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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부터 시행·확대…올해 고1 적용으로 ‘완성’
‘6개 도 친환경 농작물’ 식단에 학생들 함박웃음
“설렁탕이 정말 맛있어요.” 지난 19일 금요일 점심 서초구 내곡중학교 급식실에서 잇따라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울시 친환경 무상급식 정책이 10년 차를 맞은 올해, 이날 아이들 밥상엔 귀리잡곡밥, 한라봉 등 6개 도에서 올라온 친환경 농산물이 골고루 담겼다. 먼저 배식을 시작한 중1 학생들이 국내산 무항생제 사골로 우린 설렁탕을 비우며 카메라를 발견하자 활짝 웃었다.
전문가 “무상급식은 단순비용 아닌 아이들 위한 인적자본 투자”
차별 없는 점심이 진정한 ‘밥상교육’
아이들 ‘먹거리 이해력’ 크게 높여줘
반대 학부모도 ‘급식 강사’로 변신해
3월19일 내곡중학교 급식 식단
지난 19일 금요일 오전 11시50분. 서초구 내곡중학교 급식실 문이 활짝 열렸다. 1학년 학생들이 줄 서서 들어와 한 칸씩 거리를 두고 앉기 시작했다. “오늘 급식은 5점 만점에 4.5점을 줄 거예요. 메밀면무침이 특히 맛있었거든요. 0.5점을 뺀 이유는요, 급식에서 앞으로 먹고 싶은 게 아주 많아서요. 나중을 위해 남겨둔 거예요.(웃음)” 다른 학생들보다 먼저 와서 일찍 급식을 받은 안예담(13)양이 말했다. 안양이 식판을 야무지게 비웠다. 이날은 귀리잡곡밥과 설렁탕 한 그릇, 찐만두, 메밀면 채소무침, 섞박지, 한라봉이 식탁에 올랐다. 산지를 좇아봤다. 귀리는 전남 고흥에서, 깻잎과 마늘은 경남 밀양과 경북 영천에서 밤새 탑차에 실려 왔다. 당근과 한라봉은 제주 서귀포, 오이는 경북 상주, 찹쌀은 전북 군산, 대파와 쪽파는 전남 신안과 충남 부여산이었다. 사골과 양지는 국내산 무항생제 식자재를 썼다. 한 끼니에 전국 6개 도에서 온 농작물을 담은 것이다. 모두 논지엠오(GMO·유전자변형농수산물) 인증을 받은 친환경(무농약) 식자재다. 김승혜(45) 내곡중학교 영양교사가 “오전 7시께면 전국에서 온 농산물이 ‘올바른 먹거리의 근본’(올본)을 기치로 삼는 서울친환경유통센터를 거쳐 학교에 온다”고 설명했다. 서울친환경유통센터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친환경 식자재 공급을 위해 2010년 구축한 서울시의 학교급식 공공조달 시스템이다. 센터가 식자재 공급을 맡은 초·중·고등학교는 1천여 곳에 이른다. 친환경 급식 재료는 과연 맛도 다를까. 기자도 식탁에 앉아 ‘급식’을 먹어봤다. 메밀면 속 오이가 유독 아삭아삭했다. 찾아보니 오이는 경북에서 온 ‘상주 농부 자부심’표 오이였다. “언젠가 후식으로 체리를 냈던 날, 한 아이가 제게 물었어요. ‘선생님, 이 과일이 뭐예요?’ 이 친구는 학교 급식에서 체리를 처음 보고 먹어봤던 거예요. 이처럼 밥상에서만큼은 아이들이 차별 없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음을 보고 있어요. 이것이 밥상 교육 아닐까요?” 김 영양교사가 말했다. “식자재 인식 개선”…현장에서 꼽은 대표 성과 2011년 공립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처음 시행한 친환경 무상급식 정책이 10년 차를 맞았다. 그동안 지원 대상을 차츰 넓혀왔고, 올해 3월부터는 그동안 포함되지 않았던 고교 1학년까지 무상급식을 한다. 이로써 모든 초·중·고 전 학년 학생이 급식 시간에 친환경 밥상 앞에 앉게 됐다. 새 학기를 시작한 학교 현장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친환경 무상급식을 제공해온 영양교사들과 간단히 지난 10년을 되짚어봤다. “산지 출고에서부터 서울친환경유통센터를 거쳐 각 학교 조리대에 도달하기까지 4~5차례 검수를 거쳐요. 재료는 확실히 좋습니다. 센터를 거친 식자재는 농약 검출이 없는지 확인했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김 영양교사를 비롯해 현장 영양교사들은 모두 “식자재 품질 개선이 지난 10년의 대표적 성과”라고 입을 모았다. 학부모들이 갖는 ‘신뢰’ 역시 긍정적이었다. 강남구 대치동에서 두 자녀를 고등학교에 보내는 민원정(46)씨는 “무상급식 시행 첫해엔 솔직히 염려가 컸다. 급식비가 일원화되면서 우유 등 공산품 질이 낮아졌고, ‘돈을 더 내겠다는데 왜 안 된다는 거지?’ 하는 마음이었다”고 털어놨다. 민씨가 생각을 바꾼 건 이듬해부터 실시된 ‘친환경 농산물 생산지 체험학습’에 참여하고 나서다. “농부들 얘기를 들으니 ‘확’ 와닿더군요. 재료를 보는 눈이 바뀐 거예요. 쌈 채소 농장에선 숭숭 뚫린 이파리에서 벌레 한 마리가 나오면 건강한 농산물이라는 것을 확인했고, 양송이 농장에선 ‘갈색 버섯’이 우리 농가가 개발해 로열티가 없고 흰색 버섯보다 좋은 영양소가 많다는 걸 알게 됐지요.” 민씨는 이후 “학부모가 먼저 변해야 한다”고 여겨 급식 강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8년째 서울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식재료 인식 개선’에 나서고 있다. 최영규 강서 친환경유통센터 급식안전팀장도 “식재료 반품이 크게 줄어든 것이 고무적”이라 봤다. 실제로 각 학교 친환경 식자재 사용 비율은 시행 첫해 31.7%(2010)에서 55.9%(2015), 62.6%(2019)로 점차 늘어났다. “지난 10년 동안 영양사, 학부모, 학교 관계자들을 모시고 산지와 접촉해온 것이 통한 거죠. 올해는 공식 블로그와 카카오 채널에서 현지 작황 소식 등 농민들 목소리를 전하며 언택트 소통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최 팀장이 힘주어 말했다.
