷굽 사포질부터 배웠다. “처음에 20켤레를 받았는데, 딱 2개 페이퍼(사포)질을 하고 나니 손에 물집이 잡히더라고요. 어깨도 아프고 정말 힘들었죠.” 강씨는 “이런 고통을 참아야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참고 일했다”며 “그렇게 온종일 일하고 2천원을 받았다”고 했다.

강씨는 영등포에서 한 달 정도 일을 배운 뒤 마포구 서교동, 서초구 방배동으로 옮겨 일을 배웠다. 그해 가을에는 지금 일하는 관악구청 앞 삼거리에 자리를 잡고 31년째 구두를 닦고 있다.

처음에는 아내와 어머니 반대가 심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부인 김씨도 함께 일을 거들었다. “아내가 바쁠 때 나와 내가 구두를 수거하러 가면 가게를 봐줬죠.” 요즘은 부인 김씨가 주로 구두를 수거해 오면 강씨가 구두를 닦는다. 강씨는 “아내와 30년 동안 같이 일했는데, 처음 할 때는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잘됐다고 생각한다”며 만족스러워했다.

30명으로 시작해 한때 48명까지 늘어났던 관악녹지회 회원은 많이 줄었다. 강씨는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돌아가시고 아파서 못하다 보니 이제 29명 정도만 남았다”며 아쉬워했다.

강씨는 가까운 관악구청이나 동네 손님뿐만 아니라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도 많다며 은근히 자랑했다. “이곳에 살다 일산으로 이사를 간 할머니도 계속 찾아옵니다. 안양이나 용인에서도 오는 손님이 있죠. 그리고 대구에 사는 사람도 서울에 볼일이 있으면 꼭 들렀다 갑니다.”

강씨는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와 견줘 수입이 절반 넘게 줄었다고 했다. 그는 “옛날 같으면 오후에 손님이 줄을 설 정도로 많이 오는데, 요즘은 간신히 먹고살 정도”라며 “하루빨리 코로나19를 극복해 국민이 잘 살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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