지난해 11월12일 밤 10시, 환하게 불을 밝힌 강서구 서울친환경유통센터로 1t 화물차들이 줄지어 들어오고 있다. 대파, 얼갈이, 쑥갓, 미나리, 느타리버섯, 양파, 감귤 등 충청도부터 제주까지 전국 9개 산지에서 농산물을 싣고 왔다.
친환경 무상급식 정책을 아동·청소년을 향한 ‘인적자본 투자’로 보며, 보편적 교육복지가 만든 경제적 가치를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토건이냐 복지냐’ 하는 오랜 논쟁이 있었지만, 친환경 급식을 10년 동안 진행하면서 오늘날엔 ‘물적 투입보다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가 가치가 높다’는 인식이 크게 퍼졌다는 얘기다. 지난 10년 동안 친환경 무상급식 정책에 지출된 총사업비는 4조 3386억원(총 555만2천 명 대상)이다. 학부모 가계 부담은 학생 1인당 약 80만원 경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친환경 무상급식은 또 아이들의 미각과 식습관에 개입해 ‘먹거리 이해력’을 높여줬다는 평가도 받는다. ‘서울시 먹거리 통계 보고서’(2020)에 따르면, 먹거리 이해력이 높은 사람은 과일과 채소 섭취 확률도 높아지는데, 패스트푸드 등 값싼 음식에 의존하는 아이들의 경우 친환경 급식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승혜 내곡중학교 영양교사는 “중1 땐 대저토마토를 안 먹고 남기던 아이가 중3이 되면 우적우적 씹어먹는다. 꾸준히 먹어보니 맛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연 서울연구원 도시사회연구실장은 “아이들에게 친환경 식자재를 제공하고 식생활 교육을 하는 것이 앞으로 아이들이 건강한 시민노동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 중 하나”라며 “친환경 무상급식은 단순히 비용 지급으로 소비되는 개념이 아니라, 아이들 건강권을 보장한 조기 인적자본 투자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급 농가 피해 개선책 마련 향후 과제
코로나19 사태로 친환경 농가들이 피해를 본 점은 향후 개선해나가야 할 사안이다.
주된 원인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까지 ‘계약재배’를 하는 친환경 급식재료 공급 특성에서 온다. 지난해는 전년 대비 늘어난 강우량과 태풍 등으로 재배 농가가 파종 시기를 놓쳐 작황이 좋지 못했던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한 학교급식 중단 사태가 겹치는 피해가 발생했다.
김도훈 경북 친환경영농조합법인 상무는 “당시 ‘식재료 꾸러미 사업’ 같은 잉여 생산물 논의가 시급했다면, 올해는 수해·한파 등 기후변화 영향으로 생산량 자체가 감소했다. 외국인 노동자 유입 감소, 포장재값 인상 등으로 농산물값이 오른 상태다. 친환경 급식재료의 ‘안전성’을 바탕으로, 이런 비상상황을 대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현재 공공조달 시스템 개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대안도 제시됐다. 김흥주 원광대 교수(복지보건학부)는 지난달 26일 열린 농촌사회학회 특별 심포지엄에서 민간 급식업체 전자 조달 방식과 서울 친환경유통센터 공적 조달 방식을 비교하며 “공적 조달 체계가 품목·품질(품위)·물량·가격 측면에서 전자 조달 방식보다 ‘안정성’이 높은 장점이 있지만, 적정 가격 산정, 정치적 쟁점 문제 등에서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학교급식은 시장·정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 교수는 “국내 식량자급률이 20%에 머무는 현재, 글로벌 곡물 메이저 기업 식량 유통망에 먹거리 공급을 의존할 경우 긴급 재난 상황에서 빠른 대처가 어렵다”며 “이탈리아 로마에서의 창조적 공공조달 전략이나 또한 영국에서 진행한, 어려움에 처한 지역 농산물 생산자들을 학교급식 정책과 만나게 한 사례 등을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공공조달은 이 제도가 가진 강력한 구매력과 교섭력 덕분에 세계 각국에서 ‘자국의 농업 보호’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서울시 친환경 학교 무상급식 총소요액은 7271억원이며 이 가운데 서울시는 지난해보다 292억원 늘어난 2150억원을 편성했다. 재원분담비율은 서울시 30%, 자치구 20%, 교육청 50%이다. 급식 지원단가는 초등학교 4898원, 중학교 5688원, 고등학교 5865원, 특수학교 5472원이다. 이는 식품비·관리비·인건비 등이 포함된 학기 중 평일 중식비 기준이다.
글·사진 전유안 기자 fingerwhal